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등쌀에 못 이겨 해외로 떠납니다”

산업1 / 허지인 / 2013-01-18 16:27:52
게임업계, 규제 강화 움직임에 ‘울상’

“우리가 그토록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냐? 무슨 사건만 터지면 우리 탓이래…”
한 게임업체 종사자가 기자에게 한 푸념이다.

▲ 게임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셧다운제’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게임 산업 관련 규제가 강해질 조짐을 보이면서, 업체들이 해외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들이 올해 경영 화두를 ‘글로벌 공략’으로 정하고 해외 시장 확대에 나섰다. 외견상 국내 시장이 포화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정부 규제 강화 탓에 성장 환경이 악화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탈출’하는 모양새다.


◇ “규제 완화 믿었는데 ‘셧다운제’ 확대라니…”
게임업계는 최근 예상치 못한 여당의 ‘게임 규제 강화법안 발의’ 직격탄을 맞아, ‘멘붕’ 상태에 빠진 모양새다. 게임업체 수장(윤상규 네오위즈게임즈 대표)의 인수위 참여와 새 정부의 규제완화 의지에 기대감을 가져졌기에, 게임업계의 실망은 더한 상태다.

새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여당에서 게임 산업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게임 업계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지난 8일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17명(새누리당 16명ㆍ무소속 1명)의 의원은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을 제한하는 이른바 ‘셧다운제’를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확대 실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셧다운제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적용되고 있다.

또 중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게임의 개발과 배급을 제한할 수 있는 ‘게임중독 유발지수’를 만들고, 게임업체 매출액의 1% 범위에서 게임중독 치유센터 설립에 소요되는 기금을 부담시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법안을 발의한 손 의원은 여당 소속의 대표적인 ‘친박’의원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번 법안을 놓고 업계에서는 새 정부의 게임 산업 규제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그간 공식적인 발언을 자제해오던 업계 수장들이 앞장서 비판에 나섰다.

남궁훈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법안 상정 자체에 항의하는 의미로 올해 열릴 ‘지스타 2013’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위메이드는 지난해 열린 ‘지스타 2012’의 메인 스폰서로 참가해 성공적인 행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남궁 대표는 “해운대 지역구 의원(서병수ㆍ새누리당)이 법안에 참여한 상황에서 지스타에 참석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올해 지스타 행사 자체를 아예 열지 말 것을 제안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남궁 대표의 이런 비판에 대해 애니팡 개발사 선데이토즈의 이정웅 대표, 캔디팡 개발사 링크투모로우의 이길형 대표를 포함해 주요 게임사 대표들도 남궁 대표의 제안에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다.
게임업계 수장들의 이 같은 행보는 이번 법안이 게임 산업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셧다운제도의 경우 청소년의 이용감소 보다는 부모 명의도용 사례만 증가시켰다는 정부의 조사결과가 있다”며 “실효성 없음이 입증된 셧다운제를 놓고 오히려 적용 시간을 늘린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은 이번에 발의된 법안 외에도 다음 달부터 고스톱 및 포커류를 일컫는 이른바 ‘고포류’등 사행성 게임에 대한 규제안도 시행할 예정이다.


◇ 규제 ‘등쌀’ 못 이겨… 해외 진출 잇따라
온라인ㆍ모바일 게임사 대표들의 해외 출장이 최근 들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미국 출장길에 나선데 이어 송병준 게임빌 대표가 6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지난 11일께 귀국했다. 박지영 컴투스 대표도 이달 말 현지 법인을 둔 일본, 미국 등 해외시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들의 출장 목적은 해외 사업 확장이다.

지난 연말 엔씨소프트 미국 현지 법인을 방문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현지 사업 현황을 보고 받고 새해 경영 구상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경영 승부처를 해외시장으로 삼은데 따른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올 3분기 중국 지역에 ‘블레이드앤소울(이하 블소)’, 동남아시아 지역에 ‘길드워2’를 출시한다. 이 회사는 두 게임의 해외 출시를 통해 정부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부진을 만회하고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블소, 길드워2의 성공적 중국 서비스, 북미 스튜디오의 신작 와일드스타의 성공적 개발 등을 위해 도약하는 해로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송병준 게임빌 대표는 최근 가진 워크샵에서 직원들에게 “해외 사업에서 실효를 거두고 있다”며 글로벌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게임빌의 해외 매출은 지난 2010년 53억원에서 2011년 107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은 190억원을 기록해 전년 전체 해외 매출도 넘어섰다. 올해는 해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의 연동으로 아시아 지역 매출 비중을 20%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컴투스는 국내외 중소개발사들과의 협력을 통한 글로벌 진출에 주력한다. 또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일본의 NTT 도코모의 앱마켓에 자체 브랜드샵을 운영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린다는 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컴투스 관계자는 “미국, 일본, 중화권 등 주요 국가군을 대상으로 현지화를 더욱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고, 인도 등 게임 신흥국까지 범위를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개 분기 연속 적자 행보를 보인 위메이드는 올해 북미와 유럽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위메이드는 해외 공략 강화를 위해 최근 모바일 통합 브랜드 ‘위미’를 출범했다. 위미는 올해 출시되는 50여종의 타이틀에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셧다운제 적용시간 확대와 중독 부담금 강제 징수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국내 게임업계 업황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시장 포화와 사업 환경악화로 올해 국내 게임사들이 해외 진출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규제 강화에 게임株 ‘휘청’
게임 산업에 대한 국내 규제가 강화되면서 해외 모멘텀이 게임사들의 투자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와 위메이드 주가는 최근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윤상규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며 주목받았던 네오위즈게임즈를 비롯해 모바일 게임주인 게임빌과 컴투스 역시 약세를 나타냈다.

게임주의 전반적 하락은 게임산업 규제를 담은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국회에 제출된 안은 청소년의 게임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강제 셧다운제’ 적용 시간을 지금보다 3시간 확대하고, 게임사 매출의 1% 이하를 게임중독 치유부담금으로 내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게임사들의 해외 모멘텀이 한층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이선애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새 정부의 게임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사들의 해외 진출 성과는 주가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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