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염유창 기자]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는 28일 부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11일 전격 발표했다. 로마 교황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600여 년만의 일이다. 85세의 고령인 베네딕토 16세는 체력 고갈을 이유로 교황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세계 종교·정치 지도자들은 교황의 갑작스런 사임 발표에 깜짝 놀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의 의사를 존중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함에 따라 3월 말 누가 새로운 교황으로 뽑힐지 지구촌의 모든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쇠약해져 책무 수행 부적당”
85세의 교황은 11일 아침 바티칸 추기경 모임에서 라틴어로 이 같은 결정을 공표했다.
그는 교황 직을 수행하는 데는 “마음과 몸 양쪽 모두의 힘”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신 앞에서 거듭 양심을 살펴본 바, 노령에 따라 본인의 체력이 더 이상 성 베드로 후계자직을 충분히 수행하기에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고 추기경들에게 말했다.
교황은 또한 “이 직무는 본질적으로 정신적이기 때문에, 말과 행실뿐만 아니라 기도와 힘든 일을 통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토록 수많은 변화 아래 놓여 있고 믿음의 삶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을 떨치기 어려운 이때, 성 베드로의 외침과 복음의 주장을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의 힘이 다 같이 긴요한데, 지난 수 개월 본인의 이런 힘들은 계속 쇠약해져, 본인에게 주어진 책무를 적절히 수행하기에 부적당하다고 느낄 정도까지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마지막 교황은 1415년 그레고리 7세이다. 이것도 서로마 카톨릭 교회가 분열돼 교황 자리를 놓고 두 명이 경쟁을 벌이게 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이날 베네딕토 교황은 자신의 선택을 “카톨릭 교회의 생명을 위해 매우 중대한 결정”이라고 불렀다.
2005년 교황 취임 당시에도 78세로 300년 만에 최고령 취임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500년 간 몇 명 안 되는 85세 이상 재임 교황이었다. 교황의 현재 나이는 전임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사망) 당시 연령보다 많다.
베네딕토 교황은 최근 노령으로 행동이 많이 느려졌으며 지난해 멕시코와 쿠바 방문 시에는 최초로 대중 앞에 지팡이 짚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령 대비 강인한 체력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일정을 취소한 적 없으며 특정한 노인성 질환도 없었다.
선종한 교황에 대한 애도 기간이 생략되게 된 만큼 3월 중순까지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 회의가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 이 비밀 선거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현재 120명의 추기경이 해당된다.
후임 교황으로는 몇 명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선두 주자는 없다. 지난 2005년, 교황 존 바오로 2세가 타계하면서 베네딕토 16세가 새 교황으로 오르게 됐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교황청은 28일 그리니치 기준 시각으로 오후 7시부터 교황직이 비게 된다고 말했다.
◇ 오바마 “교황 위해 기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1일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위한 기도를 올리고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발표문을 통해 “교황청은 미국과 세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 티모시 돌란 추기경은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건강 문제로 이달 말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소식을 듣고 전 세계가 깜짝 놀란 것처럼 자신도 그랬다고 밝혔다.
돌란 추기경은 이날 NBC 투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베네딕토 16세가 자신을 뉴욕 대주교로 임명한 만큼 특별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돌란 추기경은 추기경단 일원으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데 참여하게 된다. 그는 추기경단인 ‘콘클라베’는 베네딕토 16세가 지니고 있는 세계에 관한 지식과 신학적 깊이, 개인적 독실함, 언어적 재능 등을 찾는데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돌란 추기경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새 교황으로 자신이 고려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 신임 교황 누가 될까
세계 10억 명의 카톨릭 교인들을 이끄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1일 스스로 물러난다고 결정함에 따라 후임 교황선출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기 32년 제1대 교황 세인트 피터 이래 지금까지 266대까지 배출된 교황의 역사에서 선출임명권을 갖는 것은 추기경단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이다.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단은 규정에 따라 80세 미만의 추기경만이 참석할 수 있다.
추기경단은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외부와 격리된 채 새 교황 선출을 위한 회의를 계속하며 무기명 투표로 3분의 2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진행된다. 이 같은 과정은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수주가 걸릴 수도 있다.
본래 교황이 선종하면 15~20일간의 애도기간을 갖게 되지만 이번엔 그러한 기간이 생략되어 적어도 다음달 부활절(3월 31일)까지는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발표에 따라 카톨릭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 신자들과 성직자들은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나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남아공 윌프리드 나피어 추기경은 AP에 “북반부 외부 인물이 교황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의 추크우마 아와에그우 트레이더는 “미국에는 흑인 대통령이 있다. 이제 흑인 교황의 영향을 느껴보자”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오른 나이지리아 존 올로룬페미 오나이예칸 추기경은 “교황은 선출되고 물러난다. 교황이 새롭게 선출된다고 해서 교황청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교황은 이달 28일까지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밝혀 한 달간 공석이 예상된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바티간의 시스티나 성당에선 굴뚝으로 흰 연기를 피워 그 소식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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