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패권의 균열은 한국 기업 실적표에 변수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달러 중심 외환보유 구조에서 조금씩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수출기업, 원자재 수입기업, 항공사, 조선사, 금융회사까지 환율 리스크를 다시 계산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달러 약세가 곧바로 한국 기업의 호재라는 단순 해석은 위험하다. 업종별로 매출, 원가, 부채, 환헤지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30일 공식통화금융기관포럼(OMFIF) 조사를 인용해 “더 많은 중앙은행이 달러 보유를 줄일 예정이다(central banks are set to shrink dollar holdings)”고 보도했다. 이 조사에서 향후 10년간 달러 보유를 줄이겠다는 중앙은행이 늘리겠다는 중앙은행보다 많아진 것은 처음이다. 조사 대상 중앙은행의 79%는 세계 통화체제가 “다극화된 통화 체제(multipolar monetary system)”로 이동하고 있다고 봤다.
세계금위원회(WGC) 조사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WGC는 2026년 중앙은행 금 보유 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향후 5년간 글로벌 외환보유액 내 달러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WGC는 이를 “달러 보유 비중이 낮아질 것(lower US dollar holdings)”이라는 전망으로 설명했다. 동시에 중앙은행들은 금 보유 확대 가능성을 높게 봤다.
한국 기업에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수출채산성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처럼 해외 매출 비중이 큰 업종은 달러 매출을 원화로 환산한다. 원화가 강해지면 같은 달러 매출을 올려도 원화 기준 매출과 이익이 줄어든다. 국내에서 인건비와 고정비를 부담하고 해외에서 달러 매출을 받는 기업일수록 환율 하락기에 마진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양면 업종이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로 업황은 강하다. 로이터는 한국의 6월 수출이 반도체 호조에 힘입어 1978년 이후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출하가 새 기록을 깼다(semiconductor shipments broke fresh records)”고 전했다. 6월 1~20일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88.4% 늘었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41.2%로 집계됐다.
문제는 가격과 환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요 확대의 직접 수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가 겹치면 수출 호조의 일부가 환산손익에서 희석될 수 있다. 매출은 늘어도 영업이익률 개선 폭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자동차와 배터리도 비슷하다. 현대차·기아는 북미 매출 비중이 높고, 배터리 3사는 미국과 유럽 현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달러 약세는 해외 차입금과 설비투자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반대로 수출분의 원화 환산 매출에는 부담이 된다. 여기에 미국 보조금, 관세, 현지 생산비가 겹치면 환율 변화가 손익계산서에 미치는 방향은 더 복잡해진다.
정유·화학·항공업은 달러 약세가 원가 측면에서 먼저 작용한다. 원유, 나프타, 항공유, 항공기 리스료는 달러 결제 비중이 높다. 달러가 약해지면 수입 원가와 리스료 부담은 줄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같은 항공사는 유류비와 외화부채 부담을 덜 수 있고, 정유·화학사는 원재료 매입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제품 판매가격, 재고평가손익, 정제마진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달러 약세가 곧바로 실적 개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조선업은 환헤지 싸움이다. 선박 계약은 장기 달러 계약이 많다. 수주 시점의 환율과 인도 시점의 환율이 달라지면 프로젝트별 이익률이 바뀐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처럼 대형 수주잔고를 가진 기업은 달러 방향보다 환헤지 정책의 적정성이 중요해진다. 달러 패권 약화가 장기 환율 변동성을 키운다면 조선사의 수주 수익성은 다시 환율 관리 능력의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금융권도 영향권이다. 글로벌 중앙은행의 달러 비중 축소 흐름은 국내 은행과 증권사의 외화 유동성, 해외자산 운용, 기업 환헤지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달러 조달 비용이 흔들리면 은행의 외화대출 금리와 기업의 해외차입 비용도 움직인다. 증권사는 해외주식·해외채권 운용 손익과 환헤지 비용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여기에 원화 24시간 거래 체제까지 겹친다. 로이터는 한국이 7월 6일부터 원화 24시간 거래를 시작한다고 보도하면서 원화가 “얇은 유동성 구간에 취약하다(vulnerable to pockets of thin liquidity)”고 지적했다. 거래 시간이 길어지면 외국인 접근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심야 시간대의 작은 주문도 환율을 크게 흔들 수 있다.
결국 한국 기업의 과제는 세 가지다. 수출기업은 원화 강세에도 이익률을 지켜야 한다. 원자재 수입기업은 달러 약세를 비용 절감으로 연결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외화 조달과 환헤지 수요 증가를 감당해야 한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결제와 외환보유의 중심이다. 그러나 중심축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환율이다. 환율은 한국 기업의 매출, 원가, 부채, 투자비를 동시에 흔든다. 달러 패권 약화는 먼 국제금융 뉴스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 환산, 현대차·기아의 북미 수익성, 대한항공의 유류비, 조선사의 수주 손익, 은행의 외화 유동성으로 번지는 기업 실적 뉴스다.
토요경제 / 최은별 기자 ceb@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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