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홍명보’를 보라

문화라이프 / 전성운 / 2012-08-23 12:59:34
‘영원한 리베로’에서 ‘영원한 리더’로

‘카리스마의 제왕’ 홍명보 감독이 한국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축구대표팀이 2012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에서 일본을 2-0으로 꺾고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로 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는 한국선수단이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64년 만에 일군 쾌거로 형님 격인 A대표팀을 통틀어서도 주요 국제대회 3위는 최고 성적이다.


홍명보 감독은 많은 것을 안겨준 ‘8월의 산타클로스’였다. 경기는 선수들이 했지만 결과는 모두의 몫이었다. 그의 ‘아이들’에게 올림픽 무대에서 첫 메달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선사했다. 밤샘 응원에 나선 국민에게는 ‘한 여름 밤의 꿈’을 선물했다.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수들과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선수들이 해외리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제나 팀을 우선시하고 자신은 늘 뒷전이었다. “살아도 팀, 죽어도 팀”이었다.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영광은 모두 팀에 돌렸다.


◇ 고난과 역경 거쳐 얻어낸 ‘메달’
하지만 지나간 기억은 미화되게 마련이다. 멀리서 지켜보면 ‘홍명보호’는 탄탄대로 끝에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아픔의 연속이요 고난의 나날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동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홍명보 감독은 국민들의 가슴을 쥐락펴락 하게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박주영의 병역 연기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박주영이)군대를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는 ‘신(神)의 한 수’로 잠재우며 “한 번 빠지면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는 병역 논란에서 박주영을 함께 구해냈다. 막판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홍정호·장현수·한국영의 부상 낙마에 이어 본선에서는 와일드카드 정성룡과 김창수도 다쳐 애를 먹었다.


이후 개최국 영국과 120분의 혈투를 치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꺾었을 때는 더욱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밤새워 응원을 한 국민들도 모처럼 지난 2002년 월드컵의 감동과 함께 눈앞의 승리를 만끽했다.


이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일본과의 동메달결정전 또한 그렇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어려운 드라마틱한 과정에서 만난 숙적 일본을 꺾고 기쁨을 두 배로 늘렸다. 홍 감독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만이 아닌 온 국민의 산타 같은 존재였다.


◇ 선수시절부터 갖춰온 ‘탁월한 리더쉽’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에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항상 주장 역할을 맡았다. 지난 1990년 한국 축구에서 수비수의 장을 새로 연 그는 2000년 일본 가시와 레이솔 최초의 외국인 주장 완장도 찼고,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때도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영원한 리베로’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난 1992년에는 포항스틸러스의 K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프로축구 사상 최초로 수비수 출신 MVP를 수상했고, 1995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뽑혔다. 또 2002년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등 선수 생활 내내 정상에 서 있었다.


홍 감독은 12년간의 국가대표 시절 ‘영원한 리베로’의 영광 속에 지도자 타이틀을 단 이후에도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수석코치를 맡았다.


2009년에는 U-20월드컵 사령탑에 올라 한국을 8강에 올려놓았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일궜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4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일차적인 정점을 찍은 셈이다.


너무 빨리 중책을 맡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보란 듯이 성공 신화를 안기며 승승장구해 ‘영원한 리베로’에서 ‘영원한 리더’로 우뚝 섰다. 이제 히딩크 4강 신화를 넘어선 홍명보의 시계는 다음 ‘2014 브라질월드컵’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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