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밖으로 나가는데 정책은…

산업 / 이정선 / 2018-05-11 09:22:45


20여년쯤 전, 증권시장 주변에서 루머가 나돌았다. 김영삼 정권이 현대그룹을 손볼 것이라는 루머였다. 당시 현대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권에 도전하는 등 김영삼 정부와 껄끄러웠다.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루머가 돌고 있었다.

루머는 현대그룹 ‘도산설’로 확대되기도 했다. 과거 전두환 정권 때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되었던 것처럼, 현대그룹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루머였다.

그리고, 또 다른 루머가 있었다. 현대그룹은 국내에서 아무리 압박해도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손보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는 소문이었다. 요컨대, 현대그룹은 ‘자생력’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래서인지 현대그룹은 오늘날에도 건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등 몇 개로 나뉘어졌을 뿐이다. 현대중공업은 좀 어려워졌지만, 현대자동차는 지구촌이 좁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달리고 있다.

삼성그룹은 말할 것도 없다. 삼성전자는 세계 ‘톱’을 다투고 있다. 삼성전자의 공시에 따르면, 영업이익이 올해 1분기에만 15조6400억 원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1700억 원 넘게 번 셈이다. 어지간한 대기업의 연간 이익보다도 많은 영업이익을 불과 3개월 사이에 올렸다.

대기업들의 ‘해외영업’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162개 대기업의 결산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들 기업의 해외법인 매출이 전체 매출의 49.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법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48.2%에서 2016년 48.4%, 지난해에는 49.1%로 높아졌다. 그 중에서도 IT·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해외매출 비중이 83.4%에 이르고 있었다. 장사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한 것이다.

그런 기업이 적지 않았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해외매출 비중이 96.6%, 삼성디스플레이와 SK하이닉스는 96%, LG디스플레이는 92.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86.8%), 한국타이어(85.4%), 포스코대우(85.4%) 등의 해외매출 비중도 80%를 상회했다.

기업들이 이렇게 밖에서 장사를 하면, 안에서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산업공동화’로 인한 일자리 부족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할 정도로 일자리 늘리는 데 ‘올인’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밖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만큼 일자리는 줄어드는 것이다. 청년실업률이 보여주고 있다.

기업이 밖에서 장사를 하면 세금도 덜 걷힐 수 있다. ‘세수 차질’이다. 세수가 부족하면 공무원을 늘려서 일자리를 채우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공무원 봉급을 올려주기도 힘들게 된다.

세수가 줄어들면 부족분을 보충할 곳은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밖에 없다. 그 바람에 월급쟁이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소비가 위축된다. 이는 소비를 늘려서 내수를 살리려는 정책에도 ‘마이너스’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저임금이 ‘왕창’ 오르는 바람에 내수업종이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밖에서 장사를 하면 경쟁력을 깎아먹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냥 나가서 장사는 게 아니라 기술도 함께 노하우도 유출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게 아니라 이미 추월했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책이 바뀔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안에서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재벌 개혁’이고 대기업 옥죄기다. ‘자발적인 개혁’을 압박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벌써부터 밖으로 나간 기업에게 각종 혜택을 주면서 다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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