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후 대한민국 권력 무게중심이 청와대에서 정권인수위원회로 급격히 기울 것으로 예고되면서 올 들어 크고 작은 악재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을 비롯한 에너지공기업 수장들은 좌불안석이다.
정권교체가 아닌 정권교대인 만큼 충격파가 덜할 순 있지만 안 그래도 ‘파리목숨’인 정권 말 공기업 수장자리를 꿰차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초까지 뭔가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엔 새 정부 출범직후 짐을 싸야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도마 위에 오른 생선 모양새가 된 에너지공기업 사장들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인사 정국’에서 인사와 경영 혁신을 통해 생존력을 높인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물갈이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에너지공기업인 한국전력과 수력원자력, 가스공사,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이른바 ‘빅6’는 공교롭게도 최근 몇 달 새 기관장들이 연임되거나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에너지공기업의 맏형격인 한국전력은 지난달 초 전임 김중겸 사장이 전기세 인상문제를 놓고 상급부처인 지식경제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 홀연히 사표를 내던지고 나간지 40여일만인 지난 17일, 대선을 이틀 앞두고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차관 출신인 조환익 전 코트라 사장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맞아들였다.
조 신임 한전 사장의 임기는 3년으로 이론상 2015년 12월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원론적인 이야기고, 수명은 전적으로 권력 성층권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조 사장은 취임 다음날이자 대선 전날인 18일 전광석화로 1급인 처장급을 포함한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하면서 잰 걸음으로 입지 굳히기에 들어갔다.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은 지난 8월 정부의 조직 경영평가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자진 사퇴한 강영원 전 사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취임직후 석달간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서 사장은 지난달 그간 갈고 닦은 칼을 빼들면서 대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개편 내용의 핵심은 개발부분 부사장(COO) 산하의 지역본부를 기능본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아시아본부, 미주본부, 유럽아프리카본부 등 기존의 3개 지역본부 체제를 탐사본부, 생산본부 등 프로젝트 중심의 매트릭스조직 체제로 바꿔 전문성 확보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지난 7월 추가 연임에 실패하고 물러난 김신종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에 이어 지휘봉을 쥔 고정식 사장은 ‘글로벌 톱20위권 광업메이저 전문기업’을 목표로 매주 두 차례씩 임원회의를 직접 주재, 업무파악을 소홀히 하거나 보고가 부실한 간부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조직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 혁신 내세워 보지만…
최근 잇따른 원전사고와 납품비리로 여론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6월 고리 1호기 사고 및 은폐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종신 전 사장 후임으로 취임했다.
임기가 2년 6개월이나 남아있는 그는 조직 쇄신을 기치로 자신만만하게 한수원의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조직 내에서 잇단 불협화음이 터져 나와 최근 설자리가 크게 좁아진 상태다. 지난달 국회 국정 감사장에서는 원전 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김 사장은 요즘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직의 ‘환골탈태’를 위해 안전, 소통, 청렴, 혁신의 4개 부문에 걸쳐 16개의 경영혁신 방안을 내놓고 본격적인 ‘수술’ 내지 ‘해부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까지 1년 더 연임이 확정된 주강수 가스공사 사장과 정승일 지역난방공사 사장도 보폭은 비슷하다. 올해로 5년째 가스공사를 이끌고 있는 주 사장은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세계화’라는 표적을 정조준하고 있다.
새해에는 국외 자원 개발, 액화사업 진출, 가스자원 지분 투자와 자산 매입 등을 통해 국가에너지 위상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지난해 11월부터 시추작업에 들어간 아프리카 모잠비크 프로젝트에서 추가 탐사를 통해 가스물량을 더욱 늘려나갈 방침이다.
정승일 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상생경영'을 모토로 올 겨울은 중소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발주금액을 확대하고 도급단계를 단순화하는 등 동반성장문화 확산에 주력하기로 했다. 또 국산화가 가능한 중소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내부적으로는 동반성장실적을 내부경영평가와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등 직원들을 추스려 나갈 계획이다.
노력은 하는데, 현실은 ‘물갈이’
하지만 에너지공기업 수장들이 이렇듯 열심히 ‘자가발전’ 내지 ‘물밑작업’과 정권인수위의 시계추는 어긋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내년 2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기업 사장들도 대거 물갈이될 전망이다.
정권 인수위에 참가한 관료들이 공기업이나 산하 기관들의 수장을 싹쓸이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권력의 공식이다. MB 정부도 출범 6개월 만에 한국전력 석유공사 광물공사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 사장들을 일괄 교체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5일 ‘낙하산 인사관행’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박 당선인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문제를 거론하며 “최근에 공기업, 공(공)기관 이런 데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을 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수장 교체를 통한 공기업 개혁을 단골 메뉴로 내놓은 만큼 에너지 공기업 기관장 대부분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내년 상반기 중에 옷을 벗을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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