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왕의 남자’ 등극

산업 / 양혁진 / 2013-01-25 17:36:24
국무총리에 김용준 인수위원장 지명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깜짝 지명했다.

[토요경제=양혁진 기자] 정치권의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한 깜짝 인사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택한 총리 카드는 김용준 인수위원장이었다.


의외의 인물로 인한 깜짝 인사가 아니라 김 위원장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후보군에서 배제된 상태여서 더욱 그랬다. 역대 인수위원장이 새 정부 초대 총리로 지명된 것은 처음이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에서는 지난 대선당시 선대위와 인수위에서 호흡을 맞춘 김 위원장이 박 당선인이 신뢰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인사가 아니었겠느냐는 평가를 내놓는다. 하지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가 여론의 따가운 질책과 함께 낙마위기에 처하면서, 상대적으로 검증된 후보를 발탁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새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가 자칫 검증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거나 낙마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는 부담을 원천 봉쇄하면서 정권 초반 정책 펼치기에 나선다는 것이지만, 그동안 박 당선인이 강조하던 책임총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 이동흡 논란, 박 당선인에게도 부담
김용준 총리후보가 지명을 받은 지난 24일은 국회 인사청문특위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었으나 여야 이견으로 회의 자체를 열지 못했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물 건너가면서 사실상 자진 사퇴의 수순만 남겼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협의를 거쳐 지명된 후보여서 낙마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야권의 공세는 더욱 강해졌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이날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저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고 했다”며 “박근혜 당선인께 당부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후보자의 임명철회를 건의해달라”고 주문했다.


문 위원장은 “이 후보자는 자격미달, 부적격자로 판명된 만큼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게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 위한 첫 단추이자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압박했다.


야권의 반대뿐만이 아니었다. 새 정부 첫 인사나 다름없는데 과반 이상의 여당이 야당에게 밀리면 안된다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이건 심하다”는 청문특위 위원의 소신발언이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확산된 것.


인사청문위원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의 기대와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그런 법관을 꼭 우리가 헌재 소장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면서 “적격 동의에 쉽게 응할 수는 없다”고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물 건너간 24일이 총리후보 지명에 적합했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박 당선인이 총리후보를 발표하면서 “헌법재판소 소장을 역임하시면서 평생 법관으로서 국가의 법과 질서를 바로세우고 확고한 소신과 원칙에 앞장서 오신 분”이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당선인은 “김 총리 지명자가 살아오신 길을 보면 늘 약자 편에 서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며 “김 지명자가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져내린 사회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박 당선인은 “인수위원장을 맡으면서 각 분과별 인수위원들과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하나하나 교감하면서 인수위원회를 합리적으로 이끌어왔다”고도 했다.


경제부총리제가 부활하면서 이른바 ‘책임 총리’론으로 역할배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것에 대해 새 정부 교통정리도 김 후보자가 적격이라는 부연 설명인 셈이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도 두 아들의 병역면제등 국회 인사청문회 검증과정이 남아있지만, 야권도 강경일변도로 가기에는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역풍의 우려가 있다.


◇ 책임 총리는 퇴색 가능성에 무게
‘무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김 후보이지만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책임총리제’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괄하는 대통령의 제 1위의 보좌직이다. 대통령 다음인 2인자로,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가 있을 때 1순위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헌법 제86조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를 통할한다’ 고 국무총리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제에서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은 사실상 한계가 있다. 실세 정치인 출신이 아니면 소신을 가지고 행정 각부의 관리와 업무조정을 할 수 없고 헌법에서 보장된 장관 제청권, 해임건의권 등 총리의 권한도 전부 행사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실세 총리로 손꼽히는 케이스도 손을 꼽을 정도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 개헌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각종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노무현 정부의 2대 총리였던 이해찬 전 총리도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정 운영 방향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대다수 총리는 제한적 권한 행사에 이름뿐인 총리로 하차하곤 했다.


그동안 박 당선인은 대선 공약에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 대통령 인사권을 분산하고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과 책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혀왔다.


‘책임총리제’로 불리는 이 공약은 국무위원 3배수 제청권 보장과 국무회의의 사실상 주재 그리고 정책조정 및 정책주도 기능 대폭 강화 등 총리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이 포함됐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특임장관실 기능을 총리실로 이전하고 ‘복지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보장위원회도 총리실 산하에 둔 것도 총리실 위상강화를 약속한 박 당선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당과 일각에서는 김 총리 지명자가 박 당선인이 공약했던 책임총리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보여줄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후보 지명 후 “김 후보자가 살아온 과정이나 인품 면에서 무난한 인물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면서도 “책임총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검증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소아마비를 딛고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정통 법조인이라는 점에서 총리 지명자로 손색이 없지만, 인수위원장이나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으로서 뚜렷한 역할이나 대외활동이 없었던 점을 돌이켜볼 때 새 정부에서 공약한 책임총리와는 거리가 있지 않느냐 것.


특히 차기 정부에서 경제정책은 경제부총리가 총괄하고 안보외교 정책은 청와대가, 복지 및 사회정책은 총리가 담당하는 삼각구도가 형성되면 돈 줄을 쥔 경제부총리의 권한이 막강해지고 총리의 권한은 약화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지명자가 존경받는 법조인이라는 점에서 새 정부 초기의 부처들의 불협화음을 제거하는 조정자의 역할이 되지 않겠느냐” 면서도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도 아니고 해서 ‘책임 총리’ 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인수위원장이 총리후보 지명된 것은 최초
대선이 직선제로 바뀐 이후 6명의 인수위원장이 있었지만 인수위원장이 총리후보로 지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5년전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원장은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이었지만, 내각에는 기용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16대 인수위원장은 임채정 전 국회의장으로 당시 3선 의원인 임 전 의장은 인수위 업무가 끝난 후 국회로 돌아가 국회의장을 지냈다.


김 지명자는 두 직책을 어떻게 수행할지 묻는 질문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인수위원장 발령받은 게 취소되지 않는 한 양쪽을 다 겸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수위 위원장으로서 당선인에게 부처 업무보고를 하고 국정 로드맵을 발표해야 한다. 또한 동시에 총리후보로서 인사청문회를 준비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1993년 첫 공직자 재산공개 이후 20년 만에 공직자 재산신고도 다시 해야 하는 등 준비할 것이 많다. 인사청문회 일정과 인수위원장 일정이 겹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인수위원 중 상당수가 장관으로 입각한 만큼 겸직이 어렵지 않다는 의견이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은 모두 인수위원을 하다가 바로 장관이 됐다. 하지만 총리 지명자는 장관 후보자를 추천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장관 후보와 달리 겸직에 대한 어려움은 더하다.


◇ 내각 발표는 다음달 10일 전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4일 총리 지명에 이어 국회에 총리 인사청문요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박 당선인이 국회에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면 여야 합의로 청문회 일정을 잡고 인사청문 절차에 들어간다. 인수위는 다음 달 5일 이전에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및 인준 표결 절차를 마칠 계획이다.


박 당선인은 김용준 총리 후보자와 함께 각 부처 장관에 대한 인선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초대 국무총리 내정자의 추천에 따라 장관 등 국무위원을 지명·발표 할 수 있다. 또 청와대에서 일할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9수석을 선임할 수 있다.


다만 박 당선인이 그간 국무총리의 제청권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해온 만큼 장관 내정자 발표는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제부총리 등 내각구성 명단 발표는 국회에서 새 총리 임명동의안이 처리된 후인 다음 달 5~10일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장관 후보자 임명동의 요청안은 국회 제출 이후 15일 이내에 실시돼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2월 25일 대통령 취임에 맞춰 인선을 마무리 지으려면 늦어도 다음 달 10일께는 조각이 완료돼야 한다.


또한 조각명단이 발표되려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선행돼야 한다. 새 틀의 정부조직이 확정돼야 해당 국무위원을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1월 28일께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번 인선 발표는 5년 전과 비교해 다소 이른 편이다. 이명박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은 1월 16일 발표됐지만 이번에는 1월 15일로 하루 이르다. 초대 총리 발표일도 당시 1월 28일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번에는 4일이나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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