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막히자 증권에 실탄…금융지주, 비은행 자본전쟁 불붙었다

증권·자본시장 / 위아람 기자 / 2026-06-08 16:49:57
NH농협금융, NH투자증권 4000억원 유상증자 참여
KB증권 7000억원·우리투자증권 1조원 이어 자본 확충
가계대출 규제에 은행 성장 여력 제한
IB·IMA·종투사 등 자본 기반 사업 경쟁 본격화

금융지주들이 증권 자회사에 잇따라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와 예대마진 압박으로 은행 중심 성장 공식이 흔들리는 가운데, 증권업을 비은행 부문의 새 성장축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빨라지는 모습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최근 NH투자증권에 4000억원 규모의 자본 수혈을 결정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일 이사회를 열고 최대주주인 농협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신주는 보통주 1286만1736주이며, 발행가액은 주당 3만1100원이다. 조달 금액은 약 4000억원이다.

이번 증자는 NH투자증권의 종합투자계좌(IMA)와 기업금융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격이 크다. NH투자증권은 조달 자금 중 2000억원을 리테일 신용공여 재원으로, 나머지 2000억원을 기업금융(IB) 관련 기업대출과 인수금융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IMA와 기업금융, 모험자본 투자를 키우기 위해 안정적인 자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NH투자증권은 이미 지난 3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IMA 업무 영위가 가능한 증권사 대열에 합류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NH투자증권이 자기자본, 인력·물적설비, 내부통제 장치, 이해상충 방지체계 등 법령상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농협금융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2월 KB증권에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KB증권은 보통주 3333만3333주를 주당 2만1000원에 발행했고, KB금융지주가 해당 물량을 전량 인수했다. KB증권은 이번 자본 확충을 수익구조 전환과 사업영역 확장을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설명했다.

우리금융지주도 증권 자회사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4월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증자가 완료되면 우리투자증권의 자본총액은 2조2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를 통해 2030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도약과 자기자본이익률(ROE) 10% 달성 목표를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지주들이 증권사에 실탄을 넣는 배경에는 은행 성장성 둔화가 있다. 은행은 여전히 금융지주의 핵심 수익원이지만, 과거처럼 대출 확대만으로 이익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금융당국은 올해도 엄격한 가계대출 총량관리 기조를 유지하고, 2026년 관리대상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로 설정했다. 은행의 외형 성장 여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증권업은 자기자본 규모가 사업 확장 능력과 직결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발행어음, IMA, 기업금융, 인수금융, 모험자본 투자 등은 모두 충분한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영역이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은행 의존도를 낮추고 비은행 수익원을 키우기 위해 증권 자회사 자본 확충에 나설 유인이 커진 셈이다.

특히 최근 증권사 경쟁은 단순 위탁매매 수익을 넘어 기업금융과 자본시장 사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형 딜을 주관하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모험자본 투자와 자산관리 사업을 확대하려면 자기자본 여력이 필요하다. 금융지주들이 증권 자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넣는 것도 이 같은 자본 기반 사업을 키우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다만 자본 수혈이 곧바로 수익성 개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업은 시장 상황과 금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투자자산 평가손익 등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큰 업종이다. 자본을 늘린 뒤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가 향후 성과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과제는 분명하다. 증권 자회사에 투입한 자본이 그룹 전체의 자기자본이익률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 단순히 몸집을 키우는 데 그치면 자본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증권 자회사들은 앞으로 외형 확대뿐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수익성 검증을 함께 요구받게 됐다.

결국 NH투자증권 4000억원, KB증권 7000억원, 우리투자증권 1조원 증자는 금융지주 경쟁의 무게중심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행 대출 경쟁이 규제에 막힌 사이, 금융지주들은 증권 자회사를 앞세워 비은행 성장동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금융지주 간 경쟁은 이제 은행 영업망이 아니라 증권 자본력 싸움으로 옮겨붙고 있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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