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ㆍ화학 웃고 자동차ㆍ철강 울어

철강·중공업 / 도영택 / 2013-01-18 15:56:17
계속되는 ‘엔低’… 증권시장 변화는

▲ 아베 신조 정권의 재집권으로 엔화 약세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엔저 현상’은 국내 증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 진행되기 시작한 엔화 약세 현상이 자민당 아베 신조 정권의 재집권이 확실시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더욱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87엔(1월 2일 기준)으로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대내외적으로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 정권의 경기 부양 정책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아베의 경제 정책엔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이 담겨 있다. 물가상승률 목표를 연 1%에서 연 2%로 올려 잡고 10조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으며 연간 국채 발행 한도(44조엔)를 폐지했다.

여기에 일본은행도 자산 매입기금을 10조엔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재정절벽 협상 일단락도 안전자산 선호도를 낮추며 엔화 약세 현상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 여행ㆍ화학ㆍIT주 ‘나쁘지 않아’
엔화 약세는 국내 증시에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엔 캐리 트레이드(일본의 낮은 금리를 활용해 엔화를 빌려 제3국에 투자하는 금융거래)가 활발해지며 국내 증시에 일본계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 코스피지수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엔화 약세를 반기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여행주를 들 수 있다. 여행주는 산업 특성상 엔화 약세가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국내 여행사는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 출국) 비중이 절대적이다. 일본인 관광객은 일본 여행사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기에, 주 고객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 관광객인 국내 여행사 특성 상,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여행객 수가 감소하더라도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엔화 약세로 일본을 여행하려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져 오히려 긍정적이다.

경기민감주도 엔화 약세로 인한 상승세가 전망되는 종목 중 하나다. 이원선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엔화 약세 국면에서 강세를 보인 업종들은 화학, 기계 등이다. 일본으로부터 핵심 부품을 수입하는 업종으로 대표적인 경기민감주”라고 설명했다. 엔화 약세로 매력이 떨어진 저금리 안전자산보다 위험자산을 선호하게 된 일본인 투자자들이 경기민감주에 눈을 돌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화학업종의 경우 원재료를 수입하는 화학업체의 원가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업스트림(석유화학공정의 첫 단계인 나프타 분해를 통해 에틸렌 등 기초 유분을 만드는 공정)업체일수록 전체 제품 가격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롯데케미칼(종목명 호남석유)이 그렇다.

단, 다운스트림(기초 유분을 분해해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제품을 만드는 공정)업체의 경우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게다가 일본 업체와 제품군이 겹치기도 한다. 비슷한 질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던 국내 화학업체엔 엔화 약세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IT주도 엔화 약세 바람에 거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IT주는 엔화 약세 시 가격 경쟁력에 밀려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업종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매분기 사상 최대 이익 경신에서도 나타나듯 국내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진 상황이다. IT 부품 업계에 다소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휴대폰 등 일부 품목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IT주 주가는 엔화 약세와 무관하게 움직일 수 있다.


◇ 가격 경쟁력 밀리는 수출주 ‘주춤’
엔화 약세로 피해를 보는 업종도 물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 제품 대비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측면에서 수출주에 부정적인 소식이 된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수출기업 업황 경기실사지수도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원/달러 환율과 원/엔 환율 하락이 수출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엔화 약세에 속병을 앓는 대표적 예가 자동차주다. 가격 경쟁력 하락에 대한 우려로 최근 코스피지수 대비 자동차지수는 약세다. 자동차주 주가는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하락세를 보이는데 현대차는 12월 중순 23만원에 거래됐으나 올해 1월 들어 2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아차는 같은 기간 6만2000원에서 5만4000원으로 하락했다. 국내 자동차업체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어선인 ‘달러당 90엔’이 임박했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철강주도 비슷한 현실에 처해있다. 아시아 통화가 모두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국내 철강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주요 철강 수출시장인 아시아 지역에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국내 철강 수출단가 경쟁력이 일본 업체에 비해 떨어져 수출량 감소로 이어진다. 영업환경에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다.

하지만 엔화 약세로 환차익이 발생해 갚아야 할 외화 차입금이 줄어든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란 의견도 나온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엔화차입금은 각각 1조8000억원, 5000억원 정도다.


◇ 일본인 관광객 감소에 항공주 타격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항공주는 인바운드(외국인 입국자) 수요 감소에 따른 실적 부진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본인 입국자는 지난해 11월 전년 대비 약 25% 감소했는데 엔화 약세가 이를 더 부추겨 일본 노선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일본 노선은 국제 여객 매출액의 약 10%, 국제 여객 부문 영업이익의 약 20~30%를 차지한다.

거꾸로 일본으로 관광을 떠나는 한국인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내국인 관광객이 주요 고객인 여행주와 달리 항공주는 일본 저비용 항공사와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일본 저비용 항공사 피치항공이 인천~오사카 노선을 취항하는 등 일본 항공사들이 공격적으로 한일 노선을 늘리며 국내 항공사와의 경쟁에 나섰다. 엔화 약세에 따른 일본 항공사 가격 경쟁력 상승은 국내 항공사 운임 인하로 이어질 수 있어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한항공은 포스코처럼 엔화 차입금이 높다는 점에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한항공의 엔화 차입금은 1조1000억원 수준으로 엔화 가치 변동에 대한 환헤지를 하지 않아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부채 평가액과 이자비용이 줄어든다.

항공주와 비슷한 이유로 호텔신라에 대한 우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양일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원화 대비 엔화 약세로 일본인 입국자 감소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환율과 일본인 입국자 수 상관관계가 높았던 연도를 분석해보면 원/엔 환율이 10% 하락 시 일본인 방문객은 약 9% 감소했다. 호텔신라의 경우 일본인 방문객이 10% 감소하면 영업이익은 8%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김중수 韓銀총재 “엔低 적극 대응”
이런 가운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의 원ㆍ엔 환율 급락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또 엔화환율을 직접 겨냥해 “큰 폭의 엔화가치 하락 등으로 환율변동성이 확대하면 스무딩 오퍼레이션(환율 미세조정), 외환건정성 조치 등으로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환율 문제에 관해서는 말을 아껴왔기 때문에 김 총재의 이번 발언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김 총재는 지난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자본시장이 투기적 동기에 의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정부가 당연히 막아야 한다”며 “환율 수준이 아니라 변동 폭이 지나치게 큰 것을 조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엔저 현상이 심화하며 일부 수출기업의 주가가 내려가는 등 부정적인 현상이 가시화하자 결국 구두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김 총재는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을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 발맞춰 운용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는 “금융정책, 재정정책 등은 같이 갈 때 효과적”이라며 “물가를 고려하며 (새 정부의 정책과) 최적의 조화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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