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 그 ‘잔인한 일상’ 속으로

문화·라이프 / 전성운 / 2012-09-26 13:27:37
격리와 은폐, 거리두기로 '불감증'을 불러오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생각 없이 엄청나게 많은 육류를 소비하고 있지만, 이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는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도축’의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바가 없다.


직원 800여 명이 철저한 분업 하에 12초마다 한 마리씩 소가 도축되어 깔끔한 포장육으로 가공되는 미국의 한 도축장. 이곳은 생산량 기준으로 미국 내 도축 및 소고기 가공시설 중 상위 10위에 속하며 연간 매출액만 8억2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축산업계와 양돈업계 등의 강력 로비로 인해 외부인의 접근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어 내부모습은 물론, 그들의 작업환경이나 생활모습은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다. 이렇듯 폐쇄적인 도축장에 생물학자나 환경운동가도 아닌 한 젊은 정치학자가 잠입, 약 6개월에 걸쳐 도축장의 일상과 면면을 소상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얼핏 보면, 환경운동가나 생물학자가 할법한 일임에도 정치학자인 저자가 도축장에 잠입한 실제 목적은 ‘도축장에 일하는 인부들’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도축장 인부들은 어떻게 그런 잔인한 작업을 매일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가 밝혀낸 비밀은 ‘시선의 정치학’이었다. 벽과 문, 공간 구획 등을 통한 철저한 격리와 은폐, 거리두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도축작업 속에서 막상 살아있는 소를 접하는 사람은 극소수로, 그 중에서도 소의 미간 사이에 볼트를 박아 소를 기절시키는 사람(노커)은 단 한 명이다.


결국 도축장의 전 공정 121개 작업 중 소를 죽이는 일은 단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도축장의 다른 인부들은 ‘도살’이라는 잔인한 행위와 무관해진다. 실제로 저자가 처음 배정받은 작업장인 냉각실의 간 담당 인부들은 라인을 따라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오는 소의 간을 아무 생각 없이 마치 기계처럼 갈고리에 매달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배정된 ‘킬 플로어’에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살아있는 소가 150미터에 걸쳐 서서히 죽어가는 공간인 이곳에선 저자는 법적으로 금지된 전기충격기를 맞아가며 배설물, 토사물 등을 뒤집어쓴 채 큰 눈망울을 끔벅이는 소들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소들에게 가해지는 이런 끔찍하고 잔혹한 행위는 ‘시야가리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부가 소의 눈이나 격렬한 반응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면 이러한 폭력행위를 가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결국 시야가 적절히 가려져 있기에 맡은 바 일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치학자 ‘티머시 패키릿’이 도축장에 위장 취업한 목적은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거리두기’와 ‘감추기’의 영향력을 실제로 입증해냄으로써 ‘시선의 정치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도시 외곽과 같은 외진 곳에 지어진 정신병원이나 교도소 및 쓰레기처리장 등이나 외관은 그럴 듯하게 꾸며진 혐오시설, 혹은 저소득층이나 노인들을 특정 지역에 모아놓는 것 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사회에 횡행하는 폭력이나 문제점을 단지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냥 덮어버리거나 적당히 거리를 둠으로써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커녕 미봉책만 들이대는 현실에 일침을 가한다. 결국 감추기, 거리두기, 드러냄 등의 시선 통제 전략은 권력 메커니즘의 일환이며, 권력은 이를 활용해 인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힘을 가진 자들이 우리 눈을 가림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잘못을 숨기거나 보기 흉한 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놓는 식으로 우리를 기만할 수 있다”며 “시민들이 이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변혁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고 말한다. <12초마다 한 마리씩 : 미국 도축 현장 잠입 보고서>, 티머시 패키릿 저, 이지훈 역, 1만5000원,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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