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원전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내에서도 최근 전력공급 중단 사고를 일으킨 바 있는 고리1원전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환경 보호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은 이미 노후화된 고리1원전의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측은 그럴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기장군에 소재한 고리1원전은 당초 설계수명이 30년으로 지난 2007년 폐쇄돼야 했지만 정부는 10년간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에 사고가 빈발하자 올 3월 가동이 중단됐다가 지난 8월부터 재가동됐다.
지난 9일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고리1원전 안전에 관한 토론회에서 일본의 원자로 전문가인 이노 히로미쓰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리1원전은 급속냉각 시 균열까지 우려되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7월 이노 교수는 일본에서 가장 위험한 원자력발전소로 겐카이 1호기를 꼽으며 한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만약 지진으로 겐카이 1호기의 운전이 정지되면,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긴급노심냉각장치(ECCS)가 가동된다. 그러나 이 안전장치가 오히려 ‘비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뜨겁게 데워진 유리잔에 갑자기 찬물을 부으면 깨지듯, 수 백도에 이르는 원자로에 냉각수가 공급되면서 균열이 생기거나 심지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리1원전을 둘러싼 우려도 겐카이 1호기와 비슷하다.
이날도 그는 “한국 방식은 재료 파괴의 기준을 구하는 데 쓰이는 방식“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샤르피 충격시험’을 사용해서 측정하면 고리1원전 원자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이노 교수는 “고리1원전은 열뿐 아니라 충격에도 취약하다”고 밝혔다. 흡수할 수 있는 충격 에너지가 낮을수록 원자로가 충격을 받았을 때 깨질 확률이 높다. 이노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처럼 낮은 충격 에너지를 가진 원전이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지난 7월에도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와 부산환경운동연합이 마련한 정책토론회에서 “고리1원전 용접 부위의 구리함량이 높아 다른 원자로에 비해 깨지기 쉽다”며 재가동에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 한수원 “이미 검증된 사실”
이노 히로미쓰 도쿄대 명예교수가 고리1원전의 안전에 대해 지적하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검증된 사실을 또다시 끄집어내 국민적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한수원은 이노 교수의 주장에 반박자료를 내고 정면대응에 나섰다. 원자로가 급속 냉각됐을 시 견딜 수 있는 한계온도를 완화되면 압력용기가 파손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노 교수의 주장에 한수원은 “가압열충격기준온도는 원자로 압력용기가 파손에 견딜 수 있는 한계온도가 아니다”라며 맞받아쳤다.
원전은 각 나라마다 기준온도를 두고 관리한다. 이 기준온도가 낮을수록 내구성이 좋은 원자로를 쓰겠다는 의미다. 고온에서 저온으로 급속하게 냉각돼도 취성을 가지지 않고 버티는 원자로만 허용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이 온도는 원자로 용기 내벽에 균열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 균열이 원자로 용기 두께의 75%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기준 온도에 33.3℃의 여유를 더해 결정한 값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리1원전의 원자로압력용기는 용접부에 100% 비파괴검사를 했지만 내부 균열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기준을 정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 방식은 상세 평가에 적용 가능한 최신기술로 미국, 독일, 핀란드 등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일반 기술”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노 교수가 주장한 ‘샤르피 충격방식’은 기준온도에 관계식을 적용, 값을 간접적으로 구하는 방법으로 현 방식이 재료의 성질을 정밀하게 평가하는데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각 나라마다 ‘충격기준’을 두고 관리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가별로 일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대부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기준을 따르고 국내원전도 NRC의 미연방법(10CFR 50.61)을 준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지난 1999년 측정된 고리1원전의 최대충격흡수에너지는 최저기준치를 만족치 못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수원은 “규정에 따라 정밀시험을 실시했지만 허용기준대비 2.6배 이상의 여유가 있고 초음파검사에서도 원자로 용기에 어떤 균열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정밀검사를 통해 고리1원전의 원자로 압력용기는 40년 계속 운전에도 불구하고 건전함을 입증했다”며 “원자력위원회, 국제원자력기구(IAEA), 프랑스 원자력업체 아레바社 간에 3자 검증과 전문가 TF팀 평가에서도 이미 검증된 사실로 이노 교수의 주장은 개인적 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가동 강행’ 설득 충분치 못해
현재 논란은 법정에서도 진행 중에 있다. 작년 4월 부산지방변호사회가 부산지법에 고리1원전 가동중단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현재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노 교수는 지난 11일 부산고법에서 열린 고리1호기 가동중단 가처분 항고심에도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그는 고리1원전의 취성화 현상을 설명하고 “원전 폐쇄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이노 교수는 일반적인 원자로 용접부분의 동 함유율은 0.1% 이하인데 고리 1호기는 0.23%나 돼 원천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참조온도(RTo)로 취성화 천이온도(RTndt)를 대신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이노 교수가 오히려 원자로 용기 건전성 평가에서 사용하는 기준온도(RTndt)와 취성화 천이온도(NDT)를 혼동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고리 1호기 용접부의 동 함유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노 교수 개인 의견일 뿐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이 고리1원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한수원측의 설명이나 대응이 지역주민들과 국민여론을 설득하기엔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환경보호단체들은 고리 1호기의 안전성 논란을 불식하려면 우선 수명연장 허가 제출 서류가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공개된 정보가 없으니 ‘장님 코끼리 더듬기’식의 의혹 제기와 공방이 오가고 있다”며 “원전 주변에 부산·울산 등 대도시가 있는 만큼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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