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짝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암시장 전문조사 사이트인 ‘하보스코프닷컴’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위조 상품 시장 규모는 약 260억 달러 규모로 세계 11위에 해당한다. 작년 말 기준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 이어 세계 아홉 번째로 총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한 한국의 경제 위상만큼 위조 상품이 판을 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말 한 유명 포털사이트에 샤넬과 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의 위조 제품들이 120억원어치나 판매된 사건이 발생했다. ‘짝퉁명품’에 수많은 소비자들이 속은 것이다.
이 같은 사기를 벌인 박 모씨 등 일당은 환치기 방법으로 중국에 물건 대금을 송금하고 가짜 손목시계 등을 구입한 후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몰래 들여오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 서울 동대문시장 근처 노상에서 구입한 중국산 짝퉁 손목시계, 티셔츠 등을 인터넷 카페를 통해 판매해 부당 이익을 챙겨오다 세관에 붙잡힌 일당도 있었다.
송 모씨 등 3명은 작년 중순 한적한 시골에 유사휘발유 제조공장을 차린 뒤 50억원 상당을 제조해 창원과 울산 등 영남권 일대에 판매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또 다른 일당도 경기도의 한 창고에서 유사휘발유를 21만 리터, 시중 가격으로 약 4억 원 어치를 만들어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판매해오다 적발됐다. 이들은 진짜 휘발유보다 리터당 600~700원 정도 싼 값에 유사 휘발유를 팔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사회도, 경제도 온통 ‘짝퉁’판이다. 가히 ‘짝퉁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다. 짝퉁 명품과 양주, 가짜 석유 등으로 인해 공정거래 질서가 무너지고 국가 신뢰도와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정부가 ‘짝퉁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근절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싸거나 편리하니까” 알고도 사는 ‘짝퉁’
짝퉁 공화국에서 유통되는 위조 상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짝퉁 명품을 비롯해 가짜 석유와 양주,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등 수많은 분야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속는 경우도 있고 알면서도 진품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짝퉁 명품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불법으로 제조된 가방과 옷, 시계 등이 다양한 채널로 유통돼 소비자들을 유혹 중이다. 거래 수법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과 차명계좌, 퀵서비스 등 온갖 수법이 동원되고 판매책 간에도 서로 신분을 숨기는 등 적발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민 대부분이 음용하는 주류 시장도 마찬가지다.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양주시장 규모는 1조2000억 원 수준인데 이 중 위조 양주 시장은 무려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조직적인 규모의 위조 양주 제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업소에서 남은 술을 섞어 파는 식의 소규모 유통은 성행하고 있다”며 “정부는 물론 업체에서 매년 수 십억 원의 비용을 들여 첨단 위조 방지 기술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등 짝퉁 근절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IT 업계에 따르면 작년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40% 정도다. 이는 세계 평균인 42% 보다는 낮은 수치다. 하지만 선진국 평균 수준인 2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치인 27%와 비교했을 때 심각한 수준이다. 불법복제에 따른 손실액은 약 7500억원에 달한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 관계자는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10%만 줄여도 약 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소프트웨어가 국내 산업 발전의 초석인 만큼 불법 복제를 줄이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사회·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악영향’
위조 상품이 지속적으로 유통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조 상품의 소비문화가 이미 만연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작년 6월 성인 남녀 6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의 57.8%가 위조 상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위조 상품의 범람에는 ‘짝퉁이라도 괜찮다’, ‘돈만 되면 된다’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암묵적인 경제논리도 숨어 있다. 잘못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뭐 어떠냐는 식이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기업의 제품을 베껴 기술력 향상을 이끌어 왔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모방이 아닌 단순도용으로 끝난다면 범죄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남의 재산을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문갑 관세청 사무관은 “짝퉁 제조와 유통은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짝퉁은 대부분 밀매를 통해 유통이 되는 과정에서 세금 탈루가 이뤄진다. 정부 차원에선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사회 발전에 투자하는 금액이 줄어들게 되는 등 짝퉁문화는 한국 경제를 좀 먹고 있다.
시장에 풀린 돈이 지하경제로 숨어드는 것도 문제다. 가계지출이 지하 경제로 유입되면 기업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매출이 줄어든 기업은 투자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위조 상품으로 인해 매년 1조 원에 달하는 상표 사범의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유통시장 자체를 불신할 가능성도 크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지적재산권 침해사범 적발 총 건수는 722건, 금액으로는 1조887억원에 달한다. 이 중 저작권과 특허사범을 제외한 상표 적발은 674건, 9250억원으로 전체 90%에 달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짝퉁의 문제는 단순 지적재산권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성장의 저해란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최근 3년 간 짝퉁 적발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개인 유통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 짝퉁에 대한 시민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민의식의 전환 필요
짝퉁 시장은 상품 외에도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퍼져 있다. 허위 기초수급자와 일명 나이롱 환자 등도 같은 맥락이다.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무조건 병원에 입원하고 보는 ‘도덕불감증’ 사람들부터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일당까지 모두 짝퉁공화국을 만드는 주범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짝퉁공화국’이 돼 갈수록 국가 신뢰도 추락과 경쟁력 약화는 물론 공정하게 거래를 하는 정상적인 업체들의 매출 감소 및 이미지 하락 등을 불러온다. 소비자들에게도 금전적인 손실과 상처를 남긴다. 특허청과 관세청 등 정부기관에서 ‘짝퉁’ 퇴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특허청을 비롯한 검·경 및 관세청 등 정부기관이 아무리 위조 상품의 생산·공급업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짝퉁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는 한 위조 상품의 척결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허청의 한 관계자는 “위조상품 생산·공급업자와 이를 알면서 구매하는 소비자의 공생관계가 존재하는 한 짝퉁은 마약처럼 계속 생산 및 공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올바른 인식과 건전한 소비문화를 확산하고 실천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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