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왜 수천개 차명계좌 운용했을까?

산업 / 토요경제 / 2008-02-20 09:31:01

삼성그룹 3대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20일 삼성 전.현직 임직원 2453명의 증권계좌에서 비자금 의심계좌를 1700여 개로 압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특검의 조사를 받은 차명계좌 명의자 거의 전원이 "회사 계좌가 아닌 내 계좌이며 개인 돈"이라고 진술하고 있지만 특검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실제 차명계좌에 명의를 내준 소환자 40여 명 가운데 지난달 28일 소환된 삼성전기 김모 전 상무 등 3∼4명만이 차명계좌임을 시인했다.

특검은 자금의 출처는 아직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지만 임원들의 개인 돈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왜 삼성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거액의 자금을 수십억 단위로 쪼개 수천개의 계좌에 나눠 보관했는지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성 경위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우선 삼성이 조성한 자금이 계열사 분식 회계 등을 통해 만들어진 불법성 자금, 이른바 '비자금'일 경우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관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자금의 존재 자체를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등 몇몇 핵심 임원들만의 명의로 관리할 경우 규모가 너무 커져 금감원이나 국세청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금감원이나 국세청은 은행을 통해 100억원 이상의 예금은 꾸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 실제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계좌 4개에 50억원이 들어 있었던 것처럼 삼성이 운용한 차명계좌의 예금단위가 10∼20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자금의 조성경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특검의 수사가 크게 진척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학수 부회장이나 김인주 사장 등 자금의 조성과 관리현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이에 따라 이 자금이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인지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 김용철 변호사가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계열사로 지목한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제일모직 등에 대한 회계감사 자료 분석과 자금 흐름 추적을 하고 있다.


왜 증권 계좌에 넣어 뒀을까?

특검 주변에서는 문제의 차명계좌의 상당수가 시중은행이 아닌 삼성증권 계좌에 집중돼 있는 것이 자금의 성격과 관련, 의미가 있는 대목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그룹이 은행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삼성증권을 통해 자금을 관리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유사시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다.

삼성이 그룹차원, 또는 이건희 회장 개인의 돈으로 주식을 사고 팔았다면 목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자금증식, 또하나는 경영권 방어나 승계를 위한 주식 매집이다.

그러나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이 임직원 명의로 주식을 통해 재테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경영권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실제로 삼성증권 전산센터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 차명 계좌들은 거액이 한꺼번에 오가거나 삼성 계열사 주식을 거래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검이나 삼성 주변에서는 의심계좌로 지목된 삼성증권 계좌에 대해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갖고 있던 이건희 회장의 개인돈이 주식투자 등으로 불어난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삼성이 관리한 돈이 모두 이같은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불어난 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특검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자금 중 일부분이라도 계열사 등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으로 드러날 경우 특검으로서는 수사가 급진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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