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물가가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면 사람들은 인터넷에 우르르 몰려들어 판매 상인들에게 욕을 퍼붓지만 그들에게 무슨 죄가 그리 많겠는가. 재료비가 오르고 유통비용이 오르고 인건비와 세금이 오르는데 가격을 올려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 책임은 시장에서 설렁탕을 파는 상인에게 물을 일이 아니다. 거시적 차원에서 국제적인 경제환경이나 기후변화까지 고려하여 대비책을 세우지 못한 정책당국에로 돌리는 것이 이성적이다.
8월말 경제지표의 변화를 브리핑하면서 물가인상률을 발표한 정부 관계자들은 정부로서도 뽀족한 대책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고, 더 이상의 방책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물가잡기 아이디어 현상공모까지 하기에 이르렀겠는가. 근세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동화적 상황이다. ‘임금님이 전국에 방을 붙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공룡을 물리쳐주는 자에게는 공주와 결혼시키고 나라의 절반을 주겠노라.’ 정상적인 나라라면 국가에 유능한 장수들이 있어서 정부 차원에서 공룡을 잡았어야 할 일이다.
학자든 경제인이든 능력 있는 인재를 마음대로 뽑아 국가의 직책을 주고 경제를 안정시킬 정책을 맡길 수 있는 터에, 대통령의 눈에는 능력 있는 인재가 그렇게도 뜨이지 않던 모양이다. 과연 그런 인재가 없었던 탓일까, 눈에 띄지 않았던 탓일까. 과연 이 땅 어느 구석에 와룡산이 있어 아직 세상이 발견 못한 제갈공명 같은 인재가 출세를 대비하고 있을 것인가.
재정 당국자들이 물가인상에 대응하여 내놓은 더 이상의 아이디어는 없는 듯하다. 앞으로 물가가 안정될 수 있는 기대치라는 걸 서너 가지 밝혀놓았는데, 전부가 정부의 의지나 과학적인 계획성과는 무관하게 외부 요인에 의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희망사항들뿐이다.
첫째, 국제 유가가 하락되어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반영되고 기름 값도 안정될 것이다(정부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둘째,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전화 기본요금을 9월부터 내리기로 했다(그런 이통사들을 대상으로 정부는 무선주파수를 경쟁 입찰이라는 ‘쇼’를 통해 무려 1조원이나 되는 고가에 공급하기로 했다. 통신사들은 그 원가를 장차 누구에게서 보상받으려 하겠는가). 셋째, 채소 값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수준까지 올랐으므로 더는 오르지 않을 것이다(정부의 과학적인 수급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 농업인들의 양심에 의존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한 정책 기관이 아니라, 앞으로 물가에 반영될 요인들을 예상 분석하고 예보나 하는 관측기관으로 전락한 듯하다. 게다가 이러한 관측조차도 정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심정적 감성적 전망에 불과하다. 물가당국이 일개 ‘예보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먹구구식 예보로 눈앞의 책임만 모면해 나가는 ‘돌팔이 예보기관’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이러하므로 앞으로 물가가 더 심각하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지만, 이 감성적 예측에는 누가 봐도 뻔한 부정적 변수가 배제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근원물가’ 같은 것이다. 근원물가란 국제원자재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심리와 같이 다른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원인요소들을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기 하향과 같은 글로벌 경제의 둔화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당장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 8월, 2년여 만에 다시 한 자릿수(8억 달러)로 내려갔다.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야 하는 소매상들은 최종 시판가격을 더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골목시장의 순대국 값이나 누르고 앉아서야 무슨 대책이 되겠는가. 단순 예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 물가의 연쇄고리를 이해하는 과학적 분석과 과학적 개입을 연구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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