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지배권력 메커니즘

문화·라이프 / 전성운 / 2012-10-26 09:58:09
한국 현대사 속 오랜 부조리와 억압을 담다

2012년 ‘호서문학상’ 수상작으로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통해, 1980년 광주부터 최근 30여 년간의 질곡의 현대사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고광률의 작품 <오래된 뿔>이 선정됐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5.18민주화운동 등을 그려온 작품은 있어 왔으나 이 작품은 특히 우리 현대사를 유기적 연결고리로 꿰뚫으면서 통시적으로 구현해 낸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손을 떼기 힘든 매력을 가지는 것은 다만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책이어서가 아니라, 그 현대사를 아주 흡입력 있고도 재미있게, 그리고 가슴 뭉클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5.18이니, 6.29니 하는 무거운 역사적 소재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추리소설 기법을 접목시키고 등장인물들의 기억을 끼워 맞춰 나감으로써 점차 사건의 비밀이 풀리도록 설정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깡패의 칼에 찔려 죽는다. 과연 누가 그의 죽음을 사주했을까? 작품은 정의를 추구하지만 나약하며 영특하지도 못한 더딘 발자취를 따라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다각적인 관점이 거대한 벽화처럼 펼쳐진다.


추리소설의 급박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점차 기억의 역류를 타고 5월광주와 6월항쟁의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재현한다. 더 나아가 정·권·언의 유착, 친일·친독재 세력의 변신, 부정부패와 가혹한 민중탄압, 피해자와 가해자의 아픔과 은원(恩怨)이 얽히고 풀리면서 이야기가 굽이친다.


5.18로부터 한 세대를 건너온 지금. 어느새 역사서 속의 한 줄로 요약돼 버린 우리의 아픈 역사를 후세대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저자는 1993년 광주를 방문한 후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 2004년 초고를 집필했다. 이후 8여 년간 방대한 자료조사와 수정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작가 고광률의 <오래된 뿔>은 그런 점에서 매우 반가운 소설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대중소설 기법을 차용하여 현대사를 문학적으로 맛깔나게 요리하고, 그 안에 ‘우리 시대의 지배권력 메커니즘과 그 속에 담긴 부조리’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통해 야만의 심장에 영리하고 날랜 직구를 던진다. 오래된 뿔 1·2, 고광률 저, 각권 1만2000원, 은행나무.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KB국민·NH농협·하나증권, 성장펀드 2차 판매 참여…은행 40%·증권 60% ‘채널 설계’

    KB국민·NH농협·하나증권, 성장펀드 2차 판매 참여…은행 40%·증권 60% ‘채널 설계’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하나증권이 제2차 국민참여성장펀드 판매에 나선다. 1차 조기 완판에 이어 이번에는 은행 영업점과 증권사 온라인 채널의 역할 차이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2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제2차 국민참여성장펀드는 9월 3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10영업일 동안 판매된다. 모집액은 6000억원으로 물량이 모두 소진되면 조기에 판매를 끝낼

    2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미·중 ‘두 달 휴전’…추가 관세 미뤘지만 희토류·AI칩 남아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미·중 ‘두 달 휴전’…추가 관세 미뤘지만 희토류·AI칩 남아

    미국과 중국이 추가 관세 충돌을 두 달 더 미뤘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 더 직접적인 희토류 공급과 첨단 반도체·인공지능(AI) 기술통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부터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까지 당장의 통상 충격은 낮아졌지만 공급망 경쟁은 계속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

    3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 과자값 '가격저항의 덫'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 과자값 '가격저항의 덫'

    제과업계가 ‘가격저항의 덫’에 갇혔다. 원재료와 물류비가 뛰어도 가격을 올리면 생활물가 부담이라는 비판을 받고, 가격을 그대로 두고 중량을 줄이면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꼼수인상)’ 논란에 휩싸인다. 가격과 중량을 모두 유지하면 결국 회사가 비용을 떠안아 수익성이 악화한다. 해태제과·크라운제과·오리온 국내사업의 상반기 수익성은 이 딜레마

    4
    솔리다임 ‘1500억달러’의 조건…SK하이닉스그룹 eSSD 매출 86% 늘어도 점유율 2%p↓

    솔리다임 ‘1500억달러’의 조건…SK하이닉스그룹 eSSD 매출 86% 늘어도 점유율 2%p↓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논의가 주관사 경쟁 단계로 구체화됐다. AI 데이터센터용 eSSD 시장의 성장 기대가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실제 기업가치는 솔리다임 단독 실적과 수익성이 얼마나 확인되느냐에 달려 있다.27일 로이터와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등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최근 미국 투자은행들과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진행

    5
    이재명, 멕시코 무역협정 재시동…560개 한국기업 북미 공급망 재편 변수

    이재명, 멕시코 무역협정 재시동…560개 한국기업 북미 공급망 재편 변수

    이재명 대통령이 멕시코 국빈방문에서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재개를 공식 제안했다. 7년을 끌어온 투자보장협정 개정 협상을 마무리하고 1억달러 규모 정책금융과 원유·핵심자원 협의 채널도 새로 마련했다. 멕시코에 진출한 560여 한국 기업에는 북미 공급망 재편에 대응할 제도적 기반이 넓어진 셈이다. 다만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검토 결과가 향후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