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홍보에서 법정공시로 간다

증권·자본시장 / 위아람 기자 / 2026-07-08 14:45:42
2028년 자산 10조 이상 코스피부터 적용…기업 부담 커지지만 자본시장 신뢰도 시험대

▲국민성장펀드-M.AX 프론티어 프로젝트, 발언하는 이억원 위원장[연합뉴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가 기업 홍보자료에서 자본시장 법정공시로 넘어간다. 핵심은 기후 대응을 잘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기후 리스크와 온실가스 배출, 대응 전략을 투자자가 검증할 수 있는 정보로 공개하라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법적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자본시장 입장에서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새 기준이 생기는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8일 당정협의를 거쳐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107개사가 첫 대상이다. 종속회사까지 포함하면 공시 영향권은 291개사로 넓어진다. 2029년에는 5조원 이상 상장사로 확대되고, 2030년에는 2조원 이상 기업까지 넓히는 방안이 검토된다.

이번 방안의 무게는 ‘법정공시’에 있다. 정부는 거래소 공시를 거친 뒤 법정공시로 전환하려던 초안과 달리, 2028년부터 사업보고서에 지속가능성 정보를 직접 담도록 했다. 재무제표와 같은 공시 체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허위 기재나 중요사항 누락이 발생하면 손해배상, 행정제재, 형사책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 3년 동안 고의적 그린워싱(위장친환경)을 제외하고 포괄 면책을 두기로 했다.

기업 부담이 가장 큰 부분은 공급망이다. 스코프3(Scope 3·공급망 배출량) 공시는 3년 유예된다. 자산 10조원 이상 기업은 2031년부터, 5조원 이상 기업은 2032년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유예가 곧 면제는 아니다. 원재료 조달, 운송, 제품 사용, 폐기 단계까지 배출량을 추적하려면 협력업체 데이터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ESG 공시가 중소 협력사까지 내려가는 구조다.

해외 흐름을 보면 한국의 방향은 늦지도, 과도하게 빠르지도 않다. EU는 이미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통해 대기업과 상장기업에 사회·환경 리스크와 기업 활동의 영향을 공시하도록 했다. 첫 적용 기업은 2024회계연도부터 새 규칙을 적용했고, 보고서는 2025년에 공개됐다. 다만 EU도 기업 부담 논란이 커지자 적용 대상을 1000명 초과, 연매출 4억5000만유로 초과 기업 등으로 좁히는 완화 조치를 추진했다. 규제 필요성과 기업 부담 사이의 조정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움직인다. 일본 금융청은 프라임시장 상장사를 대상으로 시가총액 기준 단계적 적용 일정을 제시했다. 시가총액 3조엔 이상 기업은 2027년 3월 종료 회계연도부터, 1조엔 이상은 2028년, 5000억엔 이상은 2029년부터 SSBJ 기준에 따른 지속가능성 공시를 하게 된다. 제3자 인증도 의무 적용 후 1년 뒤부터 시작된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 글로벌 투자자 앞에서 비교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4년 기후공시 규칙을 채택했지만 소송으로 시행을 멈췄고, 2025년에는 규칙 방어를 중단했다. 올해 5월에는 해당 규칙을 전면 철회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미국 연방 규제만 보면 후퇴다. 그러나 EU, 영국, 일본의 공시 체계와 글로벌 투자자 요구는 남아 있다. 미국의 후퇴가 곧 ESG 공시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업들은 국가별 기준이 달라지는 ‘복수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

국내 기준도 국제 기준과 맞물려 있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지난 2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제1호와 제2호를 의결·공표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 S1·S2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리스크와 기회가 현금흐름, 자금조달, 자본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투자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한다. 즉 ESG 공시는 착한 기업을 고르는 자료가 아니라 기업가치와 리스크를 판단하는 재무정보의 일부로 재편되고 있다.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세 갈래다. 첫째, ESG 조직이 홍보나 사회공헌 부서에 머물 수 없다. 재무, 법무, 구매, 생산, 환경안전, 감사 조직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둘째, 공급망 계약이 바뀐다. 협력업체로부터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받을 근거가 필요하다. 셋째, 이사회 책임이 커진다. 기후 리스크를 사업전략과 투자계획에 어떻게 반영했는지가 공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별 충격도 다르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처럼 배출량이 큰 업종은 전환비용과 설비투자 계획을 설명해야 한다. 자동차, 배터리, 전자 업종은 글로벌 공급망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다. 금융회사는 여신과 투자 포트폴리오의 탄소 리스크를 따져야 한다. 앞으로 공시는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대출금리, 투자자 평가, 보험료, 수출계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이번 제도화의 본질은 부담이 아니라 가격 발견이다. 지금까지 ESG는 기업이 강조하고 싶은 활동을 골라 보여주는 성격이 강했다. 앞으로는 투자자가 기업의 기후 리스크와 전환능력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된 기업에는 자본조달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준비하지 못한 기업에는 비용과 소송 리스크가 된다. ESG 공시가 시작되면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는 더 이상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숫자와 내부통제로 검증된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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