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없어서 못준다는데 징계라니…”

산업 / 전성운 / 2012-09-07 09:33:48
발전사업, 한전 적자에도 사기업은 왕창 번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가 한전의 전기 구입가를 결정하는 ‘정산조정계수’를 놓고 수 조원대의 소송전을 벌일 기세다. 한전이 지난달 29일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회에 4조4000억원의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키로 했다는 입장을 밝히자 전력거래소는 “공익성을 망각한 행위로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전은 이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국내 전력시장 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와 전력거래가격 결정에 필요한 발전비용을 심의·의결하는 비용평가위원의 부당하고 편향적인 업무 처리로 4조4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산조정계수의 정상화가 계속 지연돼 올해에만 1조5000억원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며 “극심한 자금사정을 감안해 향후 적정한 전력거래대금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감액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가 한전의 전력구입가를 결정짓는 ‘정산조정계수’를 정하면서 2009년엔 법적 근거 없는 ‘미래투자비 기회비용’을 2010년엔 ‘발전자회사 당기순손실 방지’등을 이유로 비용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결과 2012년 기준 정산조정계수는 5.94%가 올랐다는 주장이다.


한전은 이로 인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약 3조원, 올해 상반기까지 약 4조4000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미래투자비 기회비용은 전기요금 산정기준에도 없는 항목”이라며 “이중보상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발전자회사 당기순손실 방지는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다”며 “상식적으로 이해불가”라고 지적했다.


◇ 공기업도 ‘시장질서’ 따라라
이에 전력거래소는 “시장 운영규칙 위반하려는 한국전력의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래소도 보도자료를 통해 “전력거래대금은 전기사업법과 전력시장운영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며 “전력거래소 회원인 한전이 정관을 위반할 경우 이를 주도한 임원 등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며, 한전에 대해 제재금도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이어 “전력거래대금에 일부라도 미결제가 발생할 경우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가 되며, 고의적으로 채무불이행을 시도한다면 전력시장 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위법행위”라며 “한전이 민간사업자(포스코에너지, GS이피에스, SK이앤에스 등)의 고통을 외면, 자사의 실리에 따라 법과 규칙도 무시할 수 있다는 비도덕적인 일면을 보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거래소가 발끈하는 포인트는 한전이 성동격서 전략을 택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 좌절에 따른 불만을 정부 공격으로 돌리고 있다”며 “이는 한전과 발전자회사의 내부문제를 확대시킨 것으로, 공익성을 망각한 행위”라고 질타했다.


거래소는 이어 “한전의 행위는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에 반하고 400여 민간발전사업자의 사업을 위축시키는 중요한 문제”라며 “이로 인해 야기되는 법적 책임은 한전이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민간은 비싸게, 한전은 싸게 파는 이상한 구조
국내 전력시장은 가격입찰 없이 발전이 가능한 용량만을 입찰하는 불완전한 시장으로, 매시간대별 예상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투입된 발전기 중에서 전력생산단가가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단가를 시장거래가격으로 정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소비자 전기요금을 규제받는 한전은 전력시장가격(SMP)으로 전력을 구입할 경우 무조건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라 정산조정계수를 반영한 가격으로 전력을 구입한다.


거래소는 “비용평가위의 의사결정은 관련 규정이 정하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운영돼왔다”며 “한전의 주장은 현행 정산조정계수에 대한 불만을 비용평가위원들에게 돌리려는 꿍꿍이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한국전력은 소송 상대방인 전력거래소가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자 “우리 사정을 너무 모른다”며 하소연했다. 한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한전과 거래소간 감정싸움으로 보지는 말아달라”며 “한전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전력거래소의 징계방침과 관련해 “돈이 없어서 돈을 바로바로 줄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게 징계대상이 되느냐”며 “일반인들도 돈이 없어서 연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징계를 하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도 돈을 꿔서 전력거래대금을 주고 있는 상황이고, 이미 차입 한도의 90%에 육박한 상황”이라며 “대금을 주고 싶어도 늦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발전사업, 사실 황금알 낳는 거위
사실 이 모든 문제는 발전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알려지면서 뛰어든 ‘민간사업자’들 때문이다. 과거, 정부는 발전소 공급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민간기업들에 ‘혜택’을 주며 발전산업 참여를 유도해왔고 기업들은 이익이 높으면서도 수 십년 동안 안정적이고 확실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행 전력거래제도는 한국전력이 6개 발전회사와 민간 발전사가 생산한 전력 가운데 가장 비싸게 생산된 가격을 기준으로 구입해 일반 가정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작년 유연탄으로 생산한 전력의 발전단가는 1kW당 67.12원이었는데 액화천연가스로 생산한 전력은 142.36원이었다.


즉 유연탄을 쓰는 민간 발전소는 2~3배의 가격으로 전력을 팔며 수익을 챙긴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오히려 발전 사업에 못 뛰어들어 안달이다. 포스코에너지, GS이피에스, SK이앤에스 등이 대표적이고 다른 10대 그룹 역시 앞다퉈 팔을 걷어붙였다.


여기에 최근 한전의 전기료 인상 움직임으로 내년까지 최소 10%가량은 올라갈 것으로 관측돼 일단 사업권만 따내면 발전소가 수명을 다하는 20~30년 동안 이익이 꾸준히 보장되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이는 결국 전기요금 인상 압박과 한전의 적자로 이어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만약 작년에 한전자회사에도 민간사업자와 같은 가격결정기준을 적용했다면 무려 66%(27조원)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 된다”고 밝혔다.


전력노조 관계자는 “전체 발전설비의 81%에 이르는 한전 자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4272억 원에 그치는 데 비해 민간 사업자들은 전체 설비규모의 8.5%밖에 안되면서도 영업이익이 3401억 원에 이를 정도로 과다이익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에경연은 “적정한 원가의 표준가격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호주의 사례처럼 발전사와 판매사업자(한전)가 가격과 전력량을 계약기간 중 일정수준으로 고정하는 ‘규제금융계약’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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