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약속’ 따윈 무시 한다

산업1 / 전성운 / 2012-11-16 14:10:05
일시 연기는 개점의 추진력을 얻기 위한것?

대형마트체인을 운영하는 ‘홈플러스’가 상인들과의 마찰로 개점을 일시 연기한 합정점의 영업을 개시할 수밖에 없다는 공문을 중기청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역 상인들은 상생 취지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으나 홈플러스 측은 “개점이 미뤄지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호소하는 취지의 공문”이라며 “무조건 영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관악구에 또 다른 신규점포 개설을 준비하고 있어 애초에 ‘상생’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역 10번 출구에서 열린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저지 시민농성장’을 방문, 농성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최근 중소기업청에 ‘합정점 오픈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당초 홈플러스 합정점은 지난 8월말 개점 예정이었으나 상인들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자 개점을 잠정 연기한 점포로, 현재도 주변 상인들이 천막농성을 벌이며 대치하고 있다.


홈플러스 측은 공문에서 “수차례 협상을 진행하는 등 상생방안을 찾고자 노력했으나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천막농성을 펴고 있다”며 “더는 중기청의 사업 일시정지 권고에 의한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영업을 개시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드린다”라고 했다.


또 홈플러스는 “시민단체들과 정치 세력이 개입해 합리적으로 수용하기 곤란한 비현실적 요구가 나오고 있다”며 “자율적인 상생방안 합의 타력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외부세력 개입설을 주장했다.


◇ ‘상생의 가치’ 무시한다
이러한 홈플러스의 태도에 지역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부 기관의 권고까지 무시하는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 경제민주화국민본부는 “정부 주도로 대형마트가 자발적 출점 자제를 약속한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이라며 “상인들과 합의도 없이 영업개시를 강행하는 것은 상생의 가치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마포지역 상인들은 앞서 중기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이후 4차례 자율협의를 거쳤다. 지역 상인들은 “대형마트에겐 매출의 문제겠지만 우리에겐 수십년간 지켜온 삶의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는 문제”라며 “경제 논리나 법으로 사람의 삶을 짓밟는 상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망원시장에서 20년 넘게 의류 매장을 운영한 평범한 상인에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구 주민대책위원회’ 실무팀장이 된 서정래씨는 “내 실수로 가게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시장 전체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큰아들 돌 때 망원시장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그 애가 스물한 살입니다. 좋을 때도 힘들 때도 있었지만 결국 이 시장이 제 가족을 돌본 셈이죠. 하지만 앞으로 제 아들에게 이 일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라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최근 5년 사이 기존 망원·월드컵 시장의 상권에 홈플러스 상암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 3곳(연남·망원·상암)이 줄줄이 들어섰다. 여기에 홈플러스 합정점까지 생긴다면 재래시장의 존립 자체가 무너진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주민대책위가 합정점의 입점을 막으려 1년 넘게 투쟁해온 이유다.


오는 18일, 이들의 입점저지 천막 투쟁은 100일을 맞이한다. 상인들은 지난 3개월간 4차례 홈플러스 측과 협상했지만 여전히 한 발짝의 진전도 못 이뤘다. 상인들은 원만한 타결을 위해 무조건적인 입점 철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야채·과일·생선·정육 등 1차 상품만 판매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양보안을 제시했으나 거부당했다. 협상 재개조차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형 유통업계는 자율휴무 등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고 중소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유통산업협의체를 이달 15일까지 발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 합정점 문제는 논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인들은 또 한 번 절망했다.


서씨는 “유통산업협의체에 중소상인 대표로 참여한 전국상인연합회장은 홈플러스 합정점 천막 농성장을 단 한 번도 찾은적이 없다”며 “과연 중소상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그는 “대형 유통업계 측으로 참여한 체인스토어협회장은 바로 우리를 외면한 홈플러스 회장”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문제도 풀지 못하는 그가 과연 협의체 주체로서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홈플러스 “하루 3000만원씩 손해” 주장
이번 사태에 대해 홈플러스의 한 관계자는 “개점이 늦어지며 하루 손해만 3000만원 이상이 나는 상황”이라며 “정부당국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문제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공문을 보낸 것이다. 상인들과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업손실이 누적된 홈플러스의 처지도 이해가 되지만 입점을 기다리는 지역 주민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합정점은 갈등이 깊었던 만큼 상생 이슈에서 상징성이 큰 점포였던 만큼 이번 일로 소상공인과 대형마트의 갈등이 더 깊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문발송에 대해 중기청은 “합정점 영업개시 계획은 사회 전반의 상생협력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권고를 준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통업계와 서울 관악구청 등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달 23일 관악구청에 또 ‘대규모 점포 개설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 새 점포는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지하 5층·지상 3층 규모의 대형마트 점포로, 준공예정일은 내년 9월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악구청의 한 관계자는 “인근에 전통시장인 인헌시장이 있지만 1km이상 떨어져 있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면밀한 검토를 거치고 있다”며 “신청서를 받기만 했을 뿐 아직 허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측은 “남현동 새 점포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사안으로 ‘신규 출점’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 2008년 6월 부지를 마련했으며 올해 1월부터 이미 건물 공사에 착수, 현재 터파기 공사가 30% 가량 진행됐다”며 “계획을 미리 발표하지만 않았을 뿐 갑자기 새 점포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지역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합정점 개점을 연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점포 개설은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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