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 논의가 안갯속에서 평행선을 긋고 있다. 문ㆍ안 후보는 지난 9일부터 정당후보론과 입당론(문재인), 무소속 대통령론과 연대론(안철수)으로 정면 대립한 채 날선 공방을 이어 왔다. 그러나 단일화 국면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공방전이 식상한 정쟁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양측 모두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두 후보 진영은 ‘자제 모드’에 들어갔다. 생각을 추스르며 휴지기를 갖겠다는 것이다.
한편, 두 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정치권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1노ㆍ3김(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이 맞붙었던 지난 1987년의 제13대 대선 결과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김영삼ㆍ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야권의 대선승리는 기정사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박 후보로서는 최상의 카드지만 야권의 경우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이다.

◇ 중단된 文-安 공방, 단일화 앞길은…
문재인 후보는 지난 17일부터 ‘단일화’라는 말을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틀 전만 해도 “단일화가 될 때까지 저와 안 후보간 경쟁은 불가피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민주당이라는 같은 틀 내에서 하는 것이다”라며 날을 세우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다.
단일화 문제가 정치공학이나 선거 전략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당후보론’을 내세워 안철수 흔들기를 시도했으나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안 후보 역시 입을 다물긴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14일 문 후보가 ‘민주당 입당론’을 제기하자 “진짜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잘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일축한 이후로 계속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안 후보의 함구는 ‘단일화 블랙홀’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단일화 논란이 불거질수록 국민의 시선이 온통 단일화 여부에만 쏠려, 후발주자인 그로선 경쟁력을 부각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기 대응책으로 내세운 ‘무소속 대통령론’에 대한 비판 여론에서 서둘러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두 후보의 달라진 태도에는 ‘단일화 결렬’을 우려하는 재야 원로 및 교수그룹의 비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지금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며 “단일화를 위해선 두 후보의 파트너십과 세심한 배려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단일화 작업은 녹록지 않게 전개될 수 있다.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양측간 단일화 접점 찾기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 단일화 가능성… 朴 측 ‘같은 진영 다른 의견’
문재인ㆍ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문제를 두고 같은 박근혜 후보 진영의 두 인사가 서로 다른 예측을 내놓아 정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임태희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의장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99%로 본다”며 “이에 맞춰 새누리당 선거전략도 짜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 의장은 지난 16일 오후 광주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이 야권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전제 아래 선거 전략을 짜는 것은 요행수를 바라는 것과 같다”며 “대선에 임하는 야권은 정권교체에 대한 공감이 크고 주변의 요구가 강해 당연히 단일화 할 것이다. 다만 두 후보 모두 자기로의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야권단일화를 전제로 선거 전략을 짜야 하고 그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가 51% 득표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양 후보가 과연 단일화 할 것인가.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같은 날 여의도 대하빌딩 국민희망포럼 사무실에서 열린 국민소통위원회 실무진 회의에 참석,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당시 조직은 노무현 후보 쪽이 컸고, 정몽준 후보는 조직이 작은 대신 지지율이 높았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안철수 후보의 조직도 만만치 않아 단일화 협상에 난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물론 단일화가 미칠 영향력이 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반드시 우리가 승리할 자신이 있다. 단일화가 되더라도 새누리당이 선거에 이겨 같이 나라를 구했다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文ㆍ安 각각 대선완주… 3자구도로 간다면?
연말 대선은 10년 전인 2002년 제16대 대선과 판박이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면 ‘노무현 vs 이회창’과 같은 여야 일대일 구도가 완성된다. 이 경우 불과 수십만 표 차이로 당락이 엇갈리는 초박빙 접전이 불가피하다. 반면 문재인ㆍ안철수 후보의 완주로 대선이 3자구도로 치러지면 박근혜 후보의 승리가 유력해진다. 야권이 승리한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DJP(김대중ㆍ김종필)연합와 노무현ㆍ정몽준 단일화가 성사됐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단일화가 대선후보 등록 이후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며 “단일화 협상이 늦어질수록 준비가 필요한 경선 가능성은 낮아지고 여론조사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박근혜 후보가 40% 지지율을 유지한다고 봤을 때 3자구도가 되면 야권의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예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와 관련,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안철수 후보보다 15% 이상 높아진다면 단일화가 쉽게 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3자 구도로 가도 변수는 많기 때문에 박 후보의 승리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 安 주춤 행보… 왜?
“결국 이번 18대 대선은 안철수의 행보에 달렸다!”
정치권 안팎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가운데, 야권 후보단일화 논의를 미루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지켜봤던 상당수 국민들은 대선 열기가 높아지면서 응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 후보가 야권후보단일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측했다. 민주당도 안 후보가 단일화에 응할 것으로 보고 아름다운 경쟁을 얘기해왔지만 최근 들어서 안 후보 측은 단일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입당 압박에는 “민주당은 지금 입당론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뿌리치고, 공동정치혁신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을 위해 각자가 노력할 때”라며 단칼에 잘랐다.
안 후보 측은 또 야권후보단일화에 대해 “정확한 표현은 단일화가 아니라 연대나 연합”이라고 했고, 안 후보는 물론 선거캠프에서도 아직까지 단일화 논의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다하고 있어 그 속내를 알기 어렵다.
이와 관련, 안 후보 측 김성식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단일화 문제에 있어서는 단일화 자체가 목적일 수 없고 또 단일화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긴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며 “단일화는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고 본선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안 후보는 무소속이 아니라 국민소속”이라며 점차 치열해지고 있는 대권 경쟁에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 후보 측 윤태곤 상황팀장도 “현실적으로 정권교체라고 하면 새누리당에 이기는 것을 의미하지만 정권교체를 바라는 분들 중에는 새 정치의 실현을 바라는 분들도 섞여 있지 않느냐. 이 분들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대선후보 등록(11월 25~26일)이 4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쯤 단일화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지만 안 후보 측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무소속 대통령은 국가적 재앙”이라는 새누리당의 네거티브 공세, 검증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 정당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준비 덜 된 정책 등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2일과 15일 이틀간 실시한 일일 여론조사(유권자 1500명 대상, 유선전화 및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RDD) 자동응답(ARS) 방식. 표본오차 95%신뢰수준 ±2.5%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대선후보 간 가상 양자대결에서 안 후보는 52.2%의 지지율을 기록해 39.2%의 지지율을 기록한 박근혜 후보를 13%포인트 차로 앞섰다.
다자 구도에서는 박 후보가 35.8%로 1위를 차지했고 안 후보가 30.4%, 문재인 후보가 24.0%였다. 박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앞서는 물론, 다자구도에서도 박 후보와 오차범위를 약간 벗어난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지율이 이처럼 견고함을 보이면서 여론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안 후보가 단일화 보다는 대선이 3자구도로 치러져도 당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민주당이 정치쇄신을 한 상황도 아니고 국민들이 OK할 때 (단일화를)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OK한 상황도 아니지 않느냐”며 “굳이 단일화 논의에 응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안 후보에게 권력의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굉장히 권력의지가 강하고 정치 경험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이후 많은 준비를 거쳐 출마를 했다”며 “안 후보 입장에서는 단일화만이 전략이 아니다. 3자구도로 대선을 치렀을 때 자신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면 굳이 단일화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새로운 정치를 얘기하는 안 후보에게 있어 단일화 자체가 구태일 수 있다”며 “꼭 당선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50 밖에 안됐기 때문에 앞길이 창창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당선되지 못하고, 2등을 했다고 치더라도 아직 앞길이 창창하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안 후보 측이 완주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은 단일화 협상에서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최근 들어 완주의지를 내비치는데 독자완주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며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면 안 후보 지지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 단일화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안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 단일화 논의를 최대한 뒤로 미루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안철수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기존 정치권이 네거티브 공방, 후보 흠집 내기 등 정치적 공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여론조사전문가들과 안 후보 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안 후보의 생각은 기존 정치권이 해온 방식의 단일화만이 능사는 아니며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있는 만큼, 단일화 논의에 응할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출마선언 당시 정치권의 쇄신을 요구했고, 민주당에도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당 쇄신을 요구한 만큼, 민주당의 쇄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일화 논의에 응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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