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범야권 후보간 ‘칼자루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 싸움은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놓고 일제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압박하는 반면, 새누리당 측에서는 ‘대선을 앞둔 정치적인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정계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누가 ‘칼자루’를 쥘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와중에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먹튀방지법과 투표시간연장 관련 법안 개정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고 나섰다. 문재인 후보가 이정현 공보단장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지만, 정작 새누리당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 하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文ㆍ安 “투표시간 연장해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향해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적극 촉구하고 나섰다.
문재인 후보는 “국민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투표 시간 연장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며 “박 후보는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문 후보 또 “투표율이 낮아진 것이 정치불신 때문만은 아니다”며 “먹고살기 급해서 투표 못하는 사람이 수백만명”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투표시간 연장을 두려워한다”면서 “투표시간 연장 방안이 새누리당 반대로 이미 한 번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 선진국들은 투표시간이 밤 10시인 나라들도 많다”며 “일 때문에 투표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투표할 수 있게 하려면 저녁 9시까지 투표시간을 연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후보는 ‘투표시간연장국민행동’을 출범하면서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요구했다.
안 후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971년에 정해진 12시간 투표가 40년 째 꼼짝하지 않고 있다. 국민은 21세기인데 선거시간은 70년대에 멈춰있다”며 “지금 당장 여야가 합의해 선거법을 개정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 대선에서는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하는데, 이런 정책에 가장 큰 영향 받는 분들이 바로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다. 그런 분들 가운데 일하는 시간 때문에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분들이 계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표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유권자들은 억울하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투표시간 연장은 자신의 목소리 내야하는 유권자, 휴일에 근무하는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강조했다.
◇ 朴 “100억 들여가며 꼭 해야 하나”
반면 새누리당 측에서는 야권 대선 주자들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공세를 취했다.
박근혜 후보는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고 투표시간을 늘리는데 100억원 정도 들어가서 그럴 가치가 있냐는 여러 논란이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투표시간 연장은 여야가 잘 상의해서 결정하면 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선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현안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에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면서도 “덥석 시간만 늘리자는 것은 대선을 앞둔 정치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도 투표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고, 개인사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당일 투표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이틀 동안의 부재자투표가 실시되고 있다”며 “이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고 지금까지 시간이 부족해서 투표율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진정성이 있는 제안이라면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선동하듯 이렇게 제시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 野 “새누리당 입장 무책임”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이런 입장에 대해 야권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야권은 “투표시간 연장은 여야가 잘 상의해서 결정하면 될 것"이라는 박 후보의 발언이 무책임 하다며 총공세에 나섰다.
김영경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은 “국민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야당 정치권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한 목소리로 ‘투표시간 연장’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다수당의 대선 후보는 한가롭게 남의 일 말하듯 했다”고 지적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박 후보의 발언은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찬반 의사는 밝히지 않고 당과 국회에 책임을 넘긴 것으로, 투표시간 연장에 반대하는 새누리당의 입장을 고려할 때 말장난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측도 대선주자를 가수에 빗대며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비난했다.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은 브리핑을 갖고 “가수가 노래를 열심히 연습했다면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려는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박 후보는 뭐가 두려운 것이냐”고 말했다.
박 공동선대본부장은 또 “박 후보와 박 후보 캠프 분들께서 70년대에 머물고자 하는 과거의 낡은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쯤 보여줄 때가 됐다”고 충고했다.
이런 야권의 공세에 대해 안형환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투표시간 연장 주장의 근본적 목적은 자신들 선거에 도움을 주기 위함인데 유권자들의 권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선한 목적을 가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 “재외국민 선거에 530억 쓸 땐 언제고…”
‘투표시간 연장 비용 100억’ 발언에 대해서도 집중공세가 이어졌다.
윤관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31일 “중앙선관위가 추계한 추가비용 100억원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비난을 받아왔으며 2시간 연장시 36억원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추계가 이미 나와 있다”며 박 후보의 100억원 발언을 반박했다.
이어 “보수정당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재외국민선거비용으로 소요 예상되는 530억원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다가 투표시간 연장에 따른 비용 100억원만 문제 삼는 것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후보 측 진선미 대변인도 “국민의 참정권 보장 요구를 가치 없다는 말로 짓밟는 것은 정치의 기본적인 책무조차 내팽개친 무책임한 행위”라며 “박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직접선거 역시 예산이 많이 드니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아이들에 대한 급식비용이 아까워 무상급식반대를 위한 주민투표를 강행해 160억원을 낭비했던 새누리당이 이제는 국민참정권 확대를 반대하기 위해 비용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처신”이라며 새누리당을 비난했다.
◇ 이정현 “먹튀방지법과 동시 처리하자”
이 와중에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먹튀방지법과 투표시간연장 관련 법안 개정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 공보단장은 “대선 후보로 출전도 안하면서 후보로 등록해 150억원의 혈세를 먹고 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나라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투표시간을 연장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2시간 연장을, 문재인 후보는 3시간을 얘기했다”며 “1시간 더 연장한 사람이 1시간만큼 더 개혁적인 것인가”라고 반문키도 했다.
또 “더 개혁적이기 위해서는 투표를 이틀이나 삼일동안 하는 것은 어떤가”라면서 “이 분들의 주장이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선거용이란 것이 드러나지 않았는가”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멀쩡한 선거법을 고치자고 하는 것은 100년도 더 사용 가능한 건물을 재개발한다고 헐어서 집값을 올리려는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꾼과 같은 잔머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민주 “어차피 해야 할 단일화…” 제안 수락
문재인 후보 측은 후보 사퇴 시 국고보조금을 환수하자는 ‘먹튀 방지법’ 과 투표시간연장 관련법안 개정을 동시에 처리하자는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의 제안을 전격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정작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 하며 한발빼는 당혹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 후보 측 진선미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이정현 공보단장을 통해 공식 제기한 ‘후보 중도 사퇴시 선거보조금 미지급 법안’을 수용하겠다”면서, 대신 투표시간 연장법안 처리를 주문했다.
문 후보가 먹튀방지법을 수용한 것은 새누리당이 강력 반대하고 있는 투표시간 연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략적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문 후보는 ‘투표시간 연장을 위해 먹튀방지법을 받자’는 선대위 의견을 듣고 이를 즉각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투표시간 연장을 통한 국민 참정권 확대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회피하다 못해 제기한 편법”이라면서도 “투표시간 연장법안을 대선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 판단했다”고 수용 배경을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있는 문 후보가 후보등록(11월25일) 이전 단일화를 관철시키기 위해 ‘먹튀방지법 수용’이라는 배수진을 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민주당은 후보등록 이후 사퇴 시 152억6000만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 안 후보 측에는 “어떻게든 후보등록 이전에 단일화를 하자”는 무언의 압박(?)을 한 셈이다.
이에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우리는 단일화 경선에서 이길 것으로 확신하지만 선거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나. 위험부담을 안고서 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 난감한 새누리 “이 단장 개인의견”… 한발 빼
새누리당은 이 공보단장의 발언을 ‘개인 의견’으로 규정하며 서둘러 발을 빼려는 모습이다.
투표시간 연장조치가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새누리당측에서는 민주당측의 이번 ‘전격 수용’이 뜻밖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수용’ 조치를 사실상 거부하고 나섰다.
박선규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두 법이 같이 연계 돼 갈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면서 “하나는 선거법이고 하나는 정치자금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법 개정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면서 “이정현 공보단장은 국회에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다. 개인적으로 고민을 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할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재차 “법에 관한 문제는 여야간 의원들이 마주앉아 풀어야할 문제”라면서 “국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한구 원내대표 역시 “이 단장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면서 “투표율을 올려야하는 것은 맞지만, 과연 투표시간 연장이라는 방법밖에 없는 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투표시간 연장을 촉구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목희 기획본부장은 “선대위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이제 와서 자신의 말을 뒤집고 발을 빼려고 한다면 이는 공당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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