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골'…허리띠 꽉 졸라맨 가계

산업 / 조은지 / 2017-02-26 15:05:41
식료품비 감소 폭 최대…옷·교육·차·휴대전화 모두 줄였다
▲ <사진=연합>

[토요경제=조은지 기자]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흑자는 100만원을 넘어서며 연간 단위로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허리띠를 졸라맨 '불황형 흑자'였다.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고 오락·문화 지출은 12년만에 처음 감소세를 보였다. 옷, 교육, 차, 휴대전화 지출도 감소했다.
빚이 늘면서 채무조정 신청과 은행 예·적금 해지 비율은 증가했다.
속상한 마음을 풀기 위해서인지 술과 담배 지출은 2년 연속 늘었다.
일확천금 수요 탓인지 로또 판매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복권 판매액도 계속 증가했다.
경기 악순환을 유발하는 소비 침체가 절벽 수준으로 악화하자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가구당 월평균 소득(명목·전국 2인가구 이상)은 439만9천원이었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가계지출은 336만1천원으로 가구당 월평균 흑자액은 103만8천원이었다.
연간 단위로 가구당 월평균 흑자액이 1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흑자액은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소득이 전년보다 0.6%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가계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가계가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계지출은 전년보다 0.4% 줄었다. 가계지출 감소는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불황이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서 흑자를 가장 많이 낸 것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 입고 싶어도, 먹고 싶어도 참는다…술·담배는 늘었다
허리띠 졸라매기 경향은 대부분 소비품목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 가구당 식료품·비주류음료 소비지출은 월평균 34만9천원으로 1년 전보다 1.3% 감소했다. 감소폭은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다.
작년을 제외하고 먹는 데 들어가는 지출이 감소했던 때는 2009년(-0.2%)과 2013년(-0.3%) 두 번뿐이었다.
가구당 의류·신발 지출은 15만8천원으로 1년 전보다 2.4% 줄었다.
의류·신발 지출은 2014년부터 3년 연속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조사비 비중이 큰 가구간이전지출은 20만3천원으로 4.3% 감소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경조사비 감소에는 경기 이외에 경조사비 상한선을 지정한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영향도 큰 것으로 풀이됐다.
휴대전화 기기 구입 감소로 지난해 통신장비 지출은 15.2% 감소했고 자동차 구입은 4.5% 줄었다.
단체 여행비, 서적, 캠핑 및 운동용품 등이 포함되는 오락·문화 지출도 0.2% 줄었다. 오락·문화 지출이 감소한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학원 등 교육 지출도 0.4% 줄어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술·담배 지출은 5.3% 늘었다. 2년 연속 증가세다. 가격 인상 요인도 있지만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한 수요 영향도 있어 보인다.
◇ 미래도 불안하지만 현재가 더 힘들다…예·적금 깨는 사람 계속 증가
미래를 위해 가입했던 예금과 적금을 깨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정기예금과 적금의 중도해지비율은 35.7%였다.
예금과 적금의 중도해지비율은 2014년 33.0%, 2015년 33.4% 등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낮은 금리 영향도 있지만 살림살이가 팍팍해져 미래를 위해 준비했던 예금과 적금을 해지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계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보험→펀드→예·적금 순으로 금융상품이 해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빚 탕감해주세요"…20대·60대 채무조정 신청 증가
소득은 부진하고 빚이 늘면서 채무조정 신청자도 늘었다.
지난해 말 가계신용 잔액은 1천344조3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1조2천억원(11.7%) 급증했다. 연간 증가액으로 사상 최대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채무조정 신청자는 9만6천319명으로 2015년보다 5.2%(4천799명) 증가했다.
2014년 8만5천168명까지 떨어졌던 채무조정 프로그램 신청자는 최근 2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20대와 60세 이상에서 채무조정 신청자 증가율이 높았다.
채무조정 신청자 중 29세 이하는 1만1천102명으로 전년보다 16.6% 늘어 증가율이 가장 컸다. 60대 이상 증가율은 10.5%로 29세 이하의 뒤를 이었다.
채무조정은 상환 능력이 부족한 채무자에게 채무 감면이나 상환 기간 연장 등의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 불황에 '인생 한방' 로또 판매액 사상 최대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판매 수입은 3조8천404억원으로, 전년보다 8.4% 증가했다.
복권 판매 수입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5년에는 3조5천551억원으로 2003년의 4조2천342억원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판매액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확정치는 이달 말께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해 복권 중 로또 복권 판매액은 3조5천221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 소비절벽 우려…"소득 증대·기업 투자 필요"
소비 침체가 심화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부진한 소비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는 가계 소득 부진으로 연결돼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올해 내수가 우려된다"면서 "소비가 특히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정부도 소비 진작을 위해 지난주 내수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자리 대책 등과 연계해 큰 그림 안에서 일관성 있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 진작은 기업 투자를 통한 방법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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