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하나 잘못 인수했을 뿐인데…”

산업1 / 유상석 / 2012-12-06 16:13:20
대기업 발목 잡는 ‘애물단지’ 건설사들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재계에서는 ‘건설의 저주’라는 말이 돌고 있다. 한때 재벌그룹들의 ‘로망’이었던 건설사가 이젠 ‘기피대상 1순위’ 신세가 됐다. 건설 하나 잘못 사들였다가 그룹 뿌리가 흔들리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아파트 사업이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최고 인기 매물이었던 건설사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주택 분양 하나만 잘해도 몇천억원대 현금이 속속 들어왔다는 전설은 이제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 건설업체 잘못 먹었다가… 그룹 ‘휘청’
극동건설은 1957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1세대 건설사다. 지난 2007년, 웅진그룹이 극동건설을 인수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온 바 있다. 웅진그룹이 극동건설에 4년간 쏟아 부은 자금만 인수금을 포함해 1조5000억원에 달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연대보증은 물론, 핵심 계열사인 웅진코웨이까지 매각하고 심지어 개인 소유 골프장의 주식까지 극동건설에 증여했지만 결국 극동건설은 부도를 피할 수 없었다.


건설업체 하나 잘못 인수했다 그룹까지 흔들린 건설업 M&A 잔혹사는 비단 웅진그룹만의 얘기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건설사를 인수한 대기업과 중견그룹들은 줄줄이 재무상 어려움을 겪으면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 건영을 인수한 LIG그룹을 비롯해 대한전선(남광토건), 프라임그룹(동아건설) 등이 모두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로 인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금호그룹과 프라임그룹도 건설사 때문에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다. 대한전선은 부실덩어리인 남광토건을 인수한 이후 본격적인 자금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는가 하면 LIG그룹은 자금난을 이유로 건설 계열사의 추가 지원을 외면해 무책임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두 그룹은 자구 노력 없이 법정관리(LIG건설)와 워크아웃(진흥기업)을 신청했다.


◇ 국내외 가리지 않는 ‘불황’. 건설업 발목 잡아
그룹들이 건설사 하나 사들였다가 발목 잡힌 원인은 크게 3가지다. 가장 큰 이유로 건설업계 불황이 꼽힌다. 지난 2006년 이후 쏟아진 각종 부동산 규제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건설 공사 발주 물량이 급감했다. 올해 2분기 건설 기성 실적(이미 건설을 완료한 실적)은 14조9000억원으로 2001년 4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 수주 규모는 2007년 128조원을 기록한 후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지난해 111조원으로 줄어들었다. 공공발주 물량도 2009년 25조3000억원에서 올해 23조1000억원으로 하향 추세다.


해외 시장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 침체와 유로존 재정위기, 중국 저성장 등의 여파로 해외 건설 시장도 제자리걸음이 계속되는 상태다.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것도 악재다. 환율 급락은 해외 수주로 버티던 대기업 계열 건설사 수주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이 침체된 것도 큰 이유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설사 대부분은 주택 사업 비중이 높다. 주택 사업에 ‘올인’한 건설사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공사 조달 자금 대부분을 대출과 분양대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 번만 삐끗하면 곧바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다.


증시에 상장된 건설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33개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42.4%가 올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다. 금호산업은 올 상반기 499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적자 폭이 가장 컸다. 벽산건설(4595억원), 삼환기업(1851억원), 남광토건(139억원), 범양건영(788억원), 한일건설(622억원) 등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올 상반기 흑자를 기록한 19개 건설사 중 지난해 상반기 대비 흑자 규모가 늘어난 기업은 8개사에 그쳤다.


◇ 시너지 과신, 무리한 투자 때문에…
본업이 다른 기업들이 시너지 효과만 믿고 무리하게 건설사를 인수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웅진, LIG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정수기, 비데 등 생활가전업체로 성공한 웅진그룹은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07년 극동건설을 6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가는 기업가치보다 3배나 높은 거액이었다.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택 가격 거품이 빠지며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극동건설은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주택 개발 사업을 위해 빌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고 그룹 재무 상황도 계속 악화됐다.


금융업이 주력인 LIG그룹도 신성장동력으로 건설업을 택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LIG그룹은 2006년 사업 확장을 위해 주택 전문 건설사인 건영과 토목 중심의 SC한보건설을 잇따라 인수합병하며 주택ㆍ토목ㆍ해외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덕분에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2007년 97위에서 2010년 47위까지 올라가며 M & A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회사의 잠재부실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법정관리 신청 열흘 전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부도덕한 기업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최근 LIG그룹 오너 일가 3명은 2000억원대 사기성 어음 발행으로 구속 기소됐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전문 건설업체들도 불황을 견디지 못하는 판에, 건설의 ‘건’ 자도 모르는 사람이 그룹에서 내려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한들, 사업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 M&A ‘끝물’에 잘못 뛰어들어 낭패도
M&A 시점도 안 좋았다. 건설사 M&A가 활발하게 이뤄진 시점은 부동산 경기가 최대 호황을 보였던 2003∼2007년 사이였다. 이때 주택 시장에서 재미를 본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아파트 사업 확대에 나섰고 건설사가 없는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부동산 경기 활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뒤늦게 건설사 인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2007년 하반기부터 업황이 급속히 악화됐고 M&A는 승자의 저주가 됐다. ‘끝물’에 잘못 뛰어들어 낭패본 셈이다.


◇ “대한민국 건설업, 이대로 무너지나…”
건설사 M&A가 연달아 실패하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온 건설사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이제 우려는 “우리나라 건설업은 이대로 무너지느냐”로 이어진다. 정부는 지난 8월 8조원 규모의 건설업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건설사가 자산을 담보로 3조원 규모 회사채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할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서고, ‘PF정상화뱅크’도 만들기로 했다. 미분양 아파트 공사 등 사업성이 없는 부실 부동산 PF를 은행 등이 출자한 PF정상화뱅크가 2조원 규모로 매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건설 시장에는 여전히 온기가 돌지 않고 있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건설업체들이 시행사 PF 대출과 집단대출에 지급보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사 부실이 곧장 건설사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내 건설 경기가 부진해 건설사 재무 안정성은 점차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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