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새 정치‘ 심판대 오르다

오피니언 / 정해용 / 2012-04-13 18:52:07

전투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결론이 빤한 싸움에는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강한 쪽의 횡포 가능성에 대한 비관적 우려만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바둑왕 이창호가 아마추어 기사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다면 무슨 흥미가 있을까. 그 대결을 통해 연승의 신기록을 세운다면 작은 흥밋거리는 될지 몰라도, 전투로서의 묘미는 전혀 충족되지 못하는 것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예고편 하나만으로 스토리 전개나 결말이 모두 예상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게 전부라면, 그 작가나 연출가가 만든 드라마에는 더 이상 아무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4.11 총선은 그런 관점에서 약간의 흥밋거리를 보여주었다. 다윗과 골리앗 전투 같은 극적인 반전은 아니더라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초박빙의 국지전이 적지 않았고, 결과에 있어서도 다수의 예상을 빗나가는 흥미로운 결과가 몇 가지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선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확보가 흥미롭다. 총선 직전까지 여권 관계자들에 의한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사건, 총리실에 의한 불법 민간인 사찰사건, 대통령 측근 친인척 비리와 내곡동 사저 등 분명히 여당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정국이 펼쳐졌고, 반면 야권은 민주통합당과 진보신당의 후보 단일화라는 바람이 불면서 어느 때보다 변화폭이 큰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SNS를 중심으로 보면 야권의 ‘정권심판론’은 뜨겁게 먹혀드는 듯도 했다. 작년 디도스 공격 사건이 불거진 직후 여당은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오죽하면 긴급한 결의로써 당명까지 바꿨다.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의 패배를 예상했고, 그 결과 거대 야당이 출현하면 그동안의 여러 의혹들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도 시작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당당히 152석을 따냈다. 국회에서 다른 보수 정당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신들의 논리를 고수하고 새로운 의안을 관철할 수 있는 의결정족수 과반을 확보한 것이다. 이런 결과에 새누리당 스스로도 감동했다고 한다.


선거 과정에 어떤 변수가 있었든, 그 결과는 민의의 반영이며 민심의 척도다. 그 결과가 사회윤리를 기준이나 정치역학적으로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어쨌든 이 결과는 투표장에 나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유권자들의 엄연한 합의로 존중되어야 하는 결과인 것이다. 야당은 선거과정에서 막판에 터진 한 후보의 10여년 전 ‘막말’이 선거의 대세를 크게 흔든 일에 대해 다소 억울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전략의 한계와 관계가 있을 뿐, 이미 결정된 당락을 하나라도 뒤바꿀 명분은 되지 못한다.


과거 한나라당의 핵심 리더였던 홍준표, 권영세, 그리고 박근혜 의원 계보의 큰 기둥인 홍사덕 의원 등 중진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것도 흥미로운 결과다. 최근 몇 년의 선거들을 돌아보면 한나라당의 대표나 사무총장 등 핵심 요직을 지낸 사람들이 잇달아 퇴출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회기 동안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의회정치에 대해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한 것은 사실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여전히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난 회기동안의 정치에는 불만이지만 그 개혁을 다른 정당에 기대할 수도 없다는 표현이었을까. 지금까지의 행태에 불만하면서도 계속 믿어보겠다는 다소 모순된 희망이 이 선거에 나타난 민심으로 요약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당명을 바꾸고 상당수의 지명도 있는 의원들까지 공천에서 제외하면서 새 출발을 천명한 새누리당 비대위와 선거대책위의 선거 전략은 결과적으로 유효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민심을 의식해서인지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은 선거 후 첫 기자회견에서 당이 분명하게 환골탈태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4년간 국민여러분께 여러 가지 실망을 드렸는데 이번에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또 다시 구태로 돌아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란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


그의 말은 옳다. 비록 과반의석의 제1당이 되긴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54.3%라는 저조한 투표율, 아슬아슬했던 승부, 또 서울 수도권에서의 현격한 열세(43석:69석)가 갖는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총선에서의 승리가 12월 대선의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계에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누리당 중심으로도 정치 전반의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 사이에 분명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은 ‘역시 바꾸지 않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새 출발’을 내세워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난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은 이제 그 약속에 대한 실천의지를 시험하는 심판대 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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