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문화산책] 차를 파는 기업이 이야기를 만들 때

마리아의문화산책 / 마리아김 / 2026-07-20 20:14:46
기업의 문화 콘텐츠 실험이 묻는 것

기업이 문화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의 기업이 하는 문화 후원은 대개 조용했다. 전시 포스터 한쪽에 로고를 넣고, 공연장 입구에 협찬사 이름을 세우고, 영화 속에 제품을 잠깐 비추는 식이었다. 기업은 예술의 뒤편에 서 있었다. 문화는 브랜드 이미지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장식에 가까웠다.
 

▲ [현대자동차]

 

그러나 요즘 기업은 뒤편에만 머물지 않는다. 직접 이야기를 만든다. 제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가진 기억과 기술, 취향과 세계관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는다. 물건을 파는 기업이 문화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문화 안에서 자기 언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최근 행보는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에는 현대차의 과거 대표 모델인 ‘스텔라’가 등장한다. 영화 속 스텔라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1980년대의 공기와 정서를 불러오고, 장면의 리듬을 만드는 서사적 장치가 된다. 자동차는 원래 이동을 위한 기계지만, 영화 안에서는 시대를 싣고 감정을 싣는다. 그 순간 제품은 광고물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현대차가 2024년 선보인 단편영화 '밤낚시'도 같은 흐름에 있다. 이 작품은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 시점을 활용해 서사를 만들었다. 전기차 충전소를 배경으로 한 짧은 스릴러였지만, 핵심은 자동차를 오래 보여주는 데 있지 않았다. 차량의 기술이 영화의 시점이 되고, 그 시점이 다시 이야기의 구조가 됐다.

여기서 PPL과 브랜디드 콘텐츠의 차이가 드러난다. PPL은 제품을 장면 안에 놓는다. 브랜디드 콘텐츠는 브랜드의 철학을 장면의 구조 안으로 넣는다. 전자는 “우리 제품을 보라”고 말한다. 후자는 “우리의 기술과 감각으로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이 변화는 자동차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들도 제품 판매를 넘어 체류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에 ‘르 카페 루이비통’을 열었다. 그곳에서 고객은 가방만 보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고, 공간의 질감과 조명, 식기와 서적을 함께 경험한다. 제품은 구매의 대상이지만, 공간은 기억의 대상이 된다. 기업이 얻고 싶은 것은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브랜드와 함께 보낸 시간이다.

▲ 영화 밤낚시 [현대자동차]

 

한화와 퐁피두센터의 협력도 같은 방향에서 읽을 수 있다.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퐁피두센터 한화는 단순한 전시 공간 유치가 아니다. 국제 문화기관과 국내 기업이 장기 협력을 통해 전시, 교육, 연구, 작가 지원을 함께 고민하는 문화 인프라 실험이다. 기업이 일회성 후원자가 아니라 문화 플랫폼의 운영자이자 동반자로 나서는 셈이다.

이제 기업의 문화 참여는 분명히 달라졌다. 제품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회성 후원보다 지속 가능한 문화 플랫폼을 만들려 한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관객과 고객이 머무는 시간 자체를 브랜드 자산으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기업이 문화 안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질문도 커진다. 예술은 브랜드의 장식이 되는가. 문화는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마케팅 장치로만 쓰이는가. 지역의 문화 자산은 누가 해석하고 누가 소유하는가. 후원은 사회적 투자로 남는가,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줄어드는 비용이 되는가.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여기서 진정성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만들었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예술가와 관객,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퐁피두센터한화 [한화문화재단]

 

좋은 문화 협업은 브랜드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가 한발 물러나 문화가 스스로 말하게 한다. '밤낚시'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자동차 기능을 설명하는 광고가 아니라, 그 기능을 영화적 시점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의 카페가 주목받는 이유도 제품 진열보다 브랜드가 제안하는 취향의 시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퐁피두센터 한화가 의미를 갖는 이유도 단순 후원을 넘어 도시의 문화 인프라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 문화 콘텐츠는 “얼마를 후원했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만들었는가”로 평가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 경험이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남겼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문화는 기업에게 더 이상 이미지 포장지가 아니다. 잘 설계된 문화 경험은 브랜드의 언어가 되고, 도시의 기억이 되며, 관객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기업이 문화를 이용하는 데서 멈춘다면 그것은 광고다. 그러나 기업이 문화와 함께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그 안에 예술가와 관객, 지역사회가 함께 설 자리를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실험이 된다.

사람들은 이제 제품만 사지 않는다. 그 제품이 놓인 이야기, 그 브랜드가 만든 시간, 그 안에서 느낀 감각까지 기억한다. 앞으로의 브랜드는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떤 문화를 함께 만들 수 있느냐로 오래 남을 것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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