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vs. 화합, 두 가지 ‘시대정신’의 딜레마

오피니언 / 정해용 / 2012-10-19 10:47:19
<정해용의 관전상황실>

인간 의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갖는 감정과 의식들 가운데 가장 차원 높은 의식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자비와 사랑, 베품, 용서와 화해 같은 것은 인간을 고상하게 하는 의식들이다. 여러 이론을 들이댈 필요도 없이 인류가 가장 존경하는 역대 성인들의 공통된 메시지, 지고의 메시지는 모두 사랑과 화해였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도 ‘화해’와 ‘화합’이 각 후보 캠프의 주요 목표로 등장했다. 경제개발로 가난을 극복한 대한민국에 바야흐로 미움과 대결, 증오와 심판의 감정은 사라지고 용서와 화해, 나아가 사랑과 포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우선, 원칙적으로 이러한 의식이 진화되고 개발된 인간 의식의 목표로서 타당하며 바람직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대선 주자들이 말하는 화해와 화합에는 얼마만한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거나 지지하는 다수 국민들은 이들 지도자들의 화해 메시지에 진정성 있게 공감하는 것인가. 그저 ‘이기고 봐야’ 하기 때문에 속마음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인가.


# 캠프 1
‘정치 개혁’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출발한 박근혜 캠프. 구태 정치, 부패 정치의 쇄신을 외치면서 캠프의 인적구성부터 바꾸었다. 역대 선거에서 활약하던 브레인이나 행동대들을 중용하지 않고, 되도록 새 얼굴로 캠프를 꾸렸을 뿐 아니라 직전 정권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까웠던 인물일수록 배제하여 여당이란 프리미엄까지 포기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추석 이후 박 캠프에서는 ‘개혁’이란 말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고 ‘통합’이란 말이 주로 강조되고 있다.


박 캠프에서 통합이란, 초기에는 주로 현대사에서 유신정권과 반목했던 사람들을 향한 화해 메시지였다. 박 후보는 가장 먼저 봉하마을로 내려가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가를 찾아갔으며, 전태일 열사의 동상에 찾아갔고, 4.19묘지를 참배했다. 이렇게 ‘화합’ 내지 ‘통합’ 행보를 가면서도 여권의 구주류라 할 이재오·정몽준·김문수 등과는 계속 거리를 유지했다. ‘개혁’이라는 기조를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통합’의 기류는 다소 흐름이 뚜렷하게 바뀌었다. 한화갑, 김경재 등 옛 민주당 거물급 인사들을 영입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언급하는 등 국민 통합행보를 계속하는 한편으로 캠페인 초기에 배제했던 친MB 인사들에게도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명분은 역시 ‘대통합’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함께 할 수 있는 ‘국민 100% 대통합’을 내세웠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2단계 통합 행보’가 가속되면서 애초의 ‘개혁’이란 구호를 들어보기 어렵게 된 것이 주목된다. 이것은 본래 계획된 2단계 통합 행보가 아니라, ‘개혁+통합’이라는 초기의 목표가 ‘승리를 위한 통합’으로 변화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개혁과 통합’ 가운데 개혁의지는 수그러들고 ‘대통합’만 앞세우는 모양새의 변화로 보면 박 캠프는 어지간히 불안에 쫓기고 있는 모양이다.


# 캠프 2
‘협력과 상생이 오늘의 시대정신’이라 선언하며 출범한 문재인 캠프. 그러나 초기에 문 후보의 행보를 보면 그 협력과 상생에 특정 세력은 포함돼있지 않은 듯 보였다. 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이승만 박정희 묘소를 빼놓았고, 현 여권 출신인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의 입장으로 보면 협력과 상생의 대상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새누리당 계열의 구 독재정권 관련세력과의 화해, 둘째는 민주통합당 내부의 구 민주계와의 화해다. 그러면서 딜레마도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 후보로서는 과거 독재역사에 대한 명확한 심판 내지는 극복의 임무를 띤 주역으로서의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 이른바 선명성의 과제다. 동시에 옛 정치를 넘어 신선한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 또한 분명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이 기반하고 있는 구 민주당은 문재인의 정치적 향도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선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구 민주당 역시 그가 극복해야 할 옛 정치세력의 한 축이 아닌가. 화합을 하면서도 차별성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 어쩌면 상반될 수도 있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해낸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재인은 하루 한 시가 바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심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그와 함께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른 손학규·김두관·정세균 등 후보들은 그를 돕고 있다는 어떤 적극적인 움직임도 목격되지 않고 있다. 역시 그에게는 당내 화합부터가 어려운 과제인 모양이다.


후보와 당이 융화되지 못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17일 안철수 후보를 겨냥하여 야권 통합을 전제로 하는 큰 신당창당의 필요성을 제시했다고 한다. 어쩌면 ‘정권교체’를 향한 민주당의 행보는 후보 단일화 이후에나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이려나. 문재인-안철수의 동시 출마나 두 후보 간의 대립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박근혜 후보 캠프가 간절히 바라는 최상의 요행수임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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