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품 개발 'no' 마케팅 '올인'

산업 / 황지혜 / 2006-11-13 00:00:00
유사 상품 만연... 차별화 기대 어려워 인지도 높은 브랜드 선택 가능성 높아
▲ '현대카드w' 출시 당시,대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방송cf 광고

최근 직장인 유 모양(24)은 급여 통장을 활용하기 위해 정보를 비교해 보려고 인터넷을 찾아봤다. 그런데 '직장인 플랜 저축예금', '부자되는 월급 통장', '씨티원 직장인 통장' 등 이름만 조금 다를 뿐 서비스 내용이 비슷한 상품만도 10여 가지가 넘었다. 내용도 비슷한데 일일이 체크하기도 귀찮아 결국 최근 눈에 띄게 광고를 많이 한 은행 상품에 가입했다.

해마다 1,000개가 넘는 금융 신상품이 쏟아지지만 몇몇 상품을 제외하고는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그렇다고 신상품 개발을 포기하고, 높아져만 가는 고객의 안목에 뒤쳐지는 기존 상품에만 의지할 수도 없다. 이는 상품을 개발하는 기업이 갖는 딜레마다.

각 금융사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신상품 출시와 동시에 TV광고, 인터넷, 판촉 이벤트 등을 활용해 고객이 신상품과 다양한 접촉 기회를 늘리면서 전국적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더 이상 국내외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획기적인 신상품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상품화 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시장에 출시돼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또 시중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 상품은 일종의 '조건의 배합'으로 만들어진 서비스 상품이기 때문에 내부 전산망 사정에 무리가 없으면 하루 만에도 복제가 가능하다. 상품 개발에 힘쓰더라도 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지자, 상품의 차별화 대신 마케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하나은행 상품개발실 관계자는 "우리가 선점할 수 있는 블루오션, 즉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이미 타겟층이 세분화돼 있고, 웬만큼 나올 수 있는 상품은 거의 다 나온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상품개발실 홍창표 팀장은 "시장이 급변하는데 그 때마다 신상품을 내놓기 힘들다"면서 "최근에는 신상품 개발보다는 기존 상품을 리메뉴얼 하거나 문제점을 보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발실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신상품 자체로 승부하기 보다 상품을 어떻게 어필하고,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상품의 특성상, 판매 시점에서 상세히 설명이 요구되기 때문에 고객과 금융기관을 연결해주는 마케팅 활동이 큰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최근 금융사들이 영업정지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들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홍 팀장은 "신상품 개발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새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올바르게 인식시키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상품이 나올 때부터 판매 중지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같은 공간에서 4개 팀이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 사내 직원들 뿐 아니라 현장 영업직원과의 정보 공유도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상품이 출시되기 전 영업점에 배포할 리플렛(안내책자), 팜플렛에 들어가는 문구 하나하나도 상품개발실에서 결정하고 제작한다. 또 신상품 출시와 맞춰 지방 영업점 및 지점 직원,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여는 세미나에는 누구보다 상품에 대해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가진 상품 창안자나 펀드 운영사가 강연자로 나선다.

이런 영업점 강화 마케팅 전략은 다른 금융업계에도 예외일 순 없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지난 8월 서울 광화문 인근에 '파이낸스숍'을 열었다. 레드, 오렌지, 브라운 등의 원색으로 가득 찬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안락의자, 독특한 모양의 디자인 상품들로 일단 소비자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금융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을 직접 만나는 접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고객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서고, 고객에게 기업 브랜드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파이낸스숍을 개설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은행권에서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 마케팅으로 영업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상당수 시중은행이 CRM 시스템을 구축해 고객의 투자성향에 따라 미리 신상품 안내서를 발송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했을 때 창구 직원의 모니터에 뜬 고객의 직장, 자녀, 결혼유무, 연봉, 가입상품의 수익률과 같은 종합정보를 토대로 직원이 고객에게 적합할 상품을 권하고, 만일 고객의 반응이 부정적이면 차선의 상품을 권유한다. 현재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이 CRM 시스템을 적용 중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고객 100명에게 주먹구구식으로 상품가입을 권할 경우 성공률이 불과 2% 미만이었지만 이 시스템을 적용한 이후 성공률이 17%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한편 보험업계에서도 이른바 '미투'(Me-too) 제품의 범람으로 보험 상품간 차별화가 어렵게 되자, 브랜드 강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상품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 고객들이 상품 선택할 때,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상품의 장기적 차별화는 결국 브랜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기 때문.

생보업계 관계자는 "브랜드가 특정 금융상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분위기가 금융계에 형성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생명보험 상품에도 브랜드 마케팅 개념이 적극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현대카드는 지난 2003년 '현대카드M' 출시 당시, "행복하세요? M도 없으면서…"라는 CF로 대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출시 3개월 만에 21만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이후 W, S 등 신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브랜드 광고를 집행해, 금융권에서 성공적으로 자사 브랜드를 한 단계 높이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상품의 과도한 마케팅 전력에 대비해 고객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윤권에서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직원들에게 판매 할당이 떨어져 '실적 채우기'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고객에게 신상품 위주로 상품을 추천할 가능성이 높고, 또 신상품 마케팅에만 집중되다 보면 정작 고객이 원하거나 필요한 상품에 대한 정보는 그만큼 적어진다는 것.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는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고객으로부터 뺏을 수 있다"면서 "신상품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다 보면 중점이 돼야 할 신상품 개발에 소홀히 하게 되고, 운용 비용만 높아져 이는 고스란히 고객이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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