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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영 토요경제 경제·산업부장 |
금융위원회가 지난 15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1월부터 7월 말까지 금융권의 생산적 금융 공급액은 272조3000억원이다. 이는 5대 은행의 신규 기업대출만을 뜻하는 숫자가 아니다. 금융지주와 은행·보험·증권,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포괄한 생산적 금융 공급실적이다.
향후 5년 공급계획도 민간금융 628조원, 정책금융 932조원 등 총 1560조원으로 확대됐다. 금융위가 지난 7월 발표했던 1250조원보다 310조원 늘었다. 적어도 부동산과 가계에 집중됐던 자금을 기업과 첨단산업으로 돌리겠다는 움직임에는 속도가 붙었다.
문제는 돈을 주는 방식이다.
현재 확인 가능한 세부 여신자료를 보면 그 간극이 드러난다. 5대 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올해 6월 말까지 생산적 금융 차원에서 집행하거나 약정한 중소기업 대출은 42조6578억원이다.
이 가운데 담보대출은 25조7359억원, 보증대출은 7조7663억원이었다. 둘을 합치면 33조5022억원으로 전체의 78.5%다. 신용·기타대출은 21.5%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준 대기업 대출 30조6719억원 가운데 신용대출은 23조4622억원으로 76.5%를 차지했다.
272조3000억원과 이 5대 은행 대출액은 집계 범위와 시점이 다른 만큼 직접 비교할 숫자는 아니다. 다만 생산적 금융의 외형은 빠르게 커지는 반면 중소기업 여신 현장에서는 담보와 보증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문제를 보여준다.
대기업에는 기업 자체의 신용을 보고 돈을 빌려주면서 중소기업에는 담보와 보증을 먼저 찾는 구조다.
그렇다고 은행만 탓할 일도 아니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잘못 판단해 부실이 발생하면 손실은 금융회사가 부담한다. 금융당국은 건전성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담보에서 벗어나 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라고 주문한다. 위험을 줄이라는 요구와 위험을 감수하라는 요구가 같은 여신심사 테이블에서 충돌한다.
금융위도 이 문제를 인정한다. 최근 생산적 금융 협의체에서 담보·보증을 요구하는 기존 금융관행이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민성장펀드에 적용한 투·융자 면책에 이어 생산적 금융 전반에 추가 면책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돈의 총량보다 심사기술이다.
은행은 기업이 가진 부동산 가격뿐 아니라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매출 증가율과 수주잔고, 거래처 안정성, 반복매출, 원가구조와 가동률 같은 데이터를 미래상환능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AI도 대출업무 자동화에만 쓸 일이 아니다. 재무제표와 신용정보에 거래·매출·수주 등 비재무 데이터를 결합해 담보가 부족해도 살아남을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가려내는 데 활용해야 한다.
산업별 심사모형도 필요하다. 반도체 장비기업과 조선 기자재업체, 플랫폼 기업을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미래가치를 읽기 어렵다. 조선 기자재 기업이라면 수주잔고와 발주처를, 제조기업이라면 가동률과 거래처를, 플랫폼 기업이라면 거래액과 이용자 지표를 봐야 한다.
금융이 산업을 모르면서 생산적 금융을 할 수는 없다.
위험분담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은행에 담보를 보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부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은행에 지우면 결국 은행은 다시 담보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기관과 보증기관, 민간은행이 초기 위험을 적절히 나눠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보증서가 부동산 담보를 대신하는 데 그친다면 은행의 기업평가 능력은 발전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성적표를 바꿔야 한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는 공급액과 함께 담보·보증·신용대출 비중, 미래상환능력 평가대출, 기술평가 기반 금융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후 실제 부실률과 기업 생존율까지 추적하면 어떤 심사방식이 성장할 기업을 제대로 골라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마침 금융권은 오는 12월 생산적 금융의 정의와 범위, 목표와 추진성과 등을 담은 백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내년 5월에는 연간 실적을 담은 보고서도 발간한다.
여기에 272조3000억원이라는 공급액만 크게 적혀서는 부족하다. 무엇을 보고 기업을 골랐고, 담보 없이 평가한 기업은 얼마나 됐으며, 그 돈이 실제 투자와 고용으로 연결됐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2017년에도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말했다. 그 이전에는 기술금융이 있었고 이후에는 혁신금융이 등장했다. 이름은 여러 번 달라졌지만 금융이 받아든 질문은 그대로다.
담보 없는 기업의 미래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올해 7월까지 이미 272조3000억원이 움직였다. 앞으로 5년간 계획은 1560조원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심사의 책임도 무거워진다.
‘몇 조원을 공급했나’보다 ‘무엇을 보고 돈을 맡겼나’.
생산적 금융의 진짜 전환은 거기서 시작된다.
토요경제 /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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