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될까? M&A 잇단 좌초

산업1 / 토요경제 / 2008-12-08 10:15:59
"경기침체·자금난에 사세확장 꿈도 못 꿔"

동국제강, 쌍용건설 인수 유예 등 잇달아
"내년 1분기까지는 극도로 위축될 것"


세계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자금 경색, 주가 폭락으로 인해 재계의 M&A(인수 합병) 차질이 가시화되고 있다. 무리한 M&A가 오히려 경영 위기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대한 우려가 우리 재계의 M&A 시장을 짓누르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대형매물이 즐비한 국내 M&A 시장도 한동안 냉각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최근 기업들의 인수 포기는 가격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기업들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서바이벌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M&A시장을 활성화해 기업 생존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국제강 의견차 좁히지 못하고 사실상 포기



먼저 동국제강은 지난 2일 인수가격 등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쌍용건설 인수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주당 3만1천원에 쌍용건설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이후에 터진 글로벌 경제위기로 증시가 폭락하면서 쌍용건설 주가는 현재 6천원 안팎으로 떨어졌고 이에 동국제강은 매각주체인 자산관리공사와 인수가격조정 협상을 벌였으나 자산관리공사가 가격조정한도인 5% 이상 인수가격을 깎아줄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인수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쌍용건설 인수를 포기하면 입찰보증금 약 230억원을 떼여야 할 형편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이사진들이 최근의 경제 상황과 여건의 불가피성으로 인해 쌍용건설 인수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으며 이에 따라 유예를 요청하는 쪽으로 결정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요청에 대해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쌍용건설은 재매각 절차를 밟게될 전망이다. 하지만 건설경기가 최악이고 쌍용건설의 주가가 바닥을 기는 상태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재입찰 시기는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쌍용건설 매각 무산 다른 건설사 M&A에도 영향

증권업계는 동국제강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신용경색 현상이 지속되면서 쌍용건설 인수자금 조달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올 하반기 증시 폭락과 관련해서도 건설주가 국내증시 하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현재 시장 상황이 변한 만큼 비싼 가격에 인수할 필요가 없다는 내부의 인식이 점차 높아졌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그 동안 동국제강 주가 반등을 제한하는 악재로 지목됐던 쌍용건설 인수 관련 재무부담 리스크가 이번 결정으로 인해 상당 부분 제거했다고 판단했다.


업계는 쌍용건설 M&A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건설 경기가 최악이고 바닥으로 떨어진 주가가 언제 회복될지 불투명한 만큼 쌍용건설이 단기간에 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봤자 득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채권단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시가총액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재입찰을 서둘러 진행할 수 있겠느냐”면서 “최대한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일정기간이 지나야 재입찰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쌍용건설 매각 무산은 현대건설 등 추진 중인 다른 건설사 M&A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등도 시장상황이 불안하고 주가하락이 우려돼 이 회사 매각을 내년 이후로 넘긴 상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대주단 가입, 연쇄부도설 등으로 최악의 경영환경을 맞고 있는 건설업계 사정상 건설사에 투자하거나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을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건설사 M&A 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시공능력 평가 순위 13위인 쌍용건설매각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금호생명, 유진투자증권, C&그룹 계열사 등 많은 기업 매물들도 적지 않은 충격파가 예상된다.


금호생명을 상장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증시가 침체하면서 매각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매각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금호생명은 국내외 금융회사, 사모펀드 등 4~5곳으로부터 실사를 받고 오는 11일 인수제안서를 마감한다. 한때 매각가격을 1조원 이상도 기대했지만 최근 경제상황이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유진그룹, 서울증권 인수 자금 회수도 불투명

유진투자증권을 매물로 내놓은 유진그룹도 서울증권 인수 때 지불한 1800억원을 회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 M&A전문회사 대표는 "지난 10월까지도 딜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데 11월 들어서만 4~5건이 모두 중단됐다"며 "워낙 상황이 불투명하니까 서로 가격 차이를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이달 중순부터 한 달간 아예 회사 문을 닫기로 하고 직원들에게 휴가를 떠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작년 말 서울증권을 인수해 유진투자증권을 출범시켰던 유진그룹은 1년 만에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외에 한두 개의 증권사 매물이 더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히 올해 초만 해도 M&A 매물이 넘쳤던 은행업계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거의 그로기 상태이다. 3년을 끌어온 외환은행 매각의 경우 그간 거론돼온 유력 인수 후보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당분간 새 주인 찾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력한 인수 의사를 밝혀온 국민은행은 올해 지주사로 전환하며 자사주 확보에 약 4조원을 투입하는 바람에 '실탄'이 거의 소진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말을 앞두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점도 외환은행 인수자금 마련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호AMC 잔금 마감일 못맞춰 중도 하차

지난 3월 싱가포르 CDL코리아로부터 힐튼호텔을 5천80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던 강호AMC는 잔금 납부 마감일을 맞추지 못해 향후 인수가 힘들게됐고 계약금 580억원도 돌려받기 어려워졌다.


강호AMC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국내 경기침체로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미디어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골든브릿지 컨소시엄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최근 인수협상이 중단됐다. 새한미디어는 지난달 26일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기한이 연장됨에 따라 그간 추진해오던 M&A 작업이 중단됐다고 공시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의 경우엔 지난 10월 말 차순위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리플우드 홀딩스LLC와 매각주간사 우리은행이 한달이 넘도록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리플우드는 2006년 1차 매각 추진 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가격 이견 때문에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삼성전자도 세계 최대 메모리카드 업체인 미국 샌디스크사 인수 작업을 중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샌디스크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성장동력을 물색해온 국내 최대 통신사인 SK텔레콤도 미국 3위 통신업체 스프린트넥스텔을 인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해 이랜드가 부동산 자산관리 업체 코람코투자신탁에 매각키로 했던 뉴코아아울렛 강남점도 코람코가 투자자들을 모으지 못해 매각이 무산됐다.


국내 M&A 시장의 최대 매물인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작업도 매끄럽지 못한 실정이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저지로 2주일째 실사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한화와 매각주체인 산업은행은 실사가 늦어지면 본계약 체결 후에도 실사를 계속하고 최종인수가격을 실사결과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


그러나 실사가 지나치게 지연되거나 한화, 산은, 대우조선해양 노조간에 협상이 결렬되면 매각 작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는 특히 국내외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그에 따라 한화가 인수 자금 마련에 차질을 빚거나 조선경기가 크게 악화되면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표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M&A 급속 냉각 '미스매치'가 가장 큰 이유

M&A시장이 이처럼 급속히 냉각된 것은 매수자와 매도자 간 '미스매치(불일치)'가 가장 큰 이유다.


외환위기 때는 금융회사 차입이 수월했던 해외자본이라도 건재했지만 지금은 해외자본 역시 차입금을 줄여야 하는 처지여서 원가가치 하락조차 별 매력이 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경기가 계속 악화되면서 매수ㆍ매도자 간 인수가격 격차가 커진 것도 문제다.


지난 3분기까지 M&A 실적도 이미 예년에 비해 초라하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올 3분기 말까지 국내 M&A시장 규모는 41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 감소했다. 게다가 이 통계는 삼성전자가 제안했던 샌디스크 인수 등 결렬된 협상과 한국투자공사의 메릴린치 지분 매입 등 단순투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올 7월까지는 그나마 STX의 아커야즈 공개매수, LS전선의 슈페리어에식스 인수 등 굵직한 국경 간 거래와 홈에버, C&M, 대한통운, CJ투자증권 등 대형 M&A가 있었지만 8월 이후엔 500만달러 이상의 딜을 찾아볼 수 없다.


M&A시장 경색에 따라 기업들의 자구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등 연쇄적 부작용도 염려되고 있다. '정부 금융회사 규제 강화→금융권 대출 축소→M&A시장 위축→기업 위기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기업들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서바이벌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M&A시장을 활성화해 기업 생존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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