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프간 관계 뇌관 ‘일촉즉발’

산업1 / 토요경제 / 2012-03-19 13:31:50
코란 소각 이후 미군 1명 아프간 마을서 난사…반미 항의시위 격화 위기

[온라인팀] 미국이 코란 소각 이후 민간인 학살이라는 대 참사에 휘말려 아프간 과의 신뢰회복에 적신호가 켜졌다.


일요일인 지난 11일 새벽 나토(NATO)의 국제안보지원군(ISAF) 소속 미군 병사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주 민가에 들어가 민간인 16명을 사살하고 9명에게 총상을 입힌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몇 주일 전 미군이 코란을 불태운 사건으로 격화된 반미 항의시위로 3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이래 최대의 참사이다.


또한 코란 소각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사과와 지난 9일 향후 아프간인 수감자들을 아프간 정부에 인도하기로 하는 양해각서 체결 등 양국의 화해 노력으로 사태가 막 진정되려는 순간 터진 사건이다. 따라서 양국의 군사적 위상을 바꿀 중대한 합의 실현마저 불투명해졌다. 국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아프간 주둔 미군에 최종적 치명타이며 코란 소각 사건 이후 쌓아온 양국의 신뢰와 협조는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아프간 주둔 美軍 총기 난사사건 그 현장
미군 당국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주(州)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동트기 전 발생한 아프간 민간인을 상대로 한 총기 난사사건을 아프간 주둔 미군 병사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BBC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군 기지에서 약 500m 떨어진 판즈와이 지구의 알코자이와 나지반 두 마을에서 미군 병사가 민간인 집에 총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격 사건 후 어린이 9명을 포함해 민간인 16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일부 시신은 불태워지기도 했다. 신원 미상의 이 미군 병사는 나중에 군기지로 귀대해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현지 미군 당국은 이날 새벽 3시경 이 병사가 부대를 나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목격자는 이 병사가 2시에 총기를 난사했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인 압둘 바키는 밤에 총소리를 들었다며 사건 발생 당시 집안에 있었고 총성 후 조용했다가 다시 총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인 압둘 사마드는 이 지역은 사실상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아프간 당국과 탈레반이 그날 밤 주민의 통행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안한 밤이었다고 덧붙였다. 자정 무렵 전투기 소리가 들렸고 1시부터는 30분 가량 헬기 소리와 총성이 들렸다.


현지 여성 주민은 새벽 2시에 총성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개가 짖자 미군 병사가 개를 쏴서 죽였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총성을 들었다는 주민들은 많았지만, 실제 미군 병사를 본 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15~16살로 보이는 라피울라라는 현지 남학생으로부터 전화로 당시 상황을 전해 들었다. 당시 다리에 총상을 입은 라피울라는 미군 병사가 한밤중에 집으로 들어와 가족을 깨우고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목격자인 잔 아그하(20)는 당시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총성을 듣고 잠에서 깼다며 아버지가 커튼 사이로 밖의 상황을 훔쳐보다가 목과 얼굴에 총을 맞고 사망했으며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도 사살됐다고 전했다.


그는 바닥에 누워 죽은 척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들어온 미군 병사가 1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들이 한동안 집에 있었다”며 “매우 두려웠다”고 말했다.


총기 난사 소식이 전해진 이날 기자들이 사건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과 인터뷰를 했다. 사마드 칸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자녀와 손자 등 가족 11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전했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농사짓고 사는 칸 할아버지는 시신들이 화학 물질이 뿌려진 뒤 불에 탔다고 말했다.


한 가정집의 방바닥에 남은 혈흔과 함께 불탄 시신 중 일부와 불에 탄 어린이 시신 1구가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도 있었다. 한 사진에는 빨간색과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관자놀이에 총을 맞고 사망한 모습이 담겨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이끄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사령관 존 앨런 대장은 총기를 난사한 미군 병사를 구속했다고 확인했다.


이 병사는 총기 난사 전에 신경쇠약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의 발상지로 알려진 칸다하르주는 지난 5년 간 아프간 전쟁의 격전지였다. 판즈와이 지구는 이 격전지의 심장부였다.


카슨 제이콥슨 ISAF 대변인은 “총기를 난사한 병사가 이 부대를 떠났다는 것만 알고 있다”며 "병사는 사건 후 귀대하자 바로 구속됐으며 사건 경위와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 판즈와이 지역 군기지 앞에서 지난 11일 아프간 군인이 민간인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미군의 공격으로 어린이 등 민간인 16명이 사망했다.


◇미·아프간 관계 뇌관 터뜨린 미군 총기 난사사건
어린이 9명과 여성 3명이 포함된 사망자들은 자기 집에서 잠자다 불시에 봉변을 당했다. 격분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 "이것은 의도적인 암살이며 무고한 양민에 대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학살 행위"라며 워싱턴의 해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가족이 몰살당한 생존자 중 15세 소년 라피울라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그 미군 병사가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쳐 식구들을 일일히 깨운 뒤 총살을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총격은 칸다하르주의 발라디와 알코자이 두 마을 사이의 민간인 집 3곳에서 일어났고 사건 직후 피투성이가 된 아기와 담요에 싸인 채 반쯤 탄 어린이의 시신들이 버스와 트럭 지붕에서 발견됐다. 시신들을 왜, 어떻게 태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간 국민들 사이에 현장 사진들이 유포되면서 분노는 커지고 있다.


문제의 지역은 국제군이 장기간 격전을 통해 장악한 탈레반의 발상지에 가깝고, 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고향이자 그가 이슬람학교 설립과 교육을 행하던 지역에 근접한 마을이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에서의 상징적 의미도 크고 탈레반의 수복 노력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특히 2009년 시작된 오바마 대통령의 남부 지역 대규모 군사작전의 대상지여서 카르자이 대통령은 조사단을 파견, 진상을 밝히겠다고 벼르고 있다.


발포 병사의 신병을 확보한 나토군은 애초에 우발적 총격 사망 사건으로 이를 보고하면서 나토군 ISAF의 작전과 무관함을 강조했지만 아프간 국민들은 일개 병사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무고한 양민에 대한 대량학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선 2010년에 미군 4명이 ‘살해조’를 결성, 수류탄과 중화기로 민간인 3명을 죽이고 시신 옆에 총을 남겨 무장한 것으로 위장하는 등 다른 미군 범죄도 많았다. 이미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선언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경제적 요인 등으로 조기 철수에 당장 박차를 가하려 했지만 “2014년까지 아프간 군에 국토방위 완전이양” 약속을 재확인하는 등 한발 물러선 기세다.


백악관은 지난 12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사태를 깊이 우려하며 면밀히 주시하고 진상 조사를 하겠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미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이번 사태가 아프간 철군을 재촉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며 즉각 철수 여론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오바마의 군사적 선택이 무엇이든 간에 양민의 편임을 주장하는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미-아프간 관계 악화로 그는 대선을 앞두고 최악의 곤경을 면할 수 없게 됐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