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전재국의 숨겨진 ‘그림창고’를 찾아라

산업 / 유지만 / 2013-07-01 10:01:28
신경민 의원, “오산에 전재국 그림창고 있다” 주장

▲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밝혀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가 이번엔 ‘미술품 의혹’이 불거져 관심을 끌고있다. <토요경제>는 ‘전재국 미술품 미스터리’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추적에 나섰다.


‘전재국 대리인’은 국내 1세대 큐레이터
“잡지 창간만 함께 해…난 잘 모른다”
“전재국, 국내 유명 화가 작품 소장했다 처분”
큐레이터 1인과 전재국 간의 ‘수상한 관계’


[토요경제=유지만 기자] “오산 근처에 천문학적인 엄청난 규모의, 국내외 화가들이 그린 명화들이 있는 전재국의 수장고가 있다고 한다”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던진 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국내·외를 망라한 고가의 명화를 가지고 있고, 이를 보관한 창고가 경기도 오산에 있다는 얘기다.

<토요경제>는 재국 씨의 그림창고에 대한 의혹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 추적했다. ‘첩보’ 수준의 발언이었지만, 신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명화들이 ‘탈세’나 ‘자금 축적’의 용도로 쓰였을 수 있다. ‘시공사’의 대표로 있는 재국 씨가 미술계에 관심이 많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에, 고가의 그림을 소유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했다.


◇‘전재국 대리인’ 누구?
신 의원은 지난 20일 ‘전재국 그림창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1990년대부터 재국 씨의 대리인을 행사해온 한모, 전모란 사람이 화랑을 돌아다니며 명화 컬렉션을 했다는 얘기가 미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굉장히 파다하다”고 말했다.

취재 초반에 가장 먼저 파악한 인물이 한모씨와 전모씨였다. 가장 먼저 재국 씨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에 초점을 맞췄다. 유학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재국 씨가 시공사를 통해 미술 관련 사업을 많이 펼쳐왔기 때문이다. 화가들과 미술협회 등에 문의했고, 그 결과 한 씨와 전 씨, 재국 씨 간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정모 씨를 통해서다. 한씨, 전씨, 정씨는 모두 국내 미술계 1세대 큐레이터들이다.

재국 씨는 한씨와 전씨, 정씨와 함께 1993년부터 미술 잡지를 창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정씨에 따르면 “재국 씨는 당시 한국 미술이 외국에 알려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며 “이에 ‘외국에 소개할만한 미술잡지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해 넷이 함께 일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업을 주관한 업체는 시공사의 자회사로 알려진 ‘음악세계’였다.

네 사람은 1년여간을 준비해 미술 잡지 ‘아르비방’을 창간한다. 아르비방은 매 호마다 작가 1명을 선정해 그에 대한 각종 비평과 도록 등을 담았다.

아르비방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작가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작품이 소개된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미술계에 종사했던 한 인사는 기자에게 “90년대 한국 미술계는 워낙 시장이 작았다”며 “아르비방 같은 ‘미디어’가 등장하니 미술계에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아르비방은 경영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94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르비방은 96년 55호를 마지막으로 절판됐다.


◇“전재국, 국내 유명화가 작품 소장하다 처분”
정씨는 한씨와 전씨가 ‘전재국 대리인’으로 지목된 데 대해 “대리인은 아닐 것”이라고 부정했다. 그는 “당시 우리 넷은 ‘아르비방’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며 “‘대리인’이란 말도 완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씨의 반응도 매한가지였다. 한 씨는 “나에게 재국 씨의 ‘대리인’이라고 하는데, 미술지 창간 때에만 함께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재국 씨에 대한 의혹은 다 씻겨진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재국 씨는 본래 미술작품 수집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미술품 소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봤을 때, 재국 씨가 어떤 미술품을 소장했는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취재를 계속하던 중 미술계 인사로부터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국 씨가 ‘아르비방’을 내놓던 당시 자신의 도록이 실렸던 것에 감사한 화가들로부터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 미술계 관계자는 “당시 돈이 없던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잡지에 자신의 작품이 소개됐다는 것에 대한 감사표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미술계 인사는 재국 씨가 국내 유명 화가의 작품도 소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박수근,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도 소장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박수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은 국내 미술계에서도 ‘알아주는’ 명작들이 많다. 자연히 경매시장에서 비싸게 팔릴 수 밖에 없다.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지난 2007년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되면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갱신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인 천경자 화백의 작품 ‘초원 II’도 지난 2009년 9월에 열린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신 의원이 주장한대로 국내외 명화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실재한다면, 박수근·천경자의 작품도 들어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미술계 원로 인사는 “재국 씨가 두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 처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즉, 현재 재국 씨에게 남은 그림은 ‘아르비방’을 출간하던 당시 화가들로부터 받았던 ‘선물’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 소재가 불분명한 큐레이터 1인의 역할 ‘의문’
본지는 취재 과정에서 재국 씨와 ‘아르비방’ 창간 과정을 함께했다는 큐레이터 중 2명의 증언을 확보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나는 창간 과정에만 함께 했을 뿐, ‘대리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재국 씨와 미술품 간의 ‘의혹’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접촉하지 못한 한 명의 큐레이터가 남았다. 바로 전모씨다. 그는 과거 청담동 세정빌딩에 위치한 ‘전갤러리’의 대표를 역임했다. 전갤러리가 문을 닫은 뒤 그는 종적을 감췄다. 미술협회에 연락처를 문의한 결과 “전갤러리는 당시 협회쪽에 등록이 돼 있지 않아 연락처를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전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재국 씨와의 연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재미언론인 안치용 씨가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딸인 전효선 씨가 소유해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졌던 신반포 아파트의 원주인이 전씨로 밝혀졌다.

전씨는 해당 아파트를 1993년 3월 8일 매입했다. 주목할 점은 매입 시기다. 93년은 전씨가 재국 씨, 한씨, 정씨와 함께 ‘아르비방’의 창간 준비를 했던 시기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전씨는 매입한 지 2달이 지난 5월에 신한은행으로부터 2억4000만원을 빌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로부터 6개월 뒤인 11월에 시공사가 전씨의 채무를 떠안는다. 이로 인해 재국 씨와 전씨 간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된다. 미술잡지 창간을 위해 함께 작업했다는 시점에 부동산을 통한 관계가 이뤄진 것이다. 이로부터 6년여 뒤인 2000년 3월 31일 전효선 씨가 아파트를 매입하게 된다.

신반포 아파트의 특이한 점은 또 있다. 소유권이 바뀌는 동안 박모씨라는 세입자가 들어와 1996년 2월 전세권을 설정했다가 10년 뒤인 2006년 해지하게 된다. 등기부상의 기록대로라면 10년동안 단 한번도 전세금이 오르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봤을 때 불가능에 가깝다. 이 시기는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전세가가 매매가에 이를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때다. 재미언론인 안치용 씨는 “전씨 차명재산이 밝혀져 추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고 밝혔다.

해당 아파트에 대한 시공사의 채무는 2006년 3월 9일 해지됐다. 효선 씨는 2010년 9월 2일 21억2000만원에 이 아파트를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2000년에 효선 씨가 매입한 신반포 아파트의 원 주인은 큐레이터 전씨였으며, 이후 시공사 대표인 재국 씨가 사실상 소유했다고 볼 수 있다.

전씨는 갤러리 대표를 역임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빼돌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씨가 운영했던 ‘전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 일이 있다는 한 유명 화가는 “전갤러리가 폐업하면서 내 드로잉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통상 전시회가 끝나고 나면 자신의 작품을 돌려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전씨가 돌려주기는커녕 잠적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화가는 격앙된 목소리로 “나도 수차례 소재를 파악해보려 했는데 종적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림창고’의 행방은?
재국 씨와 관련된 ‘미술품’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큐레이터 전씨와 재국 씨 간에 의미있는 관계가 밝혀지면서 자연스레 ‘그림창고’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그림창고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화가는 “그림을 보관하는 데 습도와 온도 등이 중요하지만, 이는 기계설비만 갖춰져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며 “그정도 창고는 어느정도 재력만 있으면 누구나 구축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만약 그림을 은닉하려고 한다면 버젓이 갤러리 창고에 보관할 리 없다”며 “재국 씨가 현재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만 정확히 파악된다면, 그림창고의 존재 유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전두환 전방위 추징’ 가능할까
각종 부동산과 미술품 의혹에 페이퍼컴퍼니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사정당국이 전두환 일가의 추징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지난 27일 국회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 시효 연장을 골자로 한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켰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공무원의 불법재산에 대한 몰수·추징시효를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처리했다.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면서 오는 10월 만료 예정이었던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시효는 2020년 10월로 7년 더 연장됐다.

또 추징금 미납자가 가족이나 측근 명의로 불법 재산을 은닉하더라도 미납자에 대한 추징 판결을 근거로 3자 명의의 불법 재산에 대해 추징 집행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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