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낼 정도로 ‘DJ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한 전 대표의 이런 선언으로 인해, 2주일도 채 남지 않은 대선 정국이 막판 대 격변의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지난 10월 한광옥 전 대표에 이어 한화갑 전 대표까지, 민주당 대표를 지낸 ‘동교동계’의 두 인물이 박 후보에 대한지지 의사를 드러낸 데 대해, 새누리당은 내심 함박웃음을 지으면서도 밖으로는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나름의 판세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반면, 민주당 측은 한화갑 전 대표의 이번 선언을 ‘DJ에 대한 배신’으로 취급하며 날을 세우는 모양새다. 정계에서는 한광옥ㆍ한화갑 두 동교동계 인사의 박 후보 지지 선언이 막판 대선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인당수에 몸 던지는 심청이 심정으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입당은 하지 않은 채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 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대한민국 미래와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 정신을 강조, “계속해서 그 길을 가야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 전 대표는 이날 특강에서 “‘한화갑’을 비싼 값에 사서 한편으로는 고맙다”며 박 후보에 대한 지지가 호남지역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한화갑이를 사라. 비싼 가격으로 팔려가겠다고 생각했다”며 “대신 전라도에 대해 확실하게 지원한다는 보장을 해라. 그래야 내가 전라도 사람에게 ‘한화갑이가 전라도를 위해 팔려간 것’이라고 할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박 후보가 전라도와 광주 유세에서 한화갑이 요청한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확약했다”며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정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그래서 춘향이가 서울 올라간 이 도령을 큰 칼 차고 옥중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다렸던 심정으로 박 후보가 김대중 때도 못했던 일을 박근혜가 해줬다는 말을 듣기 원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에는 여자 대통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남자끼리 대통령을 하니 매일 싸운다. 섬세한 어머니 마음으로 봉사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전 대표는 특강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지선언과는 별개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DJ 뜻 배신” vs “송장 취급할 땐 언제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사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지지한 것에 대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김 전 대통령을 팔지마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한 전 대표는 박 후보 지지선언을 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본인들의 정치적인 선택은 자유이지만 그들이 하는 행태는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우 공보단장은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왜곡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에 활용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며 “그냥 본인들의 선택에 따라 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것이 차라리 솔직한 것이고 자신들을 지지했던 지지자들을 분노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며 “박 후보도 이를 이용해 이간질 하지 말라.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한화갑 대표의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과 관련, DJ 비서 출신인 김옥두 전 의원은 한 전 대표에게 ‘나의 동지이자 친구인 화갑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라는 제목의 공개편지를 보내 “현충원에 계신 대통령(DJ)께서 얼마나 통곡하시겠는가. 죽어서 우리 곁에 자네 자리가 없을 것 같아 허전하고 슬프기만 하네”라며 서운함과 착잡함을 드러냈다.
동교동계 좌장격으로 한 전 대표와 함께 ‘양갑’(兩甲)으로 불렸던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도 “DJ의 뜻에 반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팔지 말라”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비판에 대해 한화갑 전 대표는 “지금 동교동계는 실질적으로 없다. 그들이 바로 김대중 정신을 축소시킨 장본인”이라고 날을 세웠다.
한 전 대표는 “한화갑에게 김대중은 특허다. 당당한 권한이 있다. 김대중은 특정 정치세력이 독점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제가 동교동 사람이라지만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이후로 동교동이 연락을 안한다”며 “금년 김대중 대통령 3주기 끝난 후 다 같이 점심 먹었는데 저한테는 연락도 안 왔다. 그런데 이렇게 동교동계가 걱정해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고 감사하다”고 비꼬며 동교동계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도 “지금 민주당은 과거 민주화 운동한 세력들의 정당이 아니다”며 “열린우리당이 이름만 바꾼 것이다. 노무현 세력은 약자를 탄압하고 제거하는 정치세력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친노는 적개심으로 약자를 말살하는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내가 있던 민주당과 지금의 민주당은 다르다”고 했다. 또 “나는 문재인 후보에 대해 신뢰감이 없다”, “야당도 대통령 후보가 있는데 그쪽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가만히 죽은 송장 쳐다보듯 하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비난하고 있다”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도 깨졌다”며 “일단 문재인 후보가 권력을 잡으면 안철수는 팽 당한다”고 잘라 말했다.
◇ “민주당이 호남에 해 준 게 뭔가”
한화갑 전 대표는 호남민심에 대해 “전라도가 자꾸 민주당 밀어주면 전라도는 민주당 식민지로 남을 것”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호남 표는 분명히 예전 대선과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초에 박 후보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직접 만났는데, 국민 통합, 과거사 정리, 정당 개혁 면에서 서로 의견이 일치했다”며 “대통령 후보들의 면면을 보니 그래도 순수하게 애국적인 차원에서 볼 때 박 후보가 가장 준비된 후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심정으로 박 후보에게 호남 발전계획을 제시했고, 박 후보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는 “내가 박 후보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전라도 표 때문에 대통령이 됐지만 대통령이 된 뒤 차별했다. 이를 시정하라’고 하자 박 후보는 ‘아버지 몫을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청와대 재직 시 인사에서 호남을 차별했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김옥두 전 의원이 자신에게 편지로 박 후보 지지에 대한 서운한 심경을 드러낸 것과 관련해서는 “유신시대 같으면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라면서도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라도 사람으로서 내 고향 사람에게 ‘한화갑은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지역을 발전시킬 인물’이라고 칭찬받고 싶다”고 말했다. 40여년간 몸담았던 동교동계와 사실상 결별을 결심했고, 그 이유는 지역발전을 위해서이니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 흔들리는 호남 민심… ‘표심’으로 이어질까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에 이어, 한화갑 전 대표까지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에 나서면서, 민주당 텃밭인 호남지역 민심의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3일엔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하던 세력이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기도 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 지지단체인 광주ㆍ전남 혁신포럼(전 CS코리아 광주ㆍ전남지역본부) 일부 회원들은 “안철수 현상은 낡은 정치로부터의 혁신과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전부였다”며 “이제 안철수 현상이 좌절된 상황에서 그 이상을 실현하는 대안은 박근혜 후보뿐”이라고 지지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그동안 호남은 90%가 넘는 절대적 지지를 민주당에게 보내왔지만 일당 독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줬다”면서 “호남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정당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정권에서 호남 인재 등용을 배척했던 주역이었다”며 “박 후보가 밝힌 호남인재 등용과 인사 대탕평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광주ㆍ전남지역 대학교수 220명도 같은 날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김주훈 조선대 전 총장 등은 “희망찬 대한민국을 창조할 지도자는 오직 박 후보뿐”이라며 지지 배경을 밝혔다.
대선이 2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생기는 호남 민심 변화에 대해 새누리당은 내심 함박웃음을 지으면서도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는 나름의 판세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안형환 대변인은 현재 판세에 대해 “박근혜 후보가 앞서 나가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면서도 “저희의 분석이나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분석이나 5-6%정도 앞서 분명히 수치상 일주일 사이에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은 맞지만 이것도 대부분의 조사결과가 오차범위 내 수준이어서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의 지역유세가 계속되면서 잠자고 있던 지역표심을 꿈틀거리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며 “자만하지 않고, 선거판이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국민만을 보며 민생만을 생각하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호남판세와 관련,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문재인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노무현 정권의 속편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이 많았다”면서 “호남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이제 호남인들도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늘고 있다”고 호남 민심의 변화의 요인을 밝혔다.
정치계의 한 인사는 “최근 민주당 소속 호남지자체장들의 수뢰사건과 함께 호남의 민심은 호락호락하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텃밭을 지키려는 민주당과 호남을 향한 새누리당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박 후보에 대한 실질적인 득표율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인사는 “새누리당에서는 지지율 20%+α가 목표라고 이야기 하지만, 지역에서는 실제 대선 득표율에서 10%를 넘긴다면 성공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이 주류”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 개인의 인기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지금의 두 자릿수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고, 최근 한광옥 전 DJ 비서실장에 이어 한화갑 전 대표가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박 후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런 요인들이 호남지역에서 지지율을 견인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현재의 지지율이 투표로 이어지기 위해서, 또 그 이상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말 만으론 안된다”며 “공약이든 인사탕평책이든 박 후보의 호남사랑의 진정성을 담보할 확고한 카드가 나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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