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염유창 기자] 2013년 들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세계 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한국 증시만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디커플링’(국가와 국가, 또는 한 국가와 세계의 경기 등이 같은 흐름을 보이지 않고 탈동조화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글로벌 주요 증시가 2~5%대 상승을 유지한 것과 달리 한국 증시의 상승률은 -0.5%로 세계 78개 주요국 중 최하위권인 70위에 속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증시가 하락한 국가는 말레이시아(-0.7%), 방글라데시(-1.2%), 파키스탄(-1.8%), 팔레스타인(-1.9%), 슬로바키아(-2.4%), 우크라이나(-3.6%), 모로코(-3.8%), 키프로스(-4.6%) 등 8곳에 불과했다.
◇ 뱅가드 영향에 외국인 순매도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홀로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번 달 초반까지 강한 매수세로 코스피 지수를 끌어올리던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배성영 연구원은 “연초 글로벌 주식시장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는 글로벌 증시와의 디커플링 현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국내 증시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의 매수세 둔화로 뱅가드펀드의 벤치마크 변경과 원화강세에 따른 환차익 욕구의 부각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대신증권 이대상 연구원은 “아시아 국가로 유입되는 자금은 여전히 풍부하지만 한국으로 오고 있지 않다”며 “가장 유력한 이유는 뱅가드 신흥국펀드의 벤치마크 변화에서 오는 외국인 매도물량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뱅가드의 지수 변경이 국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신흥국 펀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덱스 운용 비중이 높은데다 뱅가드가 인덱스 펀드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약세 원인은 펀더멘털(기초여건) 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주 중국의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1년 1분기 이후 2년 만에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주택·고용 지표도 양호했다. 미국의 지난주(17일 기준)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33만5000건으로 5년 만에 최저수준을 나타냈다. 지난달 주택착공건수도 95만4000채(연환산 기준)로 4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한국은 원화강세 및 엔화약세 탓에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원화강세는 작년 11월부터 현재까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작년 11월1일 1,092.3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18일 1,057.20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연구원은 “한국은 작년 11월 이후 엔화약세·원화강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수출증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면서 “펀더멘털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가 결국 주요국 간의 주식시장 수익률 격차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 자동차와 IT 부진도 한 몫
지난 2년간 한국 증시의 강세를 이끌었던 두 종목인 자동차와 IT 업종이 부진한 것도 증시 약세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승우 연구원은 “현대차와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들어 2.3%와 2.8%씩 하락했다”면서 “새해 들어 유독 한국증시가 약한 데는 IT와 자동차의 부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글로벌 위기 이후 자동차의 강세를 이끌었던 환율과 경쟁업체 부진, 저가·고연비차 선호현상 등 변수가 일제히 정반대로 돌아섰고, IT 성장세를 견인한 스마트폰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도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증시 약세의 주요 원인으로 뱅가드 이슈로 인한 수요 부족보다 IT의 부진을 꼽는 의견도 있다. 유진투자증권 곽병렬 애널리스트는 22일 “뱅가드 이슈로 연초부터 한국증시의 외국인수급이 꼬인 건 사실이지만 이를 외국인 수급의 전체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만증시를 통해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전한 그는 “연초이후 대만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338억원을 순매도 했지만 뱅가드 이슈로 인한 대만증시의 상대적인 외국인수급 개선은 거의 없었다”며 “이는 뱅가드 이슈로 전체를 해석한다는 것이 상당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곽병렬 애널리스트는 “한국, 대만증시 모두 수익률이 좋지 않고, 외국인수급도 둘 다 별로라는 점은 IT업종의 부진에서 찾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 중소형·성장주 중심의 매매 전략 필요
증시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원·엔 환율 안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원화 강세 및 엔화 약세 등 환율의 변동이 투자자들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시장과 투자자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불안심리가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증시의 수익률 회복을 위해서는 원·엔 환율의 안정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된다. 현재 엔화는 6주 연속 가치가 떨어져 31개월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21일과 22일 양일간 열리는 일본 금융정책결정회의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 회의에서 추가 양적완화 여부와 인플레이션 목표치 상향 등을 결정한다.
새로운 정부가 2월에 출범하면 3월이나 4월 중 경기부양에 대한 정책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 기업의 1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치가 현재 굉장히 낮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될 여지는 충분하다. 주가지수 입장에서 볼 때 경기 측면에서 속도보다는 방향성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컸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주가의 흐름은 여전히 긍정적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약세장 구조에서는 철저하게 성장주가 해답일 수 있다고 말한다. 차기 성장할 수 있는 업종이 중소형주, 정책주에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중소형주 중심, 신성장주 중심으로 매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KDB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IT와 자동차를 시장과 동일시하는 등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글로벌 위기가 치유되면 IT와 자동차에 의존하는 시장 양상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무엇이 상승을 이끌 것인지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단기적으로는 환율의 안정화 여부에,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증시 대비 국내 증시의 상대적 저평가 매력을 확대해 외국인 동향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면서도, 한국 증시의 디커플링 현상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한국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논의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움직임은 긍정적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대외여건만 놓고 보면 현재 한국금리만 홀로 하락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국 증시 호황될 것” 전망도
이런 가운데 삼성증권은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증권은 투자자들에게 ‘나는 지금 주식 사러 간다!’ 제목의 편지를 보냈다. 가수 송창식 씨의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의 가사 중 한 소절인 ‘나는 지금 담배 사러 간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담배는 ‘한국 주식시장’, 담배 가게 아가씨는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적인 종목들’을 비유한다는 것이 삼성증권 측 설명이다.
삼성증권은 크게 세 가지 축면에서 한국의 주식시장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신용등급이 동일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 기준으로 한국과 동일한 국가신용등급 Aa3를 받고 있는 주요 국가는 중국, 일본, 대만, 벨기에 등이 있다. 이들 국가의 최근 5년 평균 PER는 13.3배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10.1배에 불과하다. 동일한 신용등급을 받고 있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 증시는 무려 30% 수준이나 저평가됐다는 해석이다. 삼성증권은 두 번째 이유로 올해가 ‘글로벌 경기의 바닥 통과가 예상되는 해’라는 점을 들었다. 미국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고 중국 경기 저점 통과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경기의 순환적 회복이 전망된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자산인 국채 등에서 위험자산인 주식시장 등으로 돈이 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경기방어를 위해 시중에 푼 유동성 규모는 17조 달러(약 1경7900조원)로 추정된다. 이러한 유동성 대부분이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됐는데 서서히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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