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주 모 씨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후, 선물로 받은 기프트카드로 결제하려고 했다가 낭패를 봤다. 평소 갖고 싶었던 브랜드 가방을 고른 뒤 30만원권 기프트카드로 계산하려 했지만, 백화점 점원에게서 “기프트카드로는 계산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씨가 “백화점과 같은 계열사 카드인데 왜 사용할 수 없느냐”고 따져 묻자 점원의 “카드 가맹점과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날 주 씨는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로 대금을 지불해야 했다.

선물로서 인기가 급증하고 있는 ‘기프트카드’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같은 대형유통사에선 쓸 수 없어 고객 불만이 커지고 있다. 카드사들의 기프트카드 발행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었지만, 대형유통사들은 자체 상품권 수익이 침해받는다는 이유로 기프트카드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카드사는 수백억대의 낙전수입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 ‘신용카드처럼 쓸 수 있다’더니…
기프트카드는 신용카드의 형태로 제작한 상품권으로, 카드사들이 계약을 맺은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 무기명 카드다. 이용약관에도 ‘신용카드처럼 쓸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자체상품권을 발행하는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는 상품권의 판매 수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기프트카드는 지난 2002년에 첫 등장한 이래, 현재 삼성ㆍ신한ㆍKB국민ㆍ하나SKㆍ비씨카드 등 대부분 카드사가 발행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이 기프트카드는 매월 100만장 가량 발매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8000억원 이상 사용될 정도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의 배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롯데ㆍ현대ㆍ신세계 등 주요백화점과 롯데마트ㆍ이마트ㆍ코스트코 등 주요 유통가맹점에서는 10년째 기프트카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카드사와 같은 계열사에서도 기프트카드가 통용되지 않아 많은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롯데 기프트카드는 롯데백화점ㆍ롯데마트는 물론, 롯데리아에서 조차도 거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매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차례 롯데 기프트카드 사용이 왜 안 되느냐는 문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에서도 롯데 기프트카드를 꺼냈다가 잦은 다툼이 일어난다.
롯데카드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는 자체 상품권을 발행하면서 롯데카드에서 발행하는 기프트카드를 거부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카드는 자구책으로 롯데백화점에만 쓸 수 있는 전용 기프트카드를 팔고 있다.
현대ㆍ기아차에서도 현대 기프트카드로 결제할 수 없다. 현대캐피탈을 낀 현대카드의 핵심 경쟁력이 현대ㆍ기아차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뿐만 아니다. 기프트카드로는 TV홈쇼핑, 대한항공ㆍ아시아나 항공권 구매, 이동통신 요금, 기차표 예매, 인터넷 티켓 예매, 호텔ㆍ콘도 등 숙박업소 예약, 여행사 여행경비 등의 결제도 할 수 없다.
이토록 사용이 제한되는 곳이 많다 보니 기프트카드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은 결제가능 여부를 놓고 혼란에 빠지기 일쑤다. 심지어 기프트카드 사용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과 실제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되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항공권 및 호텔 인터넷 예매가 불가능한 것에 대해 카드사 한 관계자는 “기프트카드는 예약 취소가 빈번한 가맹점 등은 적용이 어렵다”며 “잔액이 없을 때 취소 수수료가 생기면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들은 기프트카드 적용을 위해 카드사와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야하는데 이를 법으로 강제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기프트카드 발행 규모가 크게 늘어난 만큼 소비자 편의를 위해 가맹점 확대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까다로운 환불 절차, 잔액은 카드사로…
기프트카드는 사용처를 찾기도 어렵지만 사용 내역 확인이 바로 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기프트카드를 쓰고 남은 금액을 환불받는 절차가 까다로워 환급을 포기하는 탓에 카드사들은 한 해 수십억원씩 '공짜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대동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카드 잔액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소멸시효 경과로 인해 카드사 수입으로 처리된 카드 수는 201만개, 낙전수입총액은 무려 14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낙전수입액은 2007년 5억8600만원에서 지난해 51억5200만원으로 5년 새 9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33억100만원이 발생했다. 기프트카드 잔액을 고객들에게 환급해주려는 카드사의 홍보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잔액 환급 창구 운영 또한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권은 이용현장에서 즉시 환불받을 수 있는 데 반해 기프트카드는 카드사나 은행의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홈페이지·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프트카드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이용할 수 있지만, ATM기로 환급이 가능한 곳은 신한카드ㆍ삼성카드ㆍ경남은행 단 3곳에 불과했다. 여러 환불 방법 중 영업점 방문을 통한 환불이 전체의 83%로 압도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카드사가 기프트카드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환불 방법 안내 등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자들이 10만원 단위로 발급되는 기프트카드의 이용 현황을 일일이 메모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결국 사용 후 잔액을 조회하거나 환급하기 위해선 해당 카드사의 홈페이지, ARS 등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롭다. 기프트카드 뒷면에는 잔액을 확인할 수 있는 ARS번호가 안내돼 있지만 이를 아는 고객도 많지 않다.
더구나 현행 규정에 따르면 기프트카드는 잔액이 권면금액의 20% 이하가 될 때 환급이 가능하다. 백화점 상품권이 20∼40% 이하일 때 환급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기프트카드는 여러모로 제약이 심한 것이다.
박 의원은 “다른 창구 이용의 활성화와 함께 백화점 상품권처럼 카드가맹점에서도 일정 금액 이하 잔액을 즉시 환불하는 방안을 금융당국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카드ㆍ유통사 밥그릇 싸움, 피해는 소비자가…
기프트카드는 카드사 입장에서 볼 때 미리 현금을 받고 판매한 선불카드다. 소비자가 기프트카드를 늦게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이자수익이 창출되고 소비자가 잔액 사용을 포기하면 낙전수입도 두둑이 챙길 수 있는 ‘황금알’인 셈이다.
반면 이미 상품권 시장을 확보한 대형유통사 입장에서 기프트카드는 자기 밥그릇을 뺏으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카드사와 유통사 간 황금알을 차지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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