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장애인편의시설 아랑곳 않는 이유?

산업1 / 이준혁 / 2012-04-20 14:54:54
휠체어리프트 고장ㆍ추락 사망 사건 잇따라 발생

[토요경제 = 이준혁 기자] 장애인에게 지하철은 사실상 유일한 공공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지하철 내 장애인편의시설 부족과 고장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장애인은 지하철 내 전동휠체어를 조작하던 중 계단으로 굴러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현재 신도림역과 건대입구역 2곳은 6개 역사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거나 설치 예정인 곳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종로3가역, 충무로역, 명동역, 도곡역은 아직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을 비롯해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기존에 상권이 형성돼 있어 공간협소, 고도한 공사비 문제, 일반시민들의 동선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서울메트로 측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실태점검을 통해 시행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고, 서울시에도 예산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장애인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 등 지하철 불편 여전
‘집에서 시설에서 조용히 갇혀 지내던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건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로 한 장애인이 목숨을 잃은 후였습니다.’
‘(중간생략) 우리의 투쟁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04년 말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돼서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를 보장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갈 수 없는 지하철역이…(중간생략)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도..(Interlude)’의 가사에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의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곡은 댄스듀오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가 지난 2000년 11월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게 된 지 5년 만에 발표한 5집 앨범 ‘빅토리’에 수록됐다.
지난 20일은 ‘제32회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재활의지를 고취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아직까지 일상생활에서 장애인들은 수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장애인들의 자립에 있어 꼭 필요한 대중교통 이용은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은 너무나도 힘들고 불편해 보인다. 환승 구간의 엘리베이터 미설치,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장애인화장실, 장애인 소변기 앞 휠체어공간 부족… 등등. 소위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불편 종합선물세트로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지하철 휠체어리프트의 잇따른 고장까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사고발생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고 휠체어리프트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


▲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열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환승로 장애인 추락사고 책임회피’ 서울메트로ㆍ서울시 규탄 및 재발방지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명수(왼쪽, 뇌성마비 1급)씨가 사고 상황을 증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한 씨는 을지로3가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과정에서 인파를 피하기 위해 전동휠체어를 조작하던 중 계단으로 굴러 부상을 입었다.


◇인권위 권고에도 설치 어려워…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하반신 마비 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서울지소 오영철 소장은 “휠체어리프트를 탈 때마다 공중부양 하는 느낌”이라며 “나도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탈 때가 많다”고 한다.
오 소장은 “리프트를 펼치면 계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역사는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데다 작동 시 크게 울리는 경고음 때문에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다른 역에서 내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1년 70대 장애인이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 및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2002년 지하철 5호선 발산역, 2006년 인천 1호선 신연수역, 2008년 지하철 1호선 화서역, 지난 1월 지하철 3호선 을지로3가역에서도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망 사건이 일어나는 등 휠체어리프트로 인한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서울 지하철 역사 내 휠체어리프트는 한국철도공사 9개 역사, 서울메트로 29개 역사, 서울시도시철도공사 35개 역사에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곳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부분적으로 설치 돼 있어 리프트 이용을 피할 수 없다.
전동 휠체어를 타는 박영석(33)씨는 “깎아지른 듯한 계단 밑을 내려다보면서 휠체어리프트를 타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이라면서 휠체어리프트를 “위험한 기구”라고 표현했다.
그는 “환승역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휠체어리프트는 한번 타는데 7분, 리프트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시간까지 합치면 14분 이상이 걸린다”며 “여러 명이 단체로 이동하는 날이면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기본으로 1시간은 걸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이동 및 교통수단과 관련한 진정사건은 총 343건(7.6%)이 접수됐다.
인권위는 지난해 9월 환승로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없이 휠체어리프트만 설치돼 있는 지하철역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장애인에 대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차별행위라는 해석을 내놨다.
인권위는 장기적으로 모든 지하철 역사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서울메트로 측에 실태점검을 통해 시행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고, 서울시에도 예산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인권위 발표 후 엘리베이터가 없어 문제가 된 6개 역사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거나 설치 예정인 곳은 신도림역과 건대입구역 2곳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종로3가역, 충무로역, 명동역, 도곡역은 아직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고 있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코레일,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말을 종합해보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역사는 기존에 상권이 형성돼 있어 공간이 협소하거나 고도한 공사비 문제가 있다”며 “일반시민들의 동선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박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사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약자, 유모차를 동반한 승객 등 우리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인데 장애인들을 위한 것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달 20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하철 3호선 을지로3가역 환승구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한 대중교통 이용은 시민의 기본권이지만 서울시의 장애인들은 아직도 그러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1월 발생한 장애인 추락 사고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단체 “KTX 민영화 철회하라”
장애인편의시설 부족 문제와 관련해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과 전국철도노동조합 등은 지난 19일 “정부는 KTX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규탄했다.
97개의 시민사회노동인권단체로 구성된 420공투단 등은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이날 오후 2시 서울역 대합실에서 ‘장애인 이동권 부정하는 KTX 민영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4월20일 장애인 날을 하루 앞두고 있지만 장애인의 날이 결코 달갑지 않다”며 “하루 장애인들을 모아놓고 기념사진만 찍는 허례허식이 아닌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태도를 보여달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택시나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겠냐”며 “장애인이 여행을 하기 위해 혹은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공공교통수단은 사실상 철도가 유일하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현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10년 전 KTX가 처음 만들어질 때 이 자리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달라고 싸웠는데 지금은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와 있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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