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노점상이 영세상인 죽인다

산업1 / 정수현 / 2012-08-23 14:17:48
'알바'쓰면서 세금 안내는 '기업형' 노점상들

“도를 넘어선 거 같아. 먹고 살게 없어서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건 아니잖아. 세금 내고 임대료 내고 장사하는 사람은 바본가. 형평이 안 맞잖아. 구청은 뭐하는지 모르겠어”


지난 9일 오전 출근길을 서두르던 신모(56·여)씨는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출입구 인근 노점에 붙은 ‘20세 이상 아르바이트생 구함’이란 알림판을 보고 혀를 찼다.


알림판을 붙여놓은 노점에서는 남녀 3명이 분주히 김밥과 토스트 등을 팔고 있었다. 대형 천막 아래 자리 잡은 노점에는 이동형 조리대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음료수 기계 등도 눈에 띄었다. 모두 도로법 위반이다.


이 노점 외에도 청량리역 주변에는 노점 10여개가 성업 중이다. 퇴근 무렵이면 노점들이 지하철역 입구부터 중앙버스전용차로 승강장 주변 인도까지 점령한 채 술과 음식을 판다. 취객들이 기물을 파손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흔하다.


이 때문에 청량리역사에서 백화점과 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측이 경찰에 요청, 철거가 이뤄졌던 적도 있다. 하지만 노점상들이 시위에 나서자 경찰은 곧 물러섰고 다시 노점이 펼쳐졌다. 현재는 ‘방관’ 상태다.


◇ 기업형 노점,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 악용해
인근 상점 주인 A씨는 “낼 것 안내고 나보다 더 많이 벌어가는 사람들 보면 답답하다”면서 “먹고 살게 없다면 이해가 가는데 그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기업형 노점상에 대한 기존 상인과 시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구청 등 감독기관들은 ‘단속의 어려움’을 이유로 방관하고 있다.


감독기관이 감독권을 내려놓은 사이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노점이 일부 상인과 단체들의 불법이익 추구 대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들은 시내 노점상을 9000~1만2000여개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점상의 인적사항과 복수노점 소유 여부, 종업원 고용여부 등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자치구들이 2007년부터 수차례 노점 실태조사를 시도했지만 신분 노출시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과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노련) 등 노점단체의 반발에 밀려 성과를 내지 못했다.


또 생계형과 기업형 노점상을 구분하는 통일된 기준도 없다. 매대의 크기와 고정여부 등을 보지만 통상 관행에 따른다. 동일인이 복수 노점을 운영하거나 아르바이트생 고용시 기업형 노점으로 본다. 하지만 실태조사 실패로 이를 확인할 자료가 없는 상태다.


단속도 무원칙하게 이뤄진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출입구와 버스 정류장, 교차로, 횡단보도 반경 4~10m은 노점행위 금지구역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서울 시내에서 노점이 가장 많은 구역이 해당 구역들이다.


◇ 강제철거 때 전노련이 막아내기도
법규 미비와 무원칙적인 단속은 전노련과 민노련 등 노점 단체들을 전국 규모로 키워냈다.


노점 단체들은 노점상들에게 회비를 받는 대신 물리력 등을 동원해 단속을 막아준다. 실례로 중구청이 지난 16일 실시한 남평화시장 일대 노점상 철거를 막아낸 단체가 민노련이다. 이날도 민노련은 노점상과 노조원, 장애인 등 200여명과 노점 철거에 반발, 철거 작업을 중단시켰다.


당일 서울 중구청은 직원 200여명과 용역업체 직원 30명을 투입, 20여개 노점철거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현장에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중부경찰서 소속 경찰 300여명과 앰뷸런스도 투입됐다.


이에 상인들과 중부노점상연합 소속 노조원들이 철거를 위해 투입된 포크레인 앞을 가로막고 강제 철거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중구청 측은 “그간 상인들이 지난해부터 자진철거를 약속해 강제 철거를 유예했기 때문에 행정대집행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노점을 강제철거하면 생계가 막막해진다”고 호소했다.


중구청은 상인들과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오전 11시께 철거작업을 중단하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 날 중구청 관계자는 “7시부터 현장으로 이동해서 상인들과 충돌을 막기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노점상 20개 중 2개만 철거하고 오전 11시 철수했다”면서 “조만간 불시에 또 철거할 것이다. 구의 의지를 보여줬으니까 자체적으로 정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상당한 노점상은 없었고 충돌이라 할 것도 없었다. 행정대집행 승소를 했지만 사람들을 다치게 할 정도로 강합적으로 명령하지 않았다”면서 “상인들도 집회를 하기는 했지만 이미 예고장이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안에 있는 물건들은 다 치워놓은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중구청은 예고대로 공무원 220여명을 투입해 1시간여 만에 노점 철거 작업을 마무리했다. 전날과 다른 것은 ‘기습’적으로 철거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남평화시장 일대 노점상 철거는 서울 행정법원에 제기한 행정대집행 취소소송에서도 승소한 내용이었으나 중구청이 기습해 ‘강제철거’를 해야 할 정도로 민노련과 전노련의 파워는 막강했다”고 말했다.


◇ 억대 권리금노점...불법만행
실효적인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노점 영업권에 권리금이 붙는 등 사유재산화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노점상닷컴 등 노점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노점을 양도한다, ‘깔세(월세)를 놓는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 등 게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 노점상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노점을 양도하는 대가로 권리금 300만원을 요구했다. 명동과 강남 일대 노점은 권리금만 억대가 넘는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일부 기업형 노점상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경기 고양시가 2007년 시민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2.2%가 역세권 기업형 노점상을 단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전노련과 민노련 등 노점 단체들은 기업형 노점상은 극히 일부라고 주장한다. 매매와 임대, 복수 노점 운영, 아르바이트생 고용, 자릿세 등은 규약으로 금지돼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점에는 빈곤 구제라는 순기능이 있는 만큼 영업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노련 관계자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빈곤층이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순기능을 무시해선 안된다”면서 “세금을 안내는 것은 맞지만 크게 볼 때 그만큼 벌금과 과태료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선 감독기관인 구청 등은 실효성 있는 단속이 어려운 이유로 인력 부족과 노점 단체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을 꼽는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단속을 한다. 하지만 2000여개에 달하는 관내 노점상을 직원 4명으로 어떻게 (관리)하겠나”고 되물었다.


이어 “단속하려면 용역을 동원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다. 한다고 해도 잠시라도 비우면 다시 들어온다. 그때 뿐이다. 효과가 없다”면서 “대화를 통한 자체정비가 유일한 해법인데 노점단체 등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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