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이 뭐길래②] “1등은 괴로워”...과로사 늪에 빠진 '은행원'

산업 / 문혜원 / 2018-09-19 18:02:19
근무단축시행돼도 장시간 노동업무 부담 여전..금융노조 금융당국과 KPI대대적 개선 요구
요즘 은행원은 예전의 1등 신랑·신부감으로 꼽히던 선망의 직업 대상이 아니다. 연봉은 높게 받지만, 영업을 해야 살아남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 실적을 위해서도 1등을 해야 하고, 은행 서열에도 뒤지지 않으려면 무조건 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최근 은행원들이 업무과부하로 건강까지 잃고, 죽음까지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업무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영업경쟁의 문제로 지목되어온 KPI(영업실적평가) 개선방안을 위해 당국과 논의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편집자 주]


은행원들이 영업압박, 업무과부하로 인해 쓰러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토요경제=문혜원 기자] 19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실적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각 은행 내부적으로 영업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KPI 구성 자체가 퇴직연금(DC DB IRP), 펀드· 방카· ELT 같은 신탁상품에 집중돼 있어 방문고객에게 판매를 유도하고 있다.


KPI(핵심성과지표)는 재무(손익·공정성), 상품신규, 관리지표, 소비자 보호, 사회공헌 등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은행이 업무 성과를 평가하고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성과지표다.


KPI 평가 때문에 모든 은행 직원들은 하반기 영업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직원들은 KPI가 은행의 브랜드(리딩뱅크) 이미지를 좌우하는 도구라는 설명이다. 또한 직원 개개인의 직급과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시중은행 영업지점에서 근무하는 A씨는 “아예 KPI평가에 영업상품 판매에 대한 실적점수를 반영하고 있어 직원들이 무조건 하고 있다”며 “요즘은 더욱 영업압박이 심해져서 저녁에 일찍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고 하소연 했다.


또 다른 은행원 B씨는 “말만 워라밸(Work-Life Balance·저녁 있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며 “주52시간 근로시간이 단축된다고는 하지만 온전히 반영될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반기 업무 실적평가가 본격화된 탓에 영업 압박에 부담을 호소하는 은행원들은 많다. 실제 지난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은행 직원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7%가 고객의 이익보다는 KPI 실적 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적 경쟁은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다. 은행원들은 은행 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과도한 실적달성 경쟁(65%)과 장시간 노동(11%)을 꼽았다. 즉,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의 초과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한 노동은 은행원들의 건강과 삶도 앗아갔다. 지난 7월에는 KB국민은행에서 영업부 직원 A씨가 실적압박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는 같은 달 18일 이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노조는 “지난 5월 26일 모 지역영업그룹 소속 A직원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과도한 실적압박이 주된 이유였다”고 말했다. 노조는 직원이 죽기 전 남긴 메모를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했다. 메모에는 “매일 죽고 싶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은행원의 이 같은 영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은행영업지점은 특성상 저녁접대 등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하다. 이에 잦은 업무로 인해 피로가 누적된 은행원들이 과로사로 쓰러지거나 자살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은행원들의 중론이다.


최근에는 A은행 손 모 지점장이 주말 산악동호회에 참석했다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손 씨는 평소 잦은 저녁접대, 주말업무 등을 병행하느라 “소화가 안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라는 호소를 동료들에게 자주했다고 전해진다.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손 모 지점장은 평소 실적부진으로 인한 영업업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의 영업압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업무를 통합처리하거나 영업점별 특성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또 은행들은 직원들을 위한 심리센터를 운영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야근 허가제를 도입해 운영하는 등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원들의 정신적 고통이 심해지자 지난해 이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영업과당 경쟁을 낳는 KPI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사측들의 노력이 지지부진한 탓이라는 설명.


금융노조는 지난 7월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실무 책임자들과 과당경쟁 근절을 한 KPI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금융노조 간부들은 과당경쟁의 근본 원인인 KPI 제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금융노조는 "10월까지 KPI 감독 기능 강화 및 은행권 과열 경쟁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중장기적 성과 평가 방식이 도입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금융당국에 성과 평가 체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금융감독원도 KPI 개선 당위성에 관해 공감하고 금융노조를 통해 현장 의견을 수렴할 뜻을 밝혔다. 이진석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국장은 “KPI 항목의 평가 방식 변경, 개별상품 KPI 배제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검토하기로 했다”며 “KPI 개선의 목표와 수용성에 대해 고민하고 노조와 상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은행권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내년부터 도입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1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은행회관 14층 중회의실에서 제5차 산별교섭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018년도 임금협약 및 2019년도 단체협약’을 맺었다.


금융 노사는 내년 7월 1일로 예정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반년 이상 앞당겨 내년 1월 1일부로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합리적인 이유로 조기 도입이 불가능한 직무에 대해서는 각 기관이 최소한도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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