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공개하라고? 우린 '유한회사'야!”

산업 / 유상석 / 2012-11-29 15:52:36
샤넬·애플·MS 등 외국계 기업 대부분 '유한회사'

‘여성들의 로망’ 샤넬 핸드백. 이 ‘샤넬’ 백은 A4용지 보다 작은 크기의 제품 가격이 550만~7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즈가 크고, 디자인이 독특할 경우 100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샤넬 백이 국내에서 연간 몇 개나 팔리는지, 샤넬 한국 법인의 연매출과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영업실적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엄청난 매출을 거두고 있다”는 ‘소문’만 돌 뿐, 정확한 실적은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는 샤넬 한국 법인이 ‘유한회사’ 형태여서 외부에 영업실적을 알릴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샤넬의 한국 법인인 샤넬코리아 외에도 많은 외국계 회사들이 유한회사 형태의 법인 설립을 선호하고 있다. 유한회사로 한국 법인을 설립한 외국계 회사로는 에르메스코리아, 나이키코리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한국 휴렛팩커드(HP), 애플코리아, 페이스북코리아, 구글코리아, 야후코리아, 그루폰코리아 등이 있다. IT, 유통, 제조, 명품 등 분야도 다양하다.


◇ ‘유한회사’가 뭐기에…
최근에는 연간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지만 유한회사로 신설하거나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만 해도 유한회사 수는 9037개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에 1만7272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유한회사는 출자액 한도 내에서만 회사의 채무에 대해 변제 책임을 지는 2인 이상의 유한책임사원으로 구성된 회사를 말한다. 이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자신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일 뿐 회사 채권자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한회사가 주식회사와 다른 점 중 하나는 연매출ㆍ수익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유한회사는 소수의 주주가 유한책임을 지기에 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지 않는데, 따라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시의무’가 없다. 재무제표를 공개할 필요가 없고, 회계 감사 또한 의무사항이 아닌 것.


통상 유한회사는 소규모 가족 기업이나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 법무법인 등 전문가 집단에서 많이 채택한다. 주인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한회사는 주주 수가 많지 않아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지 않은 곳 위주로 설립되며 대량의 자본 유치나 투자가 필요한 제조업, 유통업 관련 기업들은 잘 채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라고 전했다.


◇ “굳이 주식회사 고집할 필요 없어서…”
주식회사가 대부분인 국내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 기업들이 유한회사 형태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한 외국계 유한회사 관계자는 “한국 내에서 추가적인 자본조달 필요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계 유한회사의 경우 국내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하더라도 건물은 물론, 사무기기ㆍ용품, 장비를 죄다 빌려 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외국 본사가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 없는 국내 법인일 경우 굳이 상장을 목표로 국내 주주를 끌어들여 투자받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애플코리아의 경우 원래는 주식회사였다가 2009년부터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올해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바꾼 잡코리아도 비슷한 경우다. 김화수 잡코리아 사장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IT업체의 특성을 감안한 것 외에도 외국 본사(몬스터)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굳이 신주를 발행한다든지 외부인에게 주식을 매입하게 한다든지 할 계획이 없다. 구조적으로 다른 주주나 이해관계자와 부딪히는 부분이 많지 않다고 보고 전환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감사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점도 외국계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장점이다. 한 회계법인 회계사는 “‘외부감사 받는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유한회사 형태로 법인을 설립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외국계 기업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된 외국계 기업들 중, 유한회사로 변경한 사례가 지난 1년간 서너 건 있었다”고 전했다.


◇ “정보 숨기고 외부감사 피하려는 꼼수?”
일각에서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유한회사를 선호하는 진짜 이유가 ‘정보 비공개 원칙’ 때문이라고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영업실적과 경영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을 십분 살리기 위해서라는 것. 이 때문에 유한회사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상황이다.


조기철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는 “단순히 매출 공개 등의 정보가 알려지는 것보다 원가율 등 재무제표상 추정 가능한 기업 고유의 경영방식이 노출되는 걸 꺼릴 경우 유한회사를 택한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더 나아가 국내 여론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외국 본사에 배당금을 얼마 송금했는지 혹은 이익은 많이 내는데 사회공헌은 쥐꼬리만큼 한다든지를 공시를 보고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데 부담을 느끼고 아예 처음부터 그런 구설수에 안 오르고 싶기 때문에 유한회사를 택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국내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회사들 사이에 특히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A법무법인 소속 한 미국변호사는 “유럽에 본사를 둔 모 명품 브랜드 업체는 회사 등기 문의를 하면서 아무래도 경쟁사나 언론의 감시를 덜 받는 기업 형태로 유한회사가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하며 “한마디로 간섭받기 싫다는 속내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외국계 업체들의 유한회사 설립이 일종의 ‘꼼수’ 아니냐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유한회사에서도 공시 의무를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외국계 업체든 국내 업체든 기업 투명성을 판단할 정보를 내놓지 못한다면 이는 문제 소지가 분명히 있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공시하지 않는 국내 환경에서는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유한회사에도 공시 의무를 강제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반면, 외국계 기업의 유한회사 설립 또는 전환을 백안시할 일만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회사를 세운다면 역시 주식회사’라는 국내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외국에선 유한회사가 보편적인 기업 형태”라고 말했다.


‘기업 정보를 감추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에 대해 전 교수는 “외국계 기업, 특히 IT 기업의 경우 업무 특성 상 자사의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투자자에게만 알리면 되는 것이지, 굳이 외부인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외부감사를 피하려는 의도’라는 말에 대해서는 “외국계 기업의 경우 본사에서 감사가 나오는데, 어차피 외부감사보다 본사 파견 감사가 더 엄격하고 철저하다. 한국법인이 제대로 경영되지 않을 경우, 책임자는 바로 해고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식회사로 설립할 것인지, 유한회사로 설립할 것인지는 회사 경영을 위한 고유 판단이므로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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