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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사진=연합뉴스 |
[토요경제 = 이덕형 기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미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접적인 압박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은 최근 대만과의 협상에서 ‘미국 내 생산 투자 조건부 관세 면제’라는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지만, 한국에는 동일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별도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 전략, 정부 협상력,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의 산업 경쟁력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현지시간) 러트닉 장관은 뉴욕주 시러큐스 인근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든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인 한국과 대만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부터 미국으로 유입되는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으며, 최근에는 관세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해외 기업의 미국 내 생산 투자를 유도하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날 미국과 대만이 발표한 무역 합의는 이 전략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대만 기업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동안 기존 생산능력의 2.5배까지 관세를 면제하고, 신규 공장이 완공되면 신규 생산능력의 1.5배까지 무관세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단순한 투자 유치가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 이전을 전제로 관세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정책적 의도가 명확히 반영된 설계로 해석된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대부분의 상품에 대해 15% 관세를 적용받기로 합의했지만, 반도체 관세는 최종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당시 한국은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보장받았다는 원칙적 약속을 확보했으나, 미국 당국자는 이번에 “국가별로 별도의 합의를 체결한다”고 밝혀 대만과 동일한 면제 기준이 자동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한국이 별도의 투자 규모, 생산 이전 수준, 기술 협력 조건 등을 놓고 다시 협상을 벌여야 함을 의미한다.
산업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텍사스와 인디애나, 오하이오 등지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생산 원가 상승, 인력 확보, 현지 인프라 구축 비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인 생산 이전 요구가 가중될 경우 국내 생산기지의 투자 여력 축소, 고용 구조 변화, 협력사 생태계 약화 등 연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미국 시장 접근성이 유지되지 않을 경우 고율 관세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글로벌 고객사와의 공급 계약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분업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메모리 생산은 한국, 파운드리는 대만, 장비와 설계는 미국과 유럽이 담당해 온 기존 구조가 미국 중심의 생산 재배치로 이동할 경우, 원가 구조와 기술 협업 방식이 동시에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생산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을 저하시킬 위험도 내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협상 전략 역시 중요 변수다. 단순히 관세 면제 폭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미국 투자에 대한 인정, 기술 유출 방지 장치, 국내 생산 기반 유지와 연계된 정책적 안전장치까지 포괄적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업계에서 나온다.
특히 대만과 달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생산 이전 압력이 집중될 경우 산업 구조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미국이 대만과 유사한 면제 기준을 한국에도 적용할 경우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투자 확대 압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한국에 더 엄격한 조건이 부과될 경우 추가 투자 부담과 수익성 압박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 협상이 장기화되거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글로벌 고객사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가속하는 부수 효과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발언은 단순한 관세 경고가 아니라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겠다는 정책 신호로 읽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투자 확대와 국내 경쟁력 유지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국면에 진입했으며, 정부와 기업 모두 단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 산업 구조 재설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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