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의 제조사로 널리 알려진 한국화이자제약이 한미약품을 향한 선전포고에 나섰다. 지난 10월16일 한미약품의 발기부전치료제 ‘팔팔정’이 자사 ‘비아그라’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디자인 및 상표권 침해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제약회사 간에 알약의 ‘디자인 침해’를 이유로 소송전이 펼쳐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 이번 소송의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비아그라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팔팔정 등 제네릭(복제약)들의 시장 점유율이 무서운 속도로 높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화이자 측의 대응방식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표절이냐 아니냐’ 디자인 놓고 공방
이번 소송의 요지는 제네릭(복제약) 제품인 팔팔정이 비아그라의 상징인 파란색과 다이아몬드 모양을 모방해 디자인권과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화이자 측은 법원에 팔팔정에 대한 판매금지와 제품일체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화이자 비아그라 홍보 담당자는 “화이자는 비아그라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왔다. 비아그라의 디자인은 ‘블루 다이아몬드’라는 별칭까지 생길 정도로, 특별하고 소중한 화이자의 지적재산권”이라며 “한미약품의 팔팔정이 이 디자인을 교묘하게 베낀 것이다. 이는 명백한 지적재산권 침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한미약품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한미약품 측은 “비아그라가 ‘곡선 중심의 마름모’인데 반해 팔팔은 ‘직선 중심의 육각형’ 정제”라며 디자인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직선 중심의 육각형 정제인 팔팔정은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디자인 제30-0637251호)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그라의 외형인 ‘푸른색 정제’는 일반적이고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형태인데다, 소비자가 직접 정제의 디자인을 기준으로 약을 선택하는 것이 원척적으로 불가능한 전문의약품”이라며 “이번에 제기된 디자인권 침해 논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 위기감 느낀 화이자의 ‘견제’?
화이자가 한미약품을 상대로 알약의 디자인 소송을 제기한 건에 대해, 업계에서는 “위기감을 느낀 소송전을 통해 한미를 견제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월17일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의 물질특허가 만료된 이후, 국내 제약시장엔 팔팔정을 비롯해 대웅제약의 ‘누리그라’, CJ제일제당의 ‘헤라그라’ 등 비아그라 제네릭 30여종이 봇물처럼 출시됐다. 기존 비아그라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치료효과는 비슷해 뜨거운 시장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본지 2012년 5월26일자, 제310호 보도).
그런데 이중 팔팔정은 제네릭 제품 중에서도 압도적인 실적을 거뒀다. 10월17일 공개된 우리투자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8월 비아그라 제네릭 시장에서 팔팔정은 6억3000만원의 처방액으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비아그라는 11억원으로 제네릭 출시 이후 처방액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까지 비아그라의 처방액은 월 평균 20억원대 수준이었지만 제네릭 출시 이후에는 5월 18억4000만원, 6월 11억7000만원, 7월 10억7000만원으로 계속 하락했다.
팔팔정의 '독주'는 시장점유율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제네릭 제품들이 한자릿수 점유율에 그친데 비해 팔팔정은 24%의 점유율로 가장 높다. 특히 팔팔정은 지난 7월 한미약품이 제품의 가격표를 약국에 배포해 약사법 위반 행위로 한 달간 판매정지된 상황에서도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부산 동래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이처럼 한미약품 팔팔정이 무서운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자, 화이자가 견제에 들어간 것 아니겠느냐”고 관측했다. 이런 관측에 대해 한미 측 홍보담당자는 “회사 측의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화이자 측 홍보담당자는 “(디자인 소송은 라이벌에 대한 견제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 ‘비아그라’ 화이자, 승소 가능성은?
이번 디자인 소송에서 화이자는 승산이 있을까. 화이자나 한미약품 모두 자사가 승소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업계에선 한미약품 쪽의 승소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과거 제일약품과 SK케미칼의 관절염 패치제 특허분쟁 소송에서도 피고였던 제일약품이 3년간의 공방 끝에 승소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9월 제일약품이 관절염 패치제 '무르페'를 출시하자 SK케미칼은 자사 제품인 ‘트라스트’와 비슷하다며 제일약품을 상대로 법원에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등 일련의 특허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은 “무르페와 트라스트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피록시캄’ 성분이 노란색이고, 약효를 최대화하기 위해선 타원형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며 무르페의 특허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특허심판원은 대법원이 SK케미칼의 상고를 기각하고 환송시킨 특허무효 사건을 최종 심결하면서 ‘무르페’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과 관련, 한 특허법 전공 법학교수는 “이번 화이자의 디자인 소송 건 역시 무르페의 사례처럼 법원이 오리지널 제품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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