건보가입자 정보 공유땐 어떻게 될까

산업1 / 토요경제 / 2008-08-04 11:01:06
금융위 질병정보 달라는 배경에 의혹

건강보험 가입자의 개인 질병정보를 유사시 금융위원회가 열람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보험 사기와 같은 사고가 터졌을 때만 금융위가 열람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사고 조사 과정에서 민간 보험사가 해당 고객의 건강보험 관련 진료정보를 알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이처럼 한 번 물꼬가 트이게 되면 결국엔 평상시에도 민간보험사들이 금융위를 통해 건보 가입자들의 질병 정보를 파악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오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막지 못한다면 큰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우선 금융위의 의도가 적잖이 의심스럽다.
현재도 보험사기 등 보험관련 범죄가 발생할 경우 검찰 등 수사기관은 건강보험공단에 질병정보를 요청해 열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형사소송법 199조와 공공기관 개인정보 관련법 10조3항이 근거다.
이처럼 사법기관에서 유사시 건강보험 가입자 질병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데도 민간 보험업계를 관리.감독하는 금융위가 굳이 질병정보를 달라고 하는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는 '보험 사기 여부를 명확히 판단해 경찰.검찰에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보험사는 이러한 정보에 원칙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현재 성안중인 법안에 '민간보험사 접근 금지' 조항을 넣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만약 건보 가입자의 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사가 공유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될까.
서울대 의대 이진석 교수는 '지금도 형사소송법 등에 건보 질병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데도 이를 보험업법에 별도로 규정하게 되면 오남용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개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가능성이다.
그래서 세계 어떤 나라도 공공 의료보험의 개인정보를 민영보험과 공유하는 나라는 없다. 민영 의료보험이 대세인 미국조차 보험사들끼리 서로 질병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정도다.
현재 건강보험의 개인 질병정보는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2002년 10월27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 ○○비뇨기과에서 매독(성병)으로 진료'와 같은 식이다.
개인마다 살짝 숨기고 싶은 과거도 있을 것이고 지금은 완치된 과거의 특정 병력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은 게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윤 창출이 최우선인 민간 보험사의 입장은 다르다.
새 정부 출범 후 민간 보험사들이 줄기차게 건보 질병정보 공유를 요구해온 이유는 질병정보 데이터를 고객 가입시 또는 보험금 지급시 활용하고 싶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테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었거나 특정 질환으로 오래 진료받은 경력이 있었다면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금을 깎기 위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특히 국내 보험업계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가입 조건은 상당히 관대한 대신 보험금 지급 사유가 생겼을 경우 난해한 약관을 들이대며 한 푼이라도 깎으려는 생리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개인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국가기관인 건강보험공단 혼자서 개인 질병정보를 관리하는데도 거의 매년 정보 유출 사고가 터진다.
이런 상황에서 만에 하나 민간 보험사로 전 국민의 개인 정보가 넘어갈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인권 침해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일 금융위가 민간보험에 건보 가입자의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개인 정보를 관리하는 기관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정보 유출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아동의 주의력결핍질환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훗날 민간보험 가입이 거부될 가능성을 우려해 자녀의 정신과 상담을 기피하는 경향마저 있다고 한다.
이진석 교수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질병 정보가 공단 외 어느 기관으로든 빠져나가는 순간 사고가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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