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선거의 역사가 가장 긴 미국에서의 일이다. 1936년의 미국에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라는 잡지가 발행부수도 많고 영향력도 높았다. 이 잡지는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아직 우편과 전보가 쌍방향 커뮤티케이션의 중심이던 시절이라 왕복 엽서를 이용했다. 유권자 1천만명에게 지지후보를 묻는 엽서를 보낸 결과 236만 통이 돌아왔다. 분석결과 공화당의 알프레드 랜든 57%, 민주당의 루즈벨트 43%. 표본수가 236만이나 된다는 데 자신감을 갖고 잡지사는 의심의 여지없이 랜든의 당선을 예고했다. 그러나 실제 투표에서는 예측과 반대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압승했다. 예측이 빗나간 가장 큰 이유는 조사대상 표본설정의 오류에 있었다. 잡지사가 이용한 조사대상 유권자의 주소는 전화가입자 명부와 자동차 소유자 명부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그 시절에 자동차나 전화기를 보유한 시민은 비교적 상류층이었다. 유한계층일수록 보수정당 지지자가 많은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러니까 보수적 계층에 한정된 조사를 통해서 보수정당 후보가 이길 것이라 장담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 잘못된 여론조사로 신뢰를 잃은 잡지사는 곧 판매율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끝내 문을 닫았다.
반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은 이 선거를 통해 공신력을 얻었다. 무작위 추출법으로 표본을 선정해 조사한 결과 승패를 꽤나 정확하게 예측했다. 적어도 당선자를 바꿔 맞추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조사표본 수는 겨우 1천5백 명이었다. 이후 과학적 여론조사가 주목받게 됐다.
그러나 12년 뒤 갤럽 역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민주당 대통령 트루먼과 공화당 후보 토마스 듀이가 접전 중이었는데, 여론조사 결과는 듀이 후보가 44%대 31%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조사에서 듀이의 압숭이 예고되자 조사기관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더 이상의 조사를 중단했다. 일주일 뒤 투표하는 날 아침까지도 언론들은 ‘당선자 듀이’의 얼굴을 1면 머리에 실으며 그의 승리를 조금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정 반대였다. 여론조사에 답할 때와 실제 투표장에 갈 때까지 1주간 사이에도 유권자의 마음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당시 표본 집단을 나이대별 성별로 나누어 선정하던 방식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조사의 마법에 걸려 상황판단을 잘못했던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건 승부수만 해도 그렇다. 그가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강행했던 것은 일부 보수 신문들의 여론조사 보도로 자신이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잘못 판단한 데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주변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를 여론으로 믿고 ‘120퍼센트’ 승리를 확신하면서 전 재산을 걸고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터무니없는 득표로 가산만 탕진했다는 정치지망생들의 얘기는 어디 한두 번 들었던가. 그때마다 낙선자들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말한다. “무엇엔가 홀려 있었던 것 같다”고. 그래서 정치는 마약이라고까지 말해진다.
오늘도 출마자들은 하루 종일 전화벨을 울려대지만, 과연 응답자들은 얼마나 성실하게 진심을 애기해줄까. 아니 우선 응답을 거부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을까. 조사 대행기관은 또 얼마나 정직하고 공정하게 그 여론을 해석해 보고해줄까. 전화에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투표장에 나와 실제로 그 지지를 행사하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까. 무엇엔가 홀리지 않고 여론조사의 함정에도 빠지지 않으려면 출마자들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도 많다.
정해용 상임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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