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中차보다 먼저 낸 '美 입장료'…무뇨스가 진입조건 꺼낸 이유

산업 / 임종호 기자 / 2026-09-18 22:55:17
美 중국산 전기차 관세 약 100%…트럼프는 현지생산 가능성 열어
현대차그룹 2025~2028년 260억달러 투자·부품 현지조달 80% 목표
관세 다음 경쟁은 공장·부품·소프트웨어·데이터까지 '시장진입 자격'
▲ 호세 뮤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연합뉴스]

 

현대자동차(대표 호세 무뇨스)가 중국차의 미국 진입을 앞두고 '조건'을 꺼냈다. 단순히 관세를 더 올려달라는 요구와는 결이 다르다. 현대차는 이미 공장과 부품, 배터리, 철강까지 미국으로 옮기며 시장 진입 비용을 선제적으로 치르고 있다. 중국 업체가 미국에서 생산하더라도 같은 수준의 현지화와 규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가 다음 자동차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는 18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로이터와 만나 미국이 관세와 시장진입 안전장치를 유지하지 않으면 유럽과 같은 중국차 확산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 일부 시장에서 중국차 가격이 경쟁차보다 30~40% 낮다며 미국도 중국 업체에 일정한 '조건(conditions)'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브랜드의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EU) 점유율은 9%를 넘어섰고, 별도 추가관세가 없는 영국에서는 신차 등록의 15%까지 올라왔다.

중요한 것은 무뇨스가 '중국차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의미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정책은 이미 수입관세를 넘어 현지생산과 공급망, 차량 소프트웨어의 출처까지 시장진입 요건으로 넓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약 100%의 관세를 적용해 완성차 수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중국 자동차업체라도 미국에서 차를 만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중국 업체가 미국 현지공장을 세울 경우 '100% 관세'만으로는 진입을 막을 수 없는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차의 선제 투자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5월 조지아주와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에 합의했고 같은 해 10월 착공했다. 첫 아이오닉5는 2024년 10월 생산라인에서 나왔다. 현재 HMGMA는 연산 50만대 체제로 확대되고 있으며 전기차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차 생산도 맡는다. 중국 업체의 미국 진입 가능성이 지금처럼 본격적인 산업 현안이 되기 전에 현지 생산기지를 먼저 깔아놓은 것이다.

투자는 조립공장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2025~2028년 미국에 26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자동차 생산 확대와 부품·물류 공급망, 루이지애나 철강 생산, 로봇 등까지 현지 사업 기반을 넓히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최근 2030년 북미 부품 현지조달 목표도 기존 60%에서 80%로 높였다.

산업적으로 보면 현대차가 먼저 치른 것은 단순한 공장 건설비가 아니다. 미국에서 차를 팔기 위해 필요한 '현지화 비용'이다.

이는 향후 중국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짓더라도 완성차 조립만으로 현대차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미 차량 안의 기술까지 규제 영역에 넣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커넥티드 차량 규칙(Connected Vehicles Rule)'은 중국 또는 러시아와 연계된 차량통신시스템(VCS)과 자율주행시스템(ADS)의 특정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거래를 제한한다. 소프트웨어 관련 규제는 2027년형 차량부터, VCS 하드웨어 규제는 2030년형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중국 또는 러시아의 관할·통제와 일정한 연계가 있는 완성차 업체에 대한 판매 제한도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 차량을 조립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규제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결국 미국 자동차시장의 장벽은 '어디서 조립했는가'에서 '무엇으로 만들었고 어떤 소프트웨어가 들어갔으며 공급망을 누가 통제하는가'까지 이동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시작됐다.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전기차의 유럽산 부품 비중을 요구하는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규칙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가격을 낮춰 관세를 흡수하거나 현지공장으로 관세 장벽을 우회할 경우 관세만으로 산업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북미에서도 징후는 이미 나타났다. 멕시코는 올해 중국 등과 같은 자유무역협정 비체결국 자동차에 최대 50%의 관세를 적용했지만 상반기 중국 브랜드 신차 판매 비중은 17%로 전년 14%보다 상승했다. 관세 부과 전 확보한 재고 영향이 있고 중국산 자동차 수입 자체는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높은 관세가 곧바로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다.

현대차에는 이 변화가 기회인 동시에 위험이다.

현지화가 진입장벽이 된다면 현대차는 유리하다. HMGMA뿐 아니라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배터리·부품·철강으로 공급망을 안쪽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2030년 미국 판매 차량의 현지생산을 크게 높이고 북미 부품 현지조달률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중국 업체가 미국에 새로 진입한다면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 영역이다.

반대로 중국 업체가 이런 조건까지 충족하고 미국 생산에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관세라는 가격 페널티가 사라진 상태에서 BYD 등 중국 업체의 원가와 배터리,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무뇨스가 중국 자동차산업의 기술 발전 속도를 두고 "놀랍다"는 취지로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중국 업체들의 미국 진입 영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시점도 묘하다. 로이터는 같은 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다음 주 미국 방문 때 BYD·CATL·샤오미 등 중국 주요 제조업체 경영진이 동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최종 명단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중국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접근 문제가 통상협상과 맞물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가 2022년 조지아 공장을 결정한 이유를 중국차 방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4년 먼저 시작한 현지화 투자는 결과적으로 중국 업체의 미국 진입을 앞둔 지금 강력한 협상 자산이 됐다.

그래서 무뇨스의 '진입조건' 발언은 단순한 중국차 경계론보다 한발 더 나간다. 미국 자동차시장의 경쟁 기준을 '싼 차를 누가 만드느냐'에서 '누가 미국 안에서 생산·고용·부품조달·기술보안 비용까지 부담하느냐'로 옮기자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현대차는 이미 그 입장료를 상당 부분 냈다. 중국차가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다음 승부는 관세가 아니라 누가 같은 입장료를 내고 경쟁하게 될 것인가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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