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덜 마시는 시대, 하이트진로는 ‘제로·라이트·슬러시’로 간다

유통·소비재 / 김은선 기자 / 2026-07-02 14:37:32
국내 주류 출고량 감소 속 무알코올·저도주·체험형 맥주로 포트폴리오 재편
▲ 테라 슬러시 생 포스터. [하이트진로]

 

국내 주류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하이트진로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과거처럼 많이 마시는 시장에 기대기보다 덜 취하고, 가볍게 즐기고, 현장에서 경험하는 주류 시장을 겨냥하는 모습이다. 무알코올 맥주 ‘테라 제로’, 저도 소주 ‘진로 라이트’, 슬러시형 생맥주 ‘테라 슬러시 生’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이날 슬러시 형태의 생맥주 ‘테라 슬러시 生’을 출시했다. 리얼탄산 100% 테라 생맥주를 슬러시 형태로 구현한 제품이다. 영하 7도의 아이스 거품을 적용해 최대 약 60분 동안 시원한 음용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이트진로는 자체 개발한 ‘테라 슬러시 生 메이커’를 통해 기존 슬러시 음료의 거친 얼음 입자와 빠른 해동 문제를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전날에는 칼로리를 낮춘 ‘진로 라이트’도 선보였다. 진로 라이트는 알코올 도수 11.7도의 제로슈거 소주다. 기존 소주보다 부담을 낮춘 제품으로, 음주량을 줄이거나 가벼운 술자리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휴가철과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소주와 맥주 양쪽에서 저부담·고경험 제품을 동시에 꺼낸 셈이다.

이 전략은 시장 변화와 맞닿아 있다. 국내 주류 출고량은 장기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5년 401만5000㎘였던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21년 321만5000㎘로 줄었고, 2024년에는 315만1000㎘까지 낮아졌다. 10년 새 20% 넘게 줄어든 규모다.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주류 실질 소비지출도 전년 동기보다 9.0% 감소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마시는 방식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소비 감소의 배경에는 건강과 자기관리를 우선하는 문화가 있다. 과음보다 적정 음주를 택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소버 큐리어스’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2030세대는 운동, 수면, 업무 효율을 고려해 술을 선택적으로 소비한다. 주류업계가 독한 술과 대량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 저도주와 무알코올, 체험형 제품으로 움직이는 이유다.

하이트진로는 이 변화에서 선점 효과를 갖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무알코올 맥주맛 음료 ‘하이트제로 0.00’은 국내 무·비알코올 맥주 시장에서 1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시장조사업체 닐슨IQ코리아 기준 지난해 판매액 점유율은 36.8%다. 올해는 ‘테라 제로’를 추가로 출시하고, 지난달 말 330㎖·500㎖ 병 제품까지 내놓으며 외식·모임 채널로 무알코올 수요를 넓히고 있다.

무알코올 시장은 주류업계의 드문 성장축이다. 국내 무·비알코올 맥주 시장은 2021년 415억 원에서 2023년 644억 원으로 커졌고, 2027년에는 956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주류 소비는 줄어도 무알코올은 커지는 구조다. 하이트진로가 하이트제로와 테라 제로를 함께 가져가는 것은 단순한 제품 추가가 아니라 시장 방어와 성장 확보를 동시에 노리는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1분기 실적은 시장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하이트진로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5908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6% 줄었고, 영업이익은 559억 원으로 10.8% 감소했다. 주류 소비 위축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이 숫자는 동시에 하이트진로가 왜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내는지를 설명한다. 기존 소주·맥주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새로운 음용 상황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점은 하이트진로가 단순히 가격 할인이나 마케팅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테라 슬러시 生은 여름철 야외 음용 경험을 겨냥한 제품이고, 진로 라이트는 저도·저칼로리 수요를 겨냥한 제품이다. 테라 제로는 술을 줄이는 소비자를 외식과 모임 자리로 다시 끌어들이는 제품이다. 각각의 제품이 다른 소비 장면을 맡고 있다.

해외 성장도 또 다른 축이다. 국내 주류 시장이 정체되는 동안 K소주의 해외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소주 수출액은 2021년 655억 원에서 2024년 1534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인 베트남 공장은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첫 해외 생산기지다. 내년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과일소주를 중심으로 현지 생산과 유통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이트진로의 전략은 분명하다. 국내에서는 무알코올과 저도주, 체험형 맥주로 소비 방식을 넓히고, 해외에서는 K소주 성장세를 키우는 투트랙이다. 술을 덜 마시는 시대는 주류회사에 위기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술의 의미가 바뀌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이트진로는 그 변화에 맞춰 더 가볍고, 더 시원하고, 더 넓은 시장으로 움직이고 있다.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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