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배신한 소니의 계산법

산업1 / 토요경제 / 2008-03-03 10:20:57
소니, 자국업체 샤프 LCD 패널공장 1천억엔 투자

지난해부터 균열 시작…누가 먼저 결별 선언하나
삼성 특검.일본 내 반감 등 이래저래 불편
"오히려 잘됐다" 소니 외 판매처 다변화 가능


"소니가 TV용 패널에서 삼성과 손을 잡은 것은 부인이 여러 자식을 낳아놓고 옆집 아저씨와 바람이 나 도망간 격이다."


2004년 11월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현 LG상사 부회장)이 '소니'를 빗대어 한 말이다. 구 부회장이 이처럼 직설적인 화법으로 소니를 비난한 것은 소니가 삼성전자와 합작해 S-LCD라는 LCD 패널 회사를 세우기로 한데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소니가 샤프와 손잡았다. 소니가 샤프의 10세대 공장에 1000억엔을 투자키로 한 것이다. '또 다시 바람난 소니'인 셈이다. 특히 소니는 삼성전자와 사귈 때 써 먹었던 '연애의 기술'을 샤프에 그대로 적용했다. 소니가 샤프와 합작하는 방식은 삼성전자와 했던 것의 판박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소니의 변심'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소니도 S-LCD를 통한 협력관계는 지속하고 10세대 합작 가능성도 열어 놓는 등 '완전한 이혼'이 아니라 '두 집 살림'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니-샤프, 손잡은 이유


소니와 샤프가 손을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에 대한 LCD 패널 의존도가 높은 소니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패널 조달을 위해 구매선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삼성전자와 소니는 충남 탕정에 7세대와 8세대 라인 각 1개씩을 공동 투자해 생산된 패널의 절반씩을 나눠 갖고 있다. 소니는 LCD TV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더 많은 LCD 패널을 삼성전자로부터 구매하고 싶지만 삼성전자의 자체 소화 물량 등으로 인해 원하는 만큼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소니 입장에서는 입지 조건에서 한국의 충남 탕정보다는 일본의 오사카 사카이시가 유리하고, 제휴 파트너로 LCD TV 시장에서 소니를 추월한 삼성전자보다 뒤쳐져 있는 샤프가 상대적으로 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니는 공동 투자한 라인도 감가상각기간이 끝나면 소유권이 삼성전자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후에도 필요한 LC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반면 샤프는 2009년 하반기 가동 예정인 10세대 패널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다. 서로 필요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삼성, 나아가서 한국 타도를 외치고 있는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의 움직임도 소니와 샤프의 제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소니와 샤프와의 합작 외에도 마쓰시다가 히타치, 캐논 등과 함께 LCD TV 시장에도 진출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한국 업체들에게 내준 시장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니는 삼성전자와의 합작으로 일본 내에서 '경쟁자인 삼성을 도와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소니는 삼성전자와 합작하면서 일본 정부와 민간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 사업, 이른바 '퓨처비전' 모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소니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와 패널 합작이 이래저래 '불편한 동거'일 수밖에 없었다.


업계 "삼성-소니 협력 생명 다한 듯"


업계는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JV. 공동기업)의 평균적인 시한을 7년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코퍼리트 이그제큐티브 보드(CEB) 조사에 따르면 기업인수 합병(M&A)이 아닌 조인트벤처의 경우 대부분 10년 이내에 협력이 단절된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와 소니 사이의 균열은 결별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삼성과 소니의 협력은 삼성의 예비 후계자인 이재용 전무가 주도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던 두 거대기업이 '적과의 동침'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화적 차이가 크고 역사적 갈등을 겪어온 한-일 양국 대표기업의 합작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의 경쟁구도가 역사적인 조인트벤처의 시한을 평균보다 앞당길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기업인 소니가 자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연합전선 참여요구를 지속적으로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삼성이 국내에서 특검조사를 받아 최고경영층이 자유로운 경영에 나서지 못하는 상태라는 건 호사가들의 빌미가 된다. 조인트벤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의사소통을 삼성이 적극적으로 할 수 없고 소니 역시 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시점의 문제는 과장된 것일 수 있지만 균열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


소니는 지난해부터 논의돼 온 S-LCD 8-2라인(50인치대) 증설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균열을 예고하더니 마침내 지난 24일 LCD 패널 구입처를 샤프로 확대키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소니의 변심이 삼성전자에게 마이너스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소니의 구매처 다변화는 반대로 삼성전자에게는 판매처 다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준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LCD TV용 패널은 공급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설사 소니가 8세대 2라인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고객을 다변화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8세대 생산물량을 삼성전자 LCD TV와 소니에 80% 이상 공급하고 있는데, 한정된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갖게 되는 '잠재 리스크'를 줄이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이제는 누가 협력단절을 선언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진다. 삼성이 소니의 돌출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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