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에 걸린 ‘밀실인사’

산업 / 양혁진 / 2013-02-01 14:03:24
김용준 낙마… ‘위기의 박근혜號’

▲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면서, 박근혜 당선인의 ‘밀실 인사’가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받고 있다.

[토요경제=양혁진 기자] 박근혜 정부가 출발도 하기 전부터 큰 시련에 직면했다. 새 정부가 행정수반인 총리 인선에서부터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자칫 출범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1월 29일,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의혹과 관련 논란이 확산되자 자진사퇴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는 ‘책임총리’를 강조해온 박 당선인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줄 전망이다. 과거 정부보다 총리의 실질적 권한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었으나 첫 총리 후보자가 인사검증을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후임자 선택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 당선인이 언론과 야권의 현미경 검증을 원만하게 통과할 수 있는 인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 김용준 사퇴… 곤혹스러운 朴
김 후보자는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비정치인 중심의 참신성과 화합형 인사를 강조했던 박 당선인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특히 김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다시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 후보자가 논란에 휩싸인 가장 큰 문제는 자녀의 병역 문제와 증여세 납부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김 후보자의 자녀들이 친할머니로부터 부동산을 증여 받을 당시 나이는 고작 6세, 8세에 불과했다. 당시 재산세와 증여세의 납부 여부는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 후보자 본인에게 제기된 부동산 투기 의혹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초반에는 서울 서초동 땅과 약 46억원에 달하는 건물에 대한 의혹만 제기되더니 점차 용산 서빙고동 아파트와 종로구 아파트 투기 의혹까지 줄줄히 터져나왔다.


여기에 그동안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낙마’ 원인이었던 자녀의 ‘병역 면제’ 의혹까지 불거져 도덕성 논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김 후보자는 결국 총리 지명 5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 장관급 후보자만 20여명… ‘현미경 검증’될 듯
김 후보자의 사퇴를 야기한 사안들은 앞으로 지명하게 될 장관 후보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 당선인이 지명해야 할 장관 후보자만 17명에 이른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장관급으로 격상된 경호실장 등을 포함하면 20명이 넘은 후보자 인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 중 장관 후보자들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므로, 사실상 박 당선인의 ‘첫 작품’인 총리 후보자 인사 실패로 인해 새 정부는 출발하기도 전에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 부적절한 장관 후보자들의 ‘줄낙마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태고 있다. 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서류 검증만 제대로 했더라도 쉽게 걸러낼 수 있었던 것을 놓쳤다는 이유에서다.


2월 25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식까지는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오는 10일 이후부터 인사청문회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을 감안하면 실제로 남은 시간은 열흘도 되지 않는다.


보통 총리 및 장관급 후보를 검증할 때 2∼3배수를 후보군에 올려놓고 검증하는 것을 감안하면,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 당선인의 ‘인사 검증팀’이 최소 50여명을 검증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청와대 경호실장이나 비서실장 등은 따로 검증을 하지 않지만 언론의 잣대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많게는 70명의 후보군들이 인사 ‘선상’에 오르고 있어 박 당선인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박 당선인이 이같은 시련을 얼마나 조기에, 어떻게 수습하고 조각을 마무리할지 주목된다.


◇ 野 “밀실인사ㆍ깜깜인사가 낳은 비극”
여야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전격 사퇴에 대해 대체로 아쉬움을 표했다. 다만 그 분위기는 다소 엇갈렸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김 후보자의 사퇴에 대해 다소 난처한 듯 입장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상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깊은 고뇌 끝에 내린 결단으로 본다”며 “새누리당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짧은 입장만을 밝혔다. 최대한 수식어를 배제한 반응이다.


야권 역시 사퇴 발표 직후 발표한 논평들을 통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퇴의 원인으로 ‘불통인사’를 지적하면서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에 대해 우려를 표해 새누리당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박 당선인의 인사시스템이 수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는 총리 후보 지명 전까지 원칙을 지키는 소신과 존경받는 성품을 지닌 분이라고 알려졌다”며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자녀 병역의혹들이 속속 드러나고 의혹과 논란이 커지면서 엄격해진 국민들의 검증잣대를 통과 할 수 있을까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당선인은 ‘나홀로 집에서 수첩에 의존하는 인사’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한 검증 인사’로 인사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본인의 소명절차와 철저한 탐문조사 등을 통해 도덕적 결격사유는 사전에 철저히 걸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진 대변인도 “박근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첫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사퇴하게 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김 후보자의 전격사퇴는 박 당선인의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계기”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국민과 언론, 야당과의 소통 없이 깜깜인사, 불통인사, 나홀로 정치가 빚은 안타까운 비극”이라면서 “국민과 소통하는 새 정부 출범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반성과 당선인의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언주 원내대변인도 “박 당선인은 밀실인사, 불통인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열린 인사, 소통인사로 새 정부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추후 인선은 깨끗하고 당당한 분들로 채워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 與 내부에서도 ‘박근혜 스타일’ 비판 잇따라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 이후 여당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정몽준 의원과 정우택, 심재철 최고위원, 이상돈 전 정치쇄신 특위위원 등 주요인사들은 지난 1월 30일 박 당선인이 보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밀실인사’로 인한 검증부실이 김 후보자의 사퇴 파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야기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가 예고된 참사라고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중진의원들도 쓴소리를 하고 나선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자녀의 병역 문제나 증여세 납부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은 서류 검증만으로도 거를 수 있는 사안이었던 만큼 사전 검증에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인사스타일을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보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증임을 당선인이 깊이 생각하고 시스템을 바꾸면 좋겠다”며 “김용준 후보 낙마가 주는 여러가지 교훈을 잘 반영해서 다시 새롭게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박 당선인의 ‘나홀로 인사’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유기준 최고위원 역시 “김 총리 후보자 사퇴는 충분한 사전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며 "이번 경험을 통해 실수를 줄여야 한다. 청와대 등의 인력을 인수위에서 파견 받아 그 사람들로 하여금 검증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도 “김 총리 후보자와는 선거 기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함께 일하면서 소신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그만둬 안타깝다”며 “새누리당이 소외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 후보 사퇴건을 계기로 당이 박 당선인에게 더 적극적인 조언에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비선조직에 의존하는 인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박 당선인의 인선에 누가 관여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새누리당 대선기구인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 주변인물이지만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이른바 비선조직, 아들이나 가족이나 부인 이런 사람에 의존해서 결정하는 대통령은 100%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김영삼 대통령 말기 때 아들의 경우도 그랬고,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한 것도 말년에 경호실장에게 그 임무에 훨씬 벗어나는 힘을 줬었다”며 “이것이 역사적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 “낙하산 근절하겠다”는 朴, 잘 지켜질까?
야권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박근혜 식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는 가운데, 박근혜 당선인이 ‘낙하산 인사’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새삼 밝히면서, 앞으로 비판 여론을 피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 당선인은 지난 1월 30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낙하산 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이같은 언급은 정권에 의한 낙하산 인사 폐해를 근절, 공기업 등의 인사문화를 선진화시키고 대선승리에 따른 당내인사들의 ‘논공행상’을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정서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박 당선인이 같은 취지의 언급을 수차례 해온 점과 원칙을 강조하는 스타일을 감안할 경우 낙하산 인사 자제 기조는 꽤 실행될 것으로 보고 긴장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공신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상당한 여운을 남겼다.


같은 당의 다른 의원은 “가능한 낙하산 인사를 지양해야 겠지만 한 명씩 하다보면 모두 한 자리씩 하게 된다”며 새 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 당선인의 낙하산 인하 비판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부터 낙하산 인사를 여러 차례 비판해 왔으며, 지난달에도 서울 창신동 쪽방촌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낙하산 인사관행’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인수위 구성과정에서도 친박계 의원들을 최소화시켜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실천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선 승리에 기여한 인사들도 스스로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김무성 전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대선 직후 스스로 모습을 감추기도 했다.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 중 한명인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지난 25일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경제부총리를 맡을) 시기가 다 지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별로 관심이 없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역대 정부의 경우 학연, 지연 등으로 웬만한 공기업ㆍ공공기관 임원 자리는 싹쓸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권 출점 초부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영포 라인’(경북 영일·포항 출신) 같은 말이 나돌기도 했다.


박 당선인의 거듭된 ‘낙하산 근절’ 방침이 새 정부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이행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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