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앞날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학자들의 진단과 전망이 엇갈려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소속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학자들이 대체로 유럽경제통화동맹의 암울한 미래에 방점을 두며 ‘파경(破鏡)’ 가능성을 제기하는 반면, 유럽 쪽 학자들은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은 여전히 유효하며 포기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입장이다.
◇마틴 펠트스타인 교수, ‘그리스 위기 방만재정’ 지적
유럽경제통화동맹(EMU) 국가들의 ‘결별(訣別)’에 무게 중심을 두는 미국 경제학자 그룹의 선봉장은 마틴 펠트스타인 미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 겸 하버드대 교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자콥 프렌켈(68) JP모건체이스인터내셔널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EMU의 시스템 리스크에 주목한다.
그리스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이면에는 이 나라의 방만한 재정 운용과 더불어, ‘드라쿠마화’를 포기하면서 통화정책을 스스로 펼칠 수 없게 된 원죄(原罪) 또한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게 미국 학자들의 주장이다.
벤츠 등 세계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업 강국 독일과, 관광 자원을 주요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그리스 등 피그스(PIGGS)국가들과의 역내 교역은 후자에 불리한 구도일 수 밖에 없지만, 유로화 도입으로 이러한 불균형을 되돌릴 '환율 메커니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 피그스 국가 위기의 뿌리라는 것이다.
자국 통화인 ‘즐로티’를 사용하는 폴란드가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빗장이 활짝 열린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에도 비교적 건실한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이 귀감이다.
유로 단일화 통합에는 성공했지만, 이질적인 국가들이 한울타리에 모인 복잡다기한 유럽의 상황도 걸림돌이다. 유럽의 ‘손톱밑의 가시’ 격인 그리스가 반면교사이다. 정부의 ‘허리띠 졸라매기 정책’에 극렬 반발하면서도, 정작 2년 전 독일의 지원 움직임에 ‘2차 대전 전범국가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미국계 학자들은 유로존 붕괴가 결코 탁상공론만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그리스가 유로지역 동맹을 탈퇴한 뒤 ‘드라쿠마’를 다시 도입하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이 같은 선택을 하면서 유럽연합이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펠트스타인 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유럽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 “독일 등 시장붕괴 원치않아”
유럽 학자들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유럽경제통화동맹 형성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맹주국들이 ‘거대 단일시장’의 붕괴를 결코 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Martin Wolf), 앤드류 글린(Anrew Glyn)등이 유럽동맹 유지론의 선두주자이다. UC버클리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금융통화 전문가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도 미국인이지만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이다. 이들은 유럽동맹의 중심국가인 독일이 결코 동맹의 붕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유럽동맹이 붕괴할 경우, 그 폐해는 고스란히 독일의 몫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정치적 위상이 추락하고, 마르크화가 초강세를 띠며, 유로 시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독일을 비롯한 채권국들은 통화가치 상승으로 수출부진, 수입증가 등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자금유입으로 자산가격 거품에 시달릴 개연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를 비롯한 채무국들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드라쿠마를 비롯한 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이 만연하는 암울한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의 중심국가나, 주변국가 어느 쪽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유럽인들이 수용할리 없다는 것이 유럽학자들의 견해다.
◇유러피안드림 깃발 내리면 중국미국과 상대 버거워
무엇보다 유러피안 드림의 깃발을 힘없이 내린 유럽이 뿔뿔이 흩어진 채로는 거대 중국이나, 미국과 맞상대를 하기 역부족이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중국보다 작은 유럽 대륙이 작은 나라들로 다시 갈려 서로 국경선을 높이 세우고, 관세와 환율을 각각 정한다면 미국, 중국과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유로화가 무너지면 유럽통합의 꿈도 무너진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최근 발언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유럽공동체가 붕괴될 경우 그 후폭풍이 고스란히 미국 경제에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유럽공동체 낙관론을 펼치는 또 다른 배경이다.
유럽 학자들은 유럽경제통화동맹 회원국들의 부침으로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는 있겠지만, 유로본드 도입, 유럽통화기금 (EMF) 설립 등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보완하며 유럽 공동체의 이상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해 나갈 것으로 본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유럽공동체’의 붕괴를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유럽공동체의 유지 쪽에 무게 중심을 싣는 목소리가 우세한 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로지역 체제가 장기적으로 재정동맹(fiscal union) 이행을 비롯한 EMU통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진국 경기침체 가능성 높아
이같은 유럽경제위기속에 세계 선진경제국들이 경제 성장률 둔화로 경기침체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관련 이에 맞설 정책 변화의 폭은 상당히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이 북미와 유럽, 일본의 경제학자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경제학자들은 재난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가용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3분의 1은 미국과 영국 등 유로존 지역 국가들이 2차 경기침체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며 경기후퇴에 대해서는 50%가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또 앞서 이미 한차례 이같은 예측이 입증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너랄 은행 경제학자 아네타 마르코우스카는 미국 경제는 위태로울 정도로 속도가 정체돼 있다며 거기에는 탈선의 충격을 완화할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마르코우스카는 이어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미 경제불황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며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마이너스 경제 징후에 대한 예언을 전면에 내세우길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세계 중앙은행장들은 지난 12일 세계적인 경제 성장이 늦춰지더라도 경기후퇴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은 현재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 경제학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나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BOE)이나 일본은행(BOJ)은 2013년까지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정확도를 떠나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ECB를 제외한 이미 다른 중앙은행들은 올해 두배로 금리인상의 절차를 내다보고 있다. 몇몇 유로존 국가들의 채무위기는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소수의 경제학자들은 ECB가 올해 안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 리서치 기관인 IFR 마켓의 경제학자인 디비양 샤는 우리는 예기치 못한 결과가 좀 더 개연성 있게 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며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기 위해 추가로 유동성 공급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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