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개월 가시밭길 행군, “이제 그만”

산업 / 전성운 / 2012-11-09 17:23:53
김중겸 한전 사장 사퇴…업무공백 불가피

전기요금 현실화 등을 주장하며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김중겸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사표를 제출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기료’를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표가 수리되면 국외사업 강화와 요금 인상 등 김 사장이 추진해 온 수익성 개선 사업이 한동안 추진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선이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후임자 임명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중겸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결국 교체될 전망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사의를 표명한 김중겸 사장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김 사장은 지난 6일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 임기 내내 ‘가시밭길’
한전 내부에서도 김중겸 사장의 사표 제출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사표 제출소식이 알려진 직후 한전의 한 관계자는 “오늘 대면 보고 때도 별 언급이 없었다”며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9.15 순환정전 사태 직후인 지난해 9월17일 취임했으며 임기는 2014년 9월16일까지다. 임기를 한참 남겨두고 사표를 제출한 이유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취임 후 전기요금 인상, 전력거래소를 상대로 한 소송 시도 등으로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놓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김 사장은 취임부터 가시밭길이었다. 9.15 블랙아웃 사태가 터지면서 취임 다음날부터 수습책임을 김 사장이 질 수 밖에 없었다. 또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0조9000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한 한전의 경영 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계속 추진하면서 주관부처인 지식경제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올 들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계속된 국제 석유가격의 고공행진으로 한전은 누적 적자에 등골이 휠 정도였다. 그래서 무리하다 싶을 만큼 전기요금 인상에 집착했다. 한전은 지난 4월 전기요금 인상안으로 13.1%를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았고 7월에는 10.7%를 올렸다가 역시 거부당했다. 결국 4.9%의 인상률로 전기요금 인상을 관철시켰지만 김 사장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사건은 또 있었다. 9월에 발생한 전력거래소 등을 상대로 한 4조400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이다. 한전은 전력대금이 부당하게 책정됐다며 전력거래소와 발전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려했다. 전기요금도 조금 밖에 못 올리게 하면서 제대로 된 전력대금도 못 받게 한다면 누적 적자는 어떻게 해소하느냔 것이 주 이유였다.


당시 지경부는 대노하며 김중겸 사장에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고 경질설까지 나도는 등 극도로 분위기는 험악했다. 청와대가 나서 진화하고 홍석우 장관이 “대화로 풀겠다”며 상황이 진정되는가 싶었지만 한 달 후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은 ‘전기료 문제’였다.


내년도 대구에서 열리는 ‘2013 세계에너지총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김 사장은 지난달 열린 D-365 기자회견에서 “내년에는 전력가격이 거의 현실화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가 다시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김 사장은 이일로 국정감사에서 호된 꾸지람을 들었고 결국 버티다 못해 취임 1년1개월 만에 자진 사퇴라는 길을 택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공기업 구조적 한계 못 넘어
김 사장은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 등과 관련해 정부와 잦은 마찰을 빚어 왔지만 전기료 인상문제가 나름대로 해결되고 최근엔 소액주주들의 소송에서도 승소하는 등 산적한 문제가 하나둘씩 해결돼 임기를 유지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으로 예견돼 왔다.


원전 위조부품 문제로 지난 5일 긴급 소집된 전력비상대책회의에도 전력그룹 수장으로 참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수 십년간 민간기업에 몸담았던 수장으로서 사고의 괴리가 크다는 점이 더 이상 공기업을 이끌기에는 힘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대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장(전무), 주택영업본부장(부사장),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등을 지냈던 김중겸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고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팔리면서 사임했다.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저돌적이고 강한 추진력으로 유명했다. 한때 현대건설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게다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전형적인 TK(대구·경북)-고려대 인맥이다.


그는 LG전자 출신인 김쌍수 전 사장에 이은 두 번째 민간 CEO 출신이란 점에서 한전의 경영혁신 기조를 이어갈 인물로 조망됐으나 공기업의 구조적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임기중 사퇴라는 선택을 했다.


◇ 후임자 인선 어려울 듯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사의를 밝힘으로 인해 한동안 업무 공백이 예상된다. 또 김 사장이 물러나면 해외사업 강화와 전기요금 인상 등 그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이 당분간 힘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사장 공백이 생기면 한전의 최대 현안인 경영 적자 감축, 전기요금 재인상 등이 한동안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전 이사회는 사장이 연내에 전기요금 재인상을 위한 인가 신청을 하도록 의결했지만 사장이 공석이라면 연내 재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또 김 사장은 앞서 사내 경영보고 행사에서 올해 적자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별도 손익계산서 기준으로 5700억 정도라고 전망했고 상황이 좋다면 2000억 원까지 감소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번 사퇴로 인해 예상 적자 감소폭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과 전력 당국에 따르면 김 사장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이사회는 임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를 모색할 수 있다. 위원회 구성부터 임명까지 바로 진행하면 45일 정도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선이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후임자를 임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전기요금 등 물가와 관련한 민감한 이슈를 다뤄야 하고 국내 최대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사장의 임명은 대선 결과와 연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김 사장의 사표 수리를 전후해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임자 물색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동절기 전력 수요 피크가 지난 뒤 전력수급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야 한전 사장 교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표가 수리될 것 같다”며 “사표 수리 전이라도 임원추천위원회는 구성할 수 있지만 언제 후임자를 임명할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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