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제조사 “비싼건 너 때문이야”

산업 / 전성운 / 2012-10-19 09:18:04
이통사 주장에 제조사·시민단체 '황당'

이동통신사들은 “보조금 경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휴대전화의 높은 출고가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고가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최신 스마트폰을 소비자에게 보급하려면 보조금을 투입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출고가가 백만원에 가까운 최신 스마트폰들은 이통사의 유통망에선 80만∼85만원선에서 팔리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출고가에 이통사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선 레이스와 국정감사로 가계 통신요금 인하와 보조금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이동통신사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지나치게 높은 단말기 출고가가 문제”라는 황당한 주장을 펴고 있다.


◇ 이통사 “스마트폰 너무 비싸다”
이통사들의 주장은 “소비자가 생각하는 적정 단말기 가격에 비해 출고가가 너무 비싸서 불가피하게 보조금을 투입한다”는 주장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왜 우리나라 통신사는 보조금을 많이 쓸까. 제조사가 내놓는 휴대전화 출고가와 소비자가 지불하는 구매가의 차이가 큰 시장 구조 때문에 보조금을 안 쓸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통사의 고위 관계자는 “단말기가 고가의 스마트폰 위주로 출시되다 보니 가입자들은 이통사를 정할 때 단말기를 가장 싸게 제공하는 곳을 따지게 된다”며 “이 때문에 이통사들이 보조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통사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단말기 가격이 내려가면 보조금 경쟁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높은 출고가는 궁극적으로 이통사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요금인하 여력을 줄이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올해 이통사와 제조사의 실적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 것을 든다. 이통 3사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과 매출이 일제히 대폭 하락하는 사상 최악의 성적을 냈다. 롱텀에볼루션(LTE) 망 투자비와 함께 보조금 등 마케팅비 지출이 컸던 게 원인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의 호황에 힘입어 지난 2분기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보조금 대란’이 있었던 3분기 이통사의 실적은 더욱 주저앉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실적은 갤럭시S3의 인기에 힘입어 전문가 예상치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이통사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3사 중 한 이통사가 보조금 규모를 늘리면 다른 사업자들은 영락없이 가입자를 빼앗기기 때문에 보조금으로 맞대응해야 해, 빠져나올 수가 없는 상태다.


◇ “이통사들 주장, 책임 떠넘기기 일뿐”
그러나 이에 대해 제조사와 시민단체는 “보조금 시스템은 이통사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며 이통사의 항변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업계에 따르면 출고가는 제조사가 독단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이통사와 협의해 정한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이통사는 출고가에 유통망 마진이 붙기를 바란다”며 “그렇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파는 대리점 업주들이 시장을 떠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실제 제조사들이 이통사에 공급하는 가격과 출고가 사이의 마진에는 이통사의 보조금 뿐 아니라 제조사가 유통망에 제공하는 장려금도 포함되는데, 제조사들은 “이통사 입장에서 제조사가 장려금을 줄이고 출고가를 낮추는 것을 환영할 리 없다”는 설명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출고가 형성에 이통사가 관여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이통 3사는 단말기 출고가를 공급가보다 높게 책정한 뒤 그 차액을 보조금인 것처럼 지급했으며, 제조 3사(삼성·LG·팬택)도 통신사에 높은 출고가를 제안했다”고 결론 내리고 6개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참여연대도 이런 출고가 책정 과정이 소비자를 기만한다며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황이다.


그러나 이통사들은 “출고가 협상에서 이통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되도록 낮게 책정하고 보조금을 적게 투입하려고 했을 것”이라며 “출고가가 지나치게 높은 것은 제조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KB국민·NH농협·하나증권, 성장펀드 2차 판매 참여…은행 40%·증권 60% ‘채널 설계’

    KB국민·NH농협·하나증권, 성장펀드 2차 판매 참여…은행 40%·증권 60% ‘채널 설계’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하나증권이 제2차 국민참여성장펀드 판매에 나선다. 1차 조기 완판에 이어 이번에는 은행 영업점과 증권사 온라인 채널의 역할 차이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2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제2차 국민참여성장펀드는 9월 3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10영업일 동안 판매된다. 모집액은 6000억원으로 물량이 모두 소진되면 조기에 판매를 끝낼

    2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미·중 ‘두 달 휴전’…추가 관세 미뤘지만 희토류·AI칩 남아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미·중 ‘두 달 휴전’…추가 관세 미뤘지만 희토류·AI칩 남아

    미국과 중국이 추가 관세 충돌을 두 달 더 미뤘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 더 직접적인 희토류 공급과 첨단 반도체·인공지능(AI) 기술통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부터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까지 당장의 통상 충격은 낮아졌지만 공급망 경쟁은 계속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

    3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 과자값 '가격저항의 덫'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 과자값 '가격저항의 덫'

    제과업계가 ‘가격저항의 덫’에 갇혔다. 원재료와 물류비가 뛰어도 가격을 올리면 생활물가 부담이라는 비판을 받고, 가격을 그대로 두고 중량을 줄이면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꼼수인상)’ 논란에 휩싸인다. 가격과 중량을 모두 유지하면 결국 회사가 비용을 떠안아 수익성이 악화한다. 해태제과·크라운제과·오리온 국내사업의 상반기 수익성은 이 딜레마

    4
    솔리다임 ‘1500억달러’의 조건…SK하이닉스그룹 eSSD 매출 86% 늘어도 점유율 2%p↓

    솔리다임 ‘1500억달러’의 조건…SK하이닉스그룹 eSSD 매출 86% 늘어도 점유율 2%p↓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논의가 주관사 경쟁 단계로 구체화됐다. AI 데이터센터용 eSSD 시장의 성장 기대가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실제 기업가치는 솔리다임 단독 실적과 수익성이 얼마나 확인되느냐에 달려 있다.27일 로이터와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등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최근 미국 투자은행들과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진행

    5
    이재명, 멕시코 무역협정 재시동…560개 한국기업 북미 공급망 재편 변수

    이재명, 멕시코 무역협정 재시동…560개 한국기업 북미 공급망 재편 변수

    이재명 대통령이 멕시코 국빈방문에서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재개를 공식 제안했다. 7년을 끌어온 투자보장협정 개정 협상을 마무리하고 1억달러 규모 정책금융과 원유·핵심자원 협의 채널도 새로 마련했다. 멕시코에 진출한 560여 한국 기업에는 북미 공급망 재편에 대응할 제도적 기반이 넓어진 셈이다. 다만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검토 결과가 향후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