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이면 무조건 좋을 것이란 생각에 많은 구직자들이 지원을 하고 있지만 취업에 성공한 신입직원 10명 중 4명은 3년 내에 직장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대치 보다 낮은 급여와 복지혜택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기업의 ‘사람’ 문제는 꼭 대우 때문만은 아니다. 대우가 아주 좋다는 국내 금융공기업 대부분은 내부 출신이 CEO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직원으로 몸 바쳐 일해 봐야 결국 아랫사람일 뿐이다. 그렇다고 딱히 낙하산이 좋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 잘릴지 모를 ‘파리목숨’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7년 대졸자 1만2915명을 대상으로 이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08년 공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 중 2010년까지 계속 근무한 사람은 56.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이직률은 대기업 근로자가 22.3%로 가장 낮았고 이어 중소기업(25.1%), 공무원(27.7%)순으로 나타났다. 오호영 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공기업 중에서도 연봉과 근무여건이 현저히 떨어지는 곳이 이직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액연봉과 파격적인 복지혜택을 제공하며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은 사실 극히 일부다.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85개 공공기관 중 2011년 기준 직원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한국거래소는 일인당 1억925만원이나 됐다. 그 뒤를 한국기계연구원(9997만원)과 한국예탁결제원(9894만원), 한국전기연구원(9482만원)이 이었다.
이는 최하위권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3296만원) 예술경영지원센터(3221만원) 강릉원주대치과병원(2900만원)의 3~5배를 넘는다. 신입사원 초봉 또한 한국거래소가 3508만원인데 비해 가장 낮은 강릉원주대학교치과병원은 절반도 안 되는 1655만원에 그치는 등 출발선의 격차도 크다.
오 연구위원은 “공기업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인식 때문에 무작정 입사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 후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금융공기업, “잘해봐야 임원”
공기업의 인사문제는 신입뿐만이 아니다. 대우가 아주 좋다는 ‘진짜’ 신의 직장인 금융 공기업에도 문제는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최고 경영자(CEO)의 꿈을 꾸고 ‘최고의 자리’에 대한 조직원들의 열망은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금융 공기업 직원들에겐 그저 ‘꿈’이다.
실제 금융위원회 소관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정책금융공사, 주택금융공사 등과 기획재정부 소관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14곳의 역대 CEO 196명 중 기획재정부 출신이 무려 92명(46.9%)이었다. ‘모피아’ 출신들의 나눠먹기 인사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14곳 가운데 11곳은 역대 CEO 가운데 내부출신 CEO가 단 1명도 없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1954년 설립된 이후 58년간 단 1명도 내부직원 출신 행장을 배출하지 못한 금융 공기업이다. 기술보증기금 역시 역대 이사장 9명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14개 금융 공기업의 현직 CEO 가운데 8명이 모피아 출신이다. 금융 유관기관의 협회장까지 영역을 확대하면 더 많아진다. 이런 인사 관행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는 것은 현직 경제부처 관료들이 퇴직한 선배들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금융공기업 CEO 자리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낙하산 CEO는 조직 내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금융공기업 내 직원들의 사기저하를 불러온다. 거론된 금융 공기업 중 내부출신 직원으로 입사해 CEO가 된 사람은 단 6명에 불과하다.
또 정권 실세나 경제관료가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진취적인 업무 추진보다는 보신주의가 만연하게 됐다. 이들 조직 내부에는 “잘해야 임원까지”라는 말이 공식화됐고 인사는 ‘성과보다 연줄’이라는 의식을 양산해 업무 효율과 성과보다는 실세인 낙하산 CEO의 일거수 일투족에만 촉각을 세우게 됐다.
이는 금융 공기업의 경쟁력도 떨어뜨린다. 이들은 그간 공기업에서 추진하던 업무의 연계성보다는 반짝 성과 위주의 정책들이 남발하는 양상을 보인다. 임기 마지막 1년간은 다음 자리에 대한 탐색에 연연하면서 자리 찾기와 보여 주기에 ‘올인’하곤 한다. 낙하산들은 취임 후 조직 파악에만 1년 정도 걸려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추천된 후보를 모두 탈락시키고 재공모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도 문제다. 후임자를 적시에 선임하지 못할 경우 전임자의 임기가 연장되는 편법도 이를 노린 선임 방해를 유발할 위험이 크다.
때문에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한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최적의 CEO 후보를 찾아내는 시스템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경제관료가 관직을 끝낸 뒤 낙하산을 타고 CEO로 입성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면서 “금융 공공기관에서 CEO를 할 생각이라면 1급 승진 이전에 자리를 옮겨서 근무하다 CEO로 승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낙하산도 편치만은 않다
그렇다고 낙하산으로 떨어진 임원이 최고인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못하다. 최근 공기업의 핵심 자리인 사장·이사·감사 임원직은 때 아닌 구인난을 겪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두번째 공모를 통해 급구에 나선 공공 기관만도 12곳이나 된다.
최근 한국마사회는 비상임이사 2명을 재공모했으나 추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끝내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최종 인원의 3배수인 6명을 추려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아야하는 데 면접을 통과한 인원이 5명에 그쳤다. 상임이사 3명을 뽑는 한국수력원자력도 역량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외부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8월과 9월 두 차례나 공모했다.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예금보험공사는 사장 자리를 공모했지만 1차 후보자 접수 당시 지원자가 단 한 명에 그쳤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사장 자리도 1차 지원자가 5명이어서 재공모로 4명을 추가 모집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공기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하다”고 말한다. “정권 말기인 지금 공공기관 임원이 돼 봐야 어차피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자리보전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자리에 오를만한 대다수 인사들은 정권이 바뀌면 그 때 가서 움직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퇴임 1년을 남겨 두고 사퇴 기자회견에 임직원 송별회까지 마쳤으나 후임을 구하지 못해 강제연임 됐다. 이런 식으로 올해 사장 자리가 연임된 공기업은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공항공사, 인천공항공사 등 수 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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