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몸살 앓는 대통령

기자수첩 / 이정선 / 2018-07-02 05:59:33

‘삼국지’ 이야기다.

제갈량이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출사표를 바치고 출정했다. 군사를 한중에 집결시켰다. 사마의와 ‘한판 승부’를 벌일 참이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신중했다. 섣불리 군사를 내지 않았다. 부하들이 싸울 것을 요구해도 사마의는 듣지 않았다. 제갈량도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답답해진 위연이 “정예병 5천과, 보급병 5천만 내주면 단숨에 사마의를 깨겠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대치상황 속에서도 양쪽의 사자(使者)들은 오고가고 있었다. 어느 날 사마의가 제갈량의 사자에게 물었다. “제갈량은 하루에 식사를 얼마나 하고, 일 처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사자가 대답했다. “음식을 지나치게 적게 먹고, 일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직접 처리하고 있다.”

그 순간 사마의의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적게 먹고 일은 번거로우니(食少事煩) 어떻게 오래 지탱하겠는가.”

과연 사마의의 예상대로 제갈량은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제갈량은 사자를 보낼 때 자신의 정보를 절대로 노출시키지 말도록 단속했어야 좋았다. 제갈량의 실수였다. ‘식사를 조금밖에 하지 않는다’는 작은 정보였지만, 사마의는 이를 토대로 제갈량의 사망까지 점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그대로 정보가 될 수 있다. 건강이 나쁘면, 국정을 제대로 이끌기 힘들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라는 것은 아무리 사소하고 작아도 쌓이면 좋은 자료로 불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해서 상대 국가 지도자의 머리카락 한 올, 침 한 방울을 가지고도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건강 상태까지 예상할 수 있다는 세상이다. 그 때문에 국가 지도자의 건강은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에 관한 정보를 발표하고 있다. 피로 누적 때문에 감기 몸살에 걸렸으며, 이로 인해 며칠 동안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는 발표였다.

취재진이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비밀이 아니냐. 청와대에서 발표해도 되는 것인가” 질문하자, 청와대는 “비밀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이미 잡혀있는 공개 일정에 불참할 경우 (그 사유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아예 ‘당선인’이었을 때 건강에 관한 정보가 노출되기도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잠이 잘 안 온다. 어떻게 공약을 이행하고 나라를 이끌어갈까 고뇌에 빠졌다”고 박 당선인이 밝혔다고 공개한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면 국민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자칫 건강을 해치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 후보자의 발언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얘기는 과거 이해찬 총리도 했었다. 당시 이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골프를 한번 치고 나면 허리 통증이 2주 동안 가는 모양”이라며 “디스크 수술이 깨끗하게 되지 않아 회의석상에서도 1시간 이상 앉아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었다.

깜짝 놀란 청와대가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었다. “대통령의 허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강행군인 해외순방도 잘 수행했고, 부처 업무보고 기간에는 3시간 이상의 회의를 하루에 2번 소화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건강에 관한 정보는 이렇게 번번이 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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